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유묵을 바라보다 [김선걸 칼럼]
용과 호랑이의 웅장한 기세를 어찌 지렁이와 고양이 모습과 비교하겠는가.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110년 만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31년의 짧은 삶. 그래서 더 강렬했던 청춘. 그 끝을 20여일 앞두고 쓴 안 의사의 글이다.
놀랐다. 느껴지는 거침없는 힘과 기개.
본인의 의거를 ‘용과 호랑이’에 비유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사형 직전인데도 두려움과 군더더기는 한 치도 찾아볼 수 없는 필치였다.
안 의사의 대의는 이토를 처단한 후 수감 기간에 더욱 빛난다. 그는 의거가 자객으로서가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행한 일이라 선언했다. 일본과 전투 중이니 적장인 이토를 쏜 것은 정당한 일이다. 실제 그의 다른 유묵에는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이 있다.
수감돼 있던 동안 안 의사는 당당했고, 오히려 일본은 쫓겼다. 국제사회 이목이 집중되자 안 의사가 재판을 통해 일본의 만행을 조목조목 알렸다. 일제는 초대 총리대신 출신의 정치 거물 이토가 죽었는데도 들키면 안 되는 죄라도 지은 듯 서둘렀다. 일주일 만에 6차례의 비공개 공판을 몰아치고 안 의사에게 곧장 사형을 언도했다. 정당성과 절차는 모두 무시된 사형 집행 후 안 의사의 시체조차 숨겼다. 그의 무덤이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안 의사는 그만큼 큰 사람이었다. 당시 중국의 쑨원, 저우언라이 등도 기개를 칭송했다.
안 의사는 ‘도마’라는 세례명을 가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감옥에서 그의 인품에 감복한 일본 간수들이 그가 쓴 묵서를 받고 싶어 했다. 도시치라는 헌병 간수는 안 의사의 유묵을 가보로 삼고 날마다 봉양했다.
110년 만에 현해탄을 건너 고국의 품에 돌아온 이번 유묵은 경매에서 19억5000만원에 낙찰이 됐다. 기존에는 7억8000만원이 최고가였다. 안 의사 유묵의 가치가 두 배 이상 오른 셈이다. 그간 안 의사 유품들은 일본인들이 소유하다 드문드문 국내로 들어왔다. 유묵을 낙찰받은 인사는 필자에게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던 안 의사의 유묵을 봤을 때 무조건 한국에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100억원을 줘도 아깝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맙다고 말했다.
나라를 팔아넘겼던 이완용의 유묵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이완용은 뛰어난 서예가로 조선 후기 명필로 꼽혔는데, 유묵 가격은 30만~40만원에 머문다. 사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안 의사는 재판에서 ‘거사 후 뭘 하려고 했나’라는 질문에 “나 자신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유언으로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토록 원했던 독립 국가 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유묵이 귀환했다. 유묵과 함께 그의 고결한 뜻도 함께 왔으면 한다. 특히 이 시대의 리더라는 사람들은 안 의사의 정신을 한 번씩 되돌아볼 시점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0호 (2023.12.27~2023.12.31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신차보다 더 뜨거운 ‘할인 경쟁’…BMW·벤츠, 수백만원 파격 세일 중 - 매일경제
- 볼보, 4000만원대 전기 SUV EX30 - 매일경제
- “월세 1000만원까지 세액공제됩니다”…세법 개정안 통과 [국회 방청석] - 매일경제
- 2000년생이 온다 [신간] - 매일경제
- 추락하던 CJ 주가, 드디어 반전 스토리 쓰나 - 매일경제
- “여보, 연 2% 금리 ‘주택드림 청약통장’ 나왔다네”[김경민의 부동산NOW] - 매일경제
- “디지털헬스 법적 근거 마련”…디지털의료제품법 본회의 통과 [국회 방청석] - 매일경제
- 네이버 자회사가 픽한 ‘알체라’…유증 계획 일단 스톱, 왜? - 매일경제
- 신세계·롯데·현대 “조 단위는 우습다”…불황 모르는 서울 백화점 - 매일경제
- “중개업소 문 닫게 생겼어요”…최악의 거래 절벽 시달리는 이 단지 [김경민의 부동산NOW] - 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