軍우주로켓, 파도치는 제주 바다서 쐈다…나로센터 안 간 이유 [최준호의 사이언스&]

최준호 2023. 12. 2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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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사이언스&] 우주로켓 해상 발사


최준호 과학 전문기자, 논설위원
지난달 29일 오후 2시 40분. 제주 서귀포 중문 해안에서 남쪽으로 4㎞ 떨어진 해상에서 붉은 화염과 함께 거대한 연기구름이 솟아올랐다. 국방부가 국방연구원(ADD)을 통해 개발해온 고체연료 추진 우주발사체의 3차 시험발사였다. 발사체는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중량 101㎏의 지구 관측용 소형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을 고도 650㎞의 지구 저궤도에 성공적으로 올려놨다. 앞서 지난해 3월과 12월의 1, 2차 시험발사가 충남 태안의 안흥종합시험장 내에서 진행된 것과 달리, 이번 3차 발사는 관련 기반 시설이 전혀 없는 제주 해상의 바지선에서 진행됐다.
지난달 29일 제조 중문 앞바다 바지선 위에서 민간 상용 위성을 탑재한 국방과학연구소의 고체추진 우주발사체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사진 국방과학연구소]

「 제주 앞바다서 우주 로켓 첫 발사
발사각, 민원 등에서 더 자유로워
스페이스X도 해상 발사장 준비
“해상 발사장, 경쟁력 있는 대안”

국내에 우주로켓의 해상발사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민간 상용위성을 실은 우주로켓을 국내 해상에서 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T의 통신위성인 무궁화 5호가 2006년 해상에서 발사된 예가 있지만, 국내가 아닌 태평양 하와이 남쪽 적도 상이었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에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릴 수 있는 곳은 두 곳뿐이었다.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와 국방부와 ADD가 소유한 충남 태안 안흥종합시험장이다. 나로우주센터가 누리호와 나로호 같은 액체연료 기반 로켓을 쏘아 올리는 곳이라면, 안흥종합시험장은 미사일과 고체 우주로켓을 위한 군용 발사장이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의 국방과학연구소 안흥종합시험장에서 발사된 고체 우주로켓이 수도권 곳곳에서 관측됐다.[연합뉴스]


국방부가 제주도로 간 이유


국방부는 왜 충남 태안의 안흥발사장을 놔두고 굳이 제주도까지 내려가 파도가 넘실대는 불안정한 바다 위에서 고체 로켓을 발사했을까. 답은 민간이 우주산업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에 있다. 국내에선 충남 태안과 전남 고흥이 있지만, 정부 출연연 과제와 국방연구라는 본래 목적 외 다른 용도로 쓰기 어렵다. 고체 로켓 개발은 국방부와 ADD가 시작했지만, 그간 협업해온 한화그룹 등 민간기업들은 향후 기술이전을 통해 본격적인 우주기업으로 변신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들에게 우주발사장 인프라는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선결과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6년 말 완공을 목표로 나로우주센터 옆 청석금 해안에 민간 우주 로켓용 발사장을 건설하고 있지만, 당장의 수요는 물론 앞으로 생겨날 국내 로켓기업의 수요를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지상보다 운용이 까다롭고 비용이 더 들긴 하지만, 입지 제약에서 한결 자유로운 해상 발사장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해상발사는 발사장소와 궤도 경사각의 선정이 자유롭다. 또 발사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낙하물의 위치나 영공 침범 문제에 대해 상대적인 이점이 있다. 전남 고흥반도 끝 외나로도 남단에 있는 나로우주센터는 남쪽으로 바다가 열려있는 이점이 있긴 하지만, 자유롭게 우주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각도가 15도에 그친다. 지리적으로도 한반도 동쪽에 일본이, 서쪽으로는 중국과 필리핀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제주 남쪽 마라도만 하더라도 발사각이 나로우주센터의 2배인 30도에 달한다. 이 같은 지리적 이점 때문에 1990년대 말 정부가 우주발사장 부지를 고를 때 제주를 1순위로 꼽았지만, 당시 제주지역 정치인과 시민단체의 반발로 차선책인 전남 고흥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충남 태안 안흥발사장은 발사각 측면에서 전남 고흥보다 훨씬 더 열악하다.
1995년 설립된 최초의 우주로켓 해상발사 서비스 기업 씨런치의 해상 발사장. 통제선과 발사장으로 나눠져 있다.[사진 씨론치]


해상 우주 발사의 이점


국내 우주 스타트업 중에도 제주 해상발사를 준비하는 곳이 있다. 액체 메탄 연료 기반 소형 우주발사체를 개발하고 있는 스타트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제주 해상 바지선에서 우주발사체의 2단부 시험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로켓과 해상발사대 모두 개발이 끝났지만, 국내 최초 민간 로켓의 해상발사인 만큼 규제 당국의 인허가 문제로 애초보다 발사 일정이 늦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는 그간 국내에 로켓 발사장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어왔다. 최근까지 제주 서쪽 해안 한경면 포구의 방파제에서 과학로켓을 발사하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는 해상 발사장을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민간 우주기업이다. 일론 머스크는 2017년 9월 멕시코 국제우주대회에서 ‘로켓 지구여행’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화성 우주선으로 지구의 다른 곳을 간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진 뒤, 뉴욕에서 로켓에 탑승해 단 39분 만에 중국 상하이에 도착하는 내용의 영상을 공개했다. 이 ‘로켓 여객기’는 발사장과 도착장 모두 해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많은 승객을 태워 짧은 시간 안에 지구 반대편 도시까지 가려면, 지금처럼 도시에서 먼 오지 발사장은 부적합하다. 그렇다고 도시 바로 옆에 발사장을 두면 소음과 음속을 돌파할 때 생기는 충격파인 소닉붐 등 여러 문제가 생긴다. 스페이스X가 내놓은 해법이 바로 해상의 발사장과 도착장이다.
스페이스X는 화성 우주선용 스타십의 궤도비행을 이용해 지구 반대편 도시를 30~40분만에 가는 로켓 여객기를 구상하고 있다. 발사장은 도시에서 가까우면서도 소음 피해 등을 줄일 수 있는 해상발사로 계획하고 있다. [사진 스페이스X]


먼 곳 이동해야 하는 단점도


해상 발사장의 장점이 많지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1995년 설립된 최초의 우주로켓 해상발사 서비스 기업 씨런치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경제성 등의 이유로 2010년 파산했다. 모항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항구에 두고, 발사 때 태평양 적도 부근으로 이동하는 방식을 택했다. 적도 부근은 지구 자전 속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우주발사장으로 최적지다. 남아메리카 적도 바로 위 프랑스령 기아나에 쿠루 우주기지가 있는 이유다. 씨런치는 2006년 발사된 우리나라 무궁화 5호를 비롯, 총 36차례 발사 서비스를 했다. 이창진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해상발사는 주변 지역의 방해를 받지 않는 등 여러 장점이 있지만, 로켓을 싣고 먼 곳으로 이동해야 해 비용 측면에서 불리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바다는 여전히 유력한 로켓 발사장 대안 중의 하나로 꼽힌다. 김대래 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국의 경우 지상 우주센터가 가지는 지리학적 한계를 고려할 때 앞으로 국내 해상발사가 경쟁력 있는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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