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장콜' 거부 당한 장애인…"차별 해당" 2심 뒤집혔다
황덕현(48)씨는 중증 장애인이다. 뇌병변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별다른 지장 없이 일상생활을 하던 그의 삶이 달라진 건 2018년, 경추척수증이 발병하면서였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재활은 더디었고, 황씨는 팔이나 손이 마비돼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지기능장애’와 다리를 일정 부분 움직이지 못하는 ‘하지기능장애’를 진단받았다. 황씨는 “그후 휠체어나 보행기 없이는 걷기 어렵다”며 “특히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 흔한 편의점도 갈 수 없었다”고도 덧붙였다.
황씨는 그러던 중 2020년 11월 대중교통 이용이 힘든 장애인을 위해 서울시설공단이 제공하는 ‘장애인 콜택시’를 불렀다가 거절당했다. 황씨의 보행 장애가 심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황씨는 지난해 2월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며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을 상대로 장애인차별 중지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선 장애인 콜택시 이용 대상을 어떻게 볼지가 쟁점이 됐다. 구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지난 7월 개정 전)은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서 버스·지하철 등의 이용이 어려운 사람’을 장애인 콜택시 이용 대상자로 한다. 이를 두고 서울시는 “보행 장애가 심한 자만이 대상”이라고 했고, 황씨는 “보행장애를 가진 모든 중증 장애인이 대상”이라고 맞섰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26부(부장 허명산)는 “황씨의 해석이 맞다”면서도 “특별교통수단 미제공은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황씨는 항소했고,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 성지용)는 지난 21일 1심 판결을 뒤집고 “황씨가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심한’ 보행상 장애를 판단할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보행상 장애인에 해당한다고 판정되고, 어느 부위든 장애의 정도가 심하고 버스·지하철 등 이용이 어려운 사람이라면 장애인 콜택시 등을 이용하지 않고선 이동이 곤란하다. 이들에게 특별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건 교통약자법의 입법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장애인 차별 해당…정당 사유 없어”
2심 재판부는 서울시와 공단이 황씨에 장애인 콜택시 서비스를 거부한 것은 ‘장애인 차별 행위’라고도 명시했다.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상 교통약자가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권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행정절차 및 서비스 제공’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황씨가 부산·대전 등에선 별다른 문제 없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했으며, 서울시와 공단이 황씨의 이용을 거부하면서 선례를 조사하는 등 객관적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며 “거부 행위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황씨는 현재까지 3년 이상 서울에서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서울에 거주하는 황씨에게 큰 불편을 줬을 것”이라며 서울시와 공단에 황씨에게 위자료로 300만원을 지급하라고도 명령했다.
해외에서 회사를 운영 중이라는 황씨는 재판 후 기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장애 정도를 탁상행정으로 법령만으로 따지면, 저 같은 상지(팔) 중증 장애를 가진 보행장애인은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 못 하게 된다. 또 다른 사각지대가 되는 것”이라며 “장애인도 일반인과 다름없이 24시간을 산다. 장애인 콜택시 또한 일반 택시처럼 24시간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씨는 “(이번 판결로)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다닐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재판부에도 감사를 표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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