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선거 D-19…8년 주기 정권교체, 이번엔 MZ 표심에 달렸다

신경진 2023. 12. 2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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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국민당 선거 유세장에서 한 지지자가 대만 청천백일기를 휘두르며 환호하고 있다. 대만의 국회의원 격인 입법위원 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는 총통선거는 다음달 13일 치러진다. EPA=연합뉴스

“부정부패는 민진당의 DNA이고, 라이칭더(賴淸德)는 대만 평화의 테러리스트다.”

지난 22일 대만 부총통 후보들의 TV 정견발표회에서 자오사오캉(趙少康·73) 국민당 부총통 후보는 이렇게 집권 민진당 총통 후보를 적나라하게 공격했다.

이에 샤오메이친(蕭美琴·52) 민진당 부총통 후보는 화살을 중국으로 돌렸다. 그는 “진정 중화민국(대만)을 소멸시키려는 곳은 지금도 대만의 존재를 바르게 보지 않는 중국공산당”이라며 “만일 국민·민중당이 승리하면 대만은 중국에 의존하던 옛 길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중당의 부총통 후보로 재계 출신인 우신잉(吳欣盈·45)은 한국을 언급하면서 정책 선거를 주장했다. 그는 “대만의 1인당 GDP는 한국을 넘어섰지만 국민 건강은 한국에 뒤진다”며 “GDP 1%를 주권펀드로 만들어 의료보험과 양로에 투입해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2일 열린 대만 부총통 후보 TV 정견발표회에서 세 당 후보가 발표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샤오메이친 민진당 부총통 후보, 자오사오캉 국민당 부총통 후보, 우신잉 민중당 부총통 후보. 명보 캡처


다음달 13일 투표를 앞두고 있는 대만의 총통 선거에서 러닝메이트인 부총통 후보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만 독립론자로 알려진 민진당 라이칭더(賴淸德·64), 경찰청장 출신으로 말주변이 없는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66), 명문 대만대 의대 교수 출신의 민중당 커원저(柯文哲·64) 등 총통 후보들이 기성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개성 넘치는 부총통 후보들이 판세를 흔들고 있다.

차준홍 기자


지난 8년 집권에 따른 비판 여론에 시달리는 민진당은 중국 외교를 상대한 ‘고양이 전사(戰猫)’로 유명한 샤오메이친 워싱턴 대만대표부 대표를 영입해 오차 범위 안에서 지지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를 추격하는 국민당의 자오 후보는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 2세로 지난 1992년 국민당 비주류에서 탈당해 신당을 창당한 파란만장한 경력의 소유자다. 1994년에는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천수이볜 민진당 총통과 맞붙어 19만여표 차이로 패배한 뒤 입담 좋은 시사 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던 자오는 “유비(허우유이)를 위해서라면 칼에 옆구리를 찔려 죽어도 후회하지 않던 조자룡이 되겠다”며 추격전을 주도하고 있다.

김영옥 기자

지난달 국민당과의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 후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던 민중당은 재벌 3세이자 경제통인 우신잉을 영입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부동산과 물가 상승, 치솟는 실업률에 고통받는 MZ 세대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다.

세 당의 최근 지지율은 '2강(민진·국민당) 1약(민중당)' 구도로 굳어지는 추세다. 현지에선 지난 2000년 이후 민진당과 국민당이 번갈아 정권교체에 성공했던 ‘8년 사이클’이 이번 선거에선 깨질 수 있다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19일 중립 성향의 대만 연합보 여론조사에서 민진당 라이 후보와 국민당 허우 후보가 각각 31%로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최근 여론조사의 지지율을 종합하면, 민진당이 31.0~37.5%로 1위, 국민당이 31.0~34.8%로 2위, 민중당이 16.3~24.0%로 3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조사에서 민진당과 국민당 간 차이는 모두 오차 범위 안이다.

