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 최초 한복 커버! 2024년 새해를 여는 수지, 그리고 한복
Q : 한복 입은 수지의 모습을 상상하며 자연스럽게 영화 〈도리화가〉를 오랜만에 꺼내 봤습니다. 조선 최초의 여성 소리꾼 채선의 이야기였죠
A : 저도 오늘 〈도리화가〉 생각이 많이 났어요. 중간중간 익숙한 기분이 왜 드나 했더니 채선이가 입었던 한복과 비슷한 면모들이 있더라고요. 오랜만에 한복과 잘 어울리는 쪽머리도 하고요(웃음).
Q : 2015년 작품이니 딱 열아홉에서 스무 살 때 수지의 모습을 담은 셈이죠. 밝고 수수하게 등장하는 영화 초반부를 보며 장난기 가득하던 데뷔 초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어요
A : 지금도 장난기는 여전해요. 조금 무심해진 면도 생겼지만.
Q : 1992년에 창간한 〈엘르〉도 한복 커버 화보를 촬영한 건 처음입니다
A : 이번 기회에 한복과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요. 여섯 벌의 한복 모두 저를 위해 제작해 주시기도 했고요.
Q : 오늘 입은 한복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함께한 ‘2023 한복웨이브’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죠. 화보 영상은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판에 상영될 예정이고요. 어떤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함께하게 됐나요
A : 거창한 마음으로 참여한 건 아니에요. 한복을 조금 더 알릴 수 있는 기회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죠. 여러 한복 디자이너들의 손에서 탄생한 다양한 한복과 함께한다는 게 제게도 뜻깊은 일일 것 같기도 했고요.
Q : 지난 10월에 공개된 〈이두나!〉는 은퇴한 K팝 스타라는 소재에 힘입어 〈타임〉 등 해외 매체에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룹 활동 시절의 수지가 연상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두나 같았다’는 평도 많았어요
A : 자칫 겹쳐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또한 긍정적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했어요. 두나 캐릭터가 워낙 강해서 차츰 그 캐릭터로 봐주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일부러 배제한 건 아니지만 실제로 두나가 처한 상황이나 성격, 활동했던 그룹 이미지도 저와 많이 다르거든요. 덕분에 저도 해보지 않은 K팝 무대를 소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고요.
Q : 두나는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는 법을 아는 섹시한 면모가 있는 인물이죠. 그럼에도 여러 인터뷰에서 종종 두나를 ‘귀엽다’고 소개하더군요. 스무 살 무렵과는 어느덧 한 발 떨어진 나이가 된 수지가 그 나이대인 두나와 원준(양세종)을 관조하는 느낌일지
A : 그럴지도요. 두나는 또래보다 사회생활도 빨리 시작했고, 스스로 모든 것에 통달한 것처럼 행동하고 이야기하잖아요.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원준에게도 누나처럼 굴고요. 그런 지점이 지금의 제가 볼 때는 귀여웠기 때문에 그렇게 소개한 것 같아요. 감독님도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릴 때 20대 초반 나이대에서 나올 수 있는 열정, 불타오르는 느낌을 많이 드러내고 싶어 했는데 그런 면도 잘 담긴 것 같아 좋더라고요.
Q : 원준의 캐릭터가 판타지라고 말한 적 있어요. 개인적으로 〈이두나!〉에서 가장 판타지 같았던 건 주인공뿐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의 감정과 솔직하게 대화를 한다는 점이었지만요
A :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모든 게 판타지라고 생각하는 편이긴 한데요(웃음). 맞아요. 대본을 볼 때도 느꼈지만 〈이두나!〉 속 인물들은 말을 돌려서 하는 지점이 하나도 없고,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죠. 다들 깔끔해요.
Q : 맞아요, 깔끔했어요. 어떤가요, 평소 감정을 적확하게 이야기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느끼는지
A :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또렷해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느끼는 걸 전할 때 좀 더 선명해지는 부분이 분명 있어요.
Q :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나였다는 말, 스스로를 망치지 않고 사랑하자고 말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진주(하영) 또한 원준을 향한 마음을 접으며 그런 이야기를 하죠
A : 진주의 그 대사는 사람들이 공감해 주길 바랐던 대사예요. 저도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건 저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고, 엄격함이 제게는 신념 같은 거여서 그렇게 지내왔는데 ‘나를 좀 더 따뜻하게 바라봐주지 못했구나’ 싶은 시간이 있더라고요.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제가 모든 걸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괜히 혼자 짊어지려고 애쓰며 나를 다치게 했다는 게 시간이 지나면서 보였어요.
Q : 사람들은 왜 무대 위의 화려한 존재에게 끌릴까요
A :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이제 그런 마음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무대가 그립다는 기분도 많이 희미해졌죠.
