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20년간 작품 공개말라’…세계 첫 추상화가 여성의 유언

나원정 2023. 12. 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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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 선구자 힐마 아프 클린트가 2018년 뉴욕 구겐하임 전시를 계기로 100년만에 재조명되고 있다. 작품은 ‘백조 no. 14’.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영적 체험을 연기한 칸 국제영화제 수상작 ‘퍼스널 쇼퍼’(2016), 스웨덴의 잔혹한 축제를 그린 공포 걸작 ‘미드소마’(2019), 두 영화의 공통점은? 스웨덴의 여성 추상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점이다.

“사후 20년간 내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으로 봉인됐던 아프 클린트의 그림들이 전세계 예술계를 흔들고 있다. 201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아프 클린트 회고전은 개관(1959년) 이래 최다 관객인 60만명을 불러모았다. 그가 현대적 추상을 제시한 ‘원시적 혼동, No.16’(1906)은 지금껏 최초의 추상화로 알려진 바실리 칸딘스키의 ‘구성 V’(1911)보다 5년 먼저 그려졌다. 과학이 우주를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던 19세기말 경 아프 클린트는 추상화를 ‘발명’해간다. 영매를 자처하기도 한 그는 세상을 향한 독특한 시각을 1500여점의 작품, 2만6000쪽 노트에 남겼다.

힐마 아프 클린트

100년이 지난 지금 ‘미래를 위한 그림’(구겐하임 회고전 부제)으로 각광받는 그가 동시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는 뭘까. 지난 20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감독 할리나 디르슈카)은 백인 남성 위주 예술계에서 여성인 그가 평가절하됐다고 꼬집는다.

이 다큐 홍보대사를 맡은 이숙경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 겸 휘트워스 미술관장은 아프 클린트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것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인간의 지식 범주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을 때 추상미술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작가”라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다큐 시사회와 이어진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그는 아프 클린트의 작품세계에 대해 “추상이지만 자연주의적”이라고 했다.

이 관장은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 출신으로, 올해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내년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의 외국인 최초 큐레이터를 맡았다.

대표작 ‘더 텐 라지스트(The Ten Largest)’ 연작이 전시 중인 모습.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Q : 힐마 아프 클린트의 대표작은 무엇인가.
A : “포스터에 쓰인 3.6m 높이의 연작 ‘더 텐 라지스트(The Ten Largest)’다. 호수 등 북구의 자연이 준 색채를 자연스럽게 담고 있다. 그의 작품은 화폭의 규모에서도 시대를 앞섰다. 캔버스보다 아주 큰 종이를 사용해 꽃·잎사귀, 물의 소용돌이, 은하수의 나선형태 같은 일상 속 소재들을 서정적·신비주의적 방식으로 그렸다.”

Q : 왜 자신의 작품을 사후 20년간 공개하지 말라고 했나.
A : “세상이 자기 미술을 따라잡는데 2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Q : 동시대에 저평가된 이유는.
A : “사실 추상미술 자체가 금세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말레비치·몬드리안 등의 거장들도 비판받았다. 자연주의적이고 재현적인 서구 미술사에서 낯설고 어려운 것으로 여겨졌다. 일부 평론가는 저급한 것으로 보기도 했다. 이 다큐에서 아프 클린트가 인정받지 못한 가장 중요한 구조, 여성에 대한 편견을 보여주는 건 일종의 실마리다. 이런 방법론을 다른 곳에도 적용할 수 있다. 백인이 아닌 우리가 봤을 땐 서구 중심의 미술사엔 다른 편견도 많다. 애초 추상미술에서 출발한 이슬람 미술, 서예가 미술만큼 중요했던 중국과 한국의 회화사 등은 이 다큐에서도 배제됐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연작 ’시리즈 III, no.3’(1920년, 왼쪽 그림)에서 파울 클레 대표작 ‘성과 태양(Castle and Sun)’(1928년, 오른쪽 그림)보다 앞서 유사한 테마를 작업했다고 평가받는다.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Q : 전 지구적 미술사를 쓰는 게 당신의 사명이라고.
A : “서구 백인 남성 중심적인 틀과 문화적 선입견이 존재해왔다. 다시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5년간 해외에서 활동해왔는데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미술관의 인식이 많이 발전하고 개방적으로 변했다. 서양미술사 뿐 아니라 동양 미학·동양미술사, 일본·중국·인도 미술사도 공부했는데, 그런 지식을 살려 서로 다른 문화 간의 관계를 연구해보고 싶다.”

Q : 일본 작가 모리 유코와 함께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에 참여하게 됐는데.
A :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은 1956년에 시작돼 우리(한국관 1995년 설립)보다 역사가 긴데, 최초의 외국인 큐레이터가 된 게 감사하다. 문화적으로도 흥미롭다. 역사적 갈등이랄지, 식민주의 역사란 게 있지않나. 굉장히 다른 목소리를 가진 큐레이터와 작가가 협업할 때 그런 부분들이 어떤 새로운 사고로 등장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다.”

Q : 최근 한국 미술이 해외에서 조명받고 있다.
A : “좋은 미술작품이 있는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한국은 한국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의 현대미술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 같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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