김영옥 기자

선거 당일까지 막판 변수로는 ‘대만판 안철수 현상’의 출현 여부다. 현지에선 2022년 한국 대선 등을 사례로 들면 커원저 총통후보의 완주 여부에 관심이다. 시사 평론가 린팅야오(林庭瑤)는 “커원저와 안철수는 모두 명문대(서울대, 대만대) 의대 출신으로 새로운 정치를 내세웠다”면서도 “대만 선거는 한국과 달리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러 총통 후보에서 사퇴할 경우 민중당 총선에서 타격을 받게 된다”며 커 후보의 사퇴 가능성을 낮게 봤다. 또한 지지자의 70%가 국민당을 싫어하는 젊은 세대인 점도 커 후보의 사퇴가 연합대상인 국민당이 아니라 민진당을 돕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차준홍 기자

선거가 임박하자 중국의 압력도 정교해지고 있다. 지난 21일 중국 국무원은 대만산 석유화학 12개 품목에 내년 1월 1일부터 관세 감면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2010년 체결된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따라 적용했던 조치를 거두겠다는 압박이다.

민진당 재집권 저지를 위해 중국은 ‘채찍(ECFA 중단)’ 뿐 아니라 ‘당근’도 내놨다.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한국 통일부 격)은 지난 22일 대만산 우럭바리(석반어)의 수입 재개를 발표했다. 민진당의 텃밭인 남부 어민들이 양식하는 어류의 수입 금지를 해제하면서 국민당을 우회 지원하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전가림 호서대 교수는 “중국이 양안 경제 관계의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대만 유권자에게 각인시키면서 중국 내 대만 경제인에 대한 선거 참여 유도, 해외 화교조직을 동원한 개입, 틱톡 등 인터넷을 통한 영향력 행사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기성세대와 달리 중국·안보보다 경제 이슈를 중시하는 MZ세대의 표심이 이번 선거 결과를 좌우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 유권자의 16.2%를 차지하는 20대 유권자가 예측 불가능한 이번 선거의 균형을 깨뜨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24세 유권자 양스웨이는 FT에 “민진당의 승리가 전쟁을 부를 것이라는 국민당의 경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듣던 말”이라며 “국민당과 단일화를 시도했던 커원저에게 실망했다”라고 정치권을 비판했다. 26세 린칭은 “선거철이 되면 국가 안보와 중국만 이야기할 뿐 경제와 장기 현안을 말하는 정치인은 없다”고 불신을 나타났다.


의회 권력 교체 임박…양안 대화 재개되나


대만 선거는 2년마다 대선과 총선을 합한 ‘2합1’ 선거와 지자체장 등 각급 지방 공직자 9명을 동시에 뽑는 ‘9합1’ 선거로 번갈아 진행한다. 이에 따라 이번 총통 선거는 의회(입법원) 선거와 함께 치러진다. 현지 전문가들은 민진당이 정권을 지키는 데 성공하더라도 의회는 여소야대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럴 경우 국민당이 중국과 대화를 재개해 양안 협상 프로세스가 재가동 될 수 있다.

앞서 16일 여론조사업체인 ‘무정진실 미래예측’은 국민당 56석, 민진당 47석, 민중당 8석, 무소속 2석으로 총선 결과를 전망했다. 이렇게 될 경우 정원인 113석의 단독 과반인 57석에 못 미쳐 민중당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구도가 된다. 홍콩 시위와 중국의 진압을 지켜본 대만 유권자들이 몰표를 던져 민진당이 62석을 얻었던 2020년 선거와 정반대의 결과가 된다.

선유중(沈有忠) 대만 둥하이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의회 권력이 교체되면 국민당이 입법원 다수당으로 양안 협상이 재개될 전망”이라며 “다만 국민당이 양안 재협상을 추진하면서 일국양제 의제까지 포함할 경우 지난 2014년 ‘해협양안서비스무역협정’에 반대하면서 입법원을 점령했던 해바라기 학생운동이 재개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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