Q : 그럼에도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은 수지에게 어떤 의미인지. 최근 그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데요
A : 예전에는 사람 얼굴을 많이 그렸어요. 얼굴에 관심이 많았나 봐요. 그런데 요즘은 예쁜 방이나 아기자기한 건물을 그리는 데 더 마음이 가요. 내가 따뜻한 색감에 끌린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어요. 취미로 하는 일이다 보니 풍경 사진 시안을 찾아서 그리는데, 또 그렇게 그린 그림은 제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되도록이면 제가 직접 찍은 사진을 토대로 그려보려고 해요. 직접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 좋은데요? 그 광경이 어떤 인상을 풍겼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 테니까요 그런데 색감이나 구도가 그렇게까지 마음에 드는 사진이 많지 않아서 결국 또 예쁜 시안을 찾게 돼요. 내 방식대로 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시도도 해봤지만 아쉬워요. 잘 그려지면 잘 그려진 대로 ‘아! 내가 찍은 사진으로 할 걸’ 후회도 되고.
Q : 그림은 주제를 정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더군요. 한번 정한 이상 시간과 마음을 절대적으로 들여야 완성되니까요
A : 확실히 시간과 정성을 많이 쏟아야 하는 일이라 애정이 많이 가요.
Q : 2010년, 열여섯 살에 데뷔했습니다. 남들보다 빠르게 인정받아야 했던 아티스트에게 당시 대중이 다소 엄격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A : 한편으로는 그럴 만했다 싶기도 해요. 평가는 피할 수 없는 거니까요. 그런 말들에 상처받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요. 요즘이라고 사람들이 딱히 관대해졌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요(웃음). 다만 그걸 받아들이는 제가 달라졌죠.
Q : 노래도, 연기도 사실 좋아하고 또 잘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죠. 두려움을 딛고 계속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A : 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제가 감지할 수 있는 열정, 현장에서의 마음 때문에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어떤 일을 꾸준히 하는 것 자체가 그 일에 열정과 마음을 엄청나게 쏟기 때문에 가능하거든요.
Q : 누군가의 커리어를 볼 때 비평적 관점에서 ‘전환’으로 언급되는 순간은 있기 마련입니다. 수지가 스스로 느끼는 전환점은
A : 영화 〈원더랜드〉 촬영 기간. 제가 느끼기에 자유로웠던 현장이에요.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꽤 길었죠. 덕분에 또 다른 방식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던 시기라 그 기간이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Q : 김은숙 작가의 신작 〈다 이루어질지니〉 촬영도 1월에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는 마음이 남다르지 않을지
A : 제가 항상 겨울에 촬영을 했거든요. 오늘도 촬영 중에 추위를 조금씩 감지하며 ‘아, 이제 촬영할 때가 또 됐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의 마음은 늘 비슷해요. 기다려지면서도 좀 더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죠. 그래도 이번 역시 재미있게 잘 해보고 싶어요.
Q :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런던에서 촬영한 브이로그를 보며 아침에 달리기를 한다는 것도 알았어요
A : 달리기 안 합니다(웃음). 달리기를 전혀 안 하는 사람인데 그때 런던 날씨가 워낙 쌀쌀했어요. 체온을 좀 높이려고, 정말 살려고 달렸죠. 아침에 일어나면 공기부터 싸늘한데, 또 춥다고 침대에서 뭉그적대며 시간을 버릴 수는 없잖아요? 하루 달리고 나니 상쾌한 에너지가 생기는 게 느껴져서 또 계속했고요. 달리기가 아침을 시작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Q : 브이로그를 직접 편집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그 과정을 엄청 즐기는 것 같지는 또 않더라고요
A : 대단한 편집을 요하는 영상이 아니다 보니 누군가에게 맡기기에는 애매하고 소소하달까? 이 정도는 내가 해보자, 이 정도는 내가 찍고 편집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했어요. 봐주시는 분들에게 좀 더 개인적이고 친근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것도 좋고요.
Q : 1인칭 시점으로 넣은 자막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여행지 스타일링도 재미있고요
A : 해외에 가면 여러 스타일을 시도해요. 항상 귀여운 모자나 아이템을 발견하면 사두거든요. 갑작스럽게 여행을 떠나게 되면 그동안 모아둔 온갖 특이한 것들을 모두 가져가곤 해요.
Q :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데뷔 초에는 스스로 여기저기 휩쓸리는 작은 돛단배 같다고 했어요
A : 맞아요!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요. 어쩌면 종이배였을지도 몰라요.
Q : 지금은 어떤 배인 것 같나요? 바다 위에 있다는 느낌은 여전히 드는지
A : 지금은… 아주 멀리서 봤을 때 비로소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그런 배이지 않나 싶어요. 가까이서 볼 때는 멈춰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움직이고 있는 배요. 닻도 내린 채.
Q : 배의 조타기도 내가 잡고 있고 말이죠(웃음). 2024년, 수지는 어디로 나아가게 될까요
A : 서른 살이 되는 것에 별생각 없었거든요? 그런데 조금씩 뭔가 바뀌긴 하는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이 궁금하고, 예전에는 즐기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슬쩍 관심이 생기고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새해에는 건강을 조금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해요. 나를 제대로 챙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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