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 읽기] 대기업을 이긴 스타트업
이미지와 동영상 편집, 그래픽 디자인 소프트웨어로 시장 최강자 자리를 지켜온 어도비가 지난해 피그마라는 디자인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을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200억 달러(약 26조원)라는 깜짝 놀랄 액수였다. 하지만 어도비는 지난주 피그마 인수 협상을 종료한다고 선언했다. EU 등의 독점 혐의 심사를 통과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그마에 10억 달러의 해지 수수료를 지급해야 했기에 어도비로선 매우 쓰라린 실패다. 이렇게 불리한 조건과 엄격한 심사를 각오하면서까지 어도비가 피그마를 인수하려던 이유가 뭘까.
데스크톱 기반의 소프트웨어가 주력인 어도비와 달리 피그마는 클라우드를 기반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의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데 특화되어 이 분야 디자이너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두 기업의 소프트웨어가 다르기에 둘 다 사용하는 디자이너가 많지만, 피그마의 성장 곡선을 생각하면 결국 어도비의 영역을 잠식할 것이 분명하다.
더 중요한 건 시장의 방향이다. 이제 컴퓨터 소프트웨어도 협업에 유리한 클라우드와 웹 기반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피그마는 이 분야에서 어도비에 앞서 시장을 장악했다. 어도비 소프트웨어를 인터넷으로 연결해서 협업 체제를 갖추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어느 정도 협업 기능을 넣을 수는 있겠지만, 워낙 거대한 프로그램이라서 완벽한 실시간 협업 툴이 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클라우드 기반으로 다시 만드는 게 차라리 낫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도 이미 웹 기반 디자인 시장을 장악한 피그마를 뒤쫓는 위치에 서게 된다. 역으로 말하면 이게 발 빠른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기는 방법이다. EU는 이런 경쟁 환경을 보호하려는 거고, 그게 독점 규제의 정신이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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