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행복 속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신작 에세이 낸 공지영
공지영 작가의 신간 에세이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는 혼자 된 시간의 기록이다. 공지영은 지난해 친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이스라엘을 순례했다. 여행을 함께한 일행이 떠난 뒤 예루살렘에 혼자 남아 나사렛을 찾았다. 현재 그의 거주지는 서울이 아닌 경남 하동이다. 3년 전 모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활동을 접고 경남 하동군 평사리에 홀로 정착했다. 빛 공해가 없어 "밤 8시면 잠이 들고 새벽 4시면 저절로 눈이 떠지는" 곳이다.
잡초를 뽑고 쟁기질을 하며 밭도 일궜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공지영을 만났다. 그는 "직접 농사 지은 호박과 푸성귀를 먹으면서 산다. 갖고 싶은 게 없는데 딱 소 한 마리만 갖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어떻게 하동에 정착하게 됐나.
A : 처음엔 따뜻한 남쪽에 거처를 얻어 잠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서울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강연이나 행사가 없어 점점 서울 올 일도 없어지고 아이들도 컸으니 여기서 살아도 좋겠다 싶었다.
Q : 서울 토박이인데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나.
A : 혼자 농사 지으면서 살아도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예전에 강원도에 작은 집 한 채가 있었다. 고요한 텃밭에서 혼자 푸성귀를 땄던 순간이 마음 속에 있다. 좋은 곳에 많이 갔고 좋은 것을 많이 가졌지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그 때다. 그 행복 속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는 것, 오롯이 혼자였다는 것이 깨달음이 됐다.
Q : 하루 일과는.
A : 농사일에 시간을 많이 쓴다. 밭에서 흙을 만지고 잡초를 뽑으면 땀이 쫙 나는데 그게 참 행복하다. 고민이 땅 밑으로 싹 꺼지는 느낌이랄까. 요즘 그걸 '얼싱'(earthing)이라고 부르더라. 땅이 주는 즐거움이 크다.
Q : 『수도원 기행』에 이어 또 순례기를 썼다.
A : 가톨릭 신자라 유적지를 여러 곳 다녔는데, 예루살렘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언젠가는 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다가 지난해 친구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마음을 굳혔다.
Q :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A : 예루살렘 동쪽의 유다 광야를 갔을 때다. 오래전부터 사막에 가고 싶었다.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카레토의 『사막에서의 편지』에 신을 만나기 위해 사막으로 왔던 사람들이 밤이 되면 통곡한다는 대목이 있다.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났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진짜 나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Q : 지금은 어떤 작품을 쓰고 있나.
A : 586세대의 이야기다. 어떤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을 추리해가는 과정에서 586세대인 주인공이 과거 40년을 돌아보는 구성이다. 더 빨리 쓰고 싶었는데 정치적 색깔이 있는 소설이라 좀 미뤄왔다.
Q : 정치적으로 비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A : 이제 애들도 다 컸고 책이 안 팔리면 안 팔리는 대로 살자는 생각이다. 나이가 주는 자유가 있더라. 그리고 소설이고, 픽션이니까 더 구애받지 않으려고 한다.
Q : SNS나 도시 생활이 그립지는 않나.
일말의 그리움도 없다. 떠나온 세계다.
공지영은 책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나 자신의 망상을 사랑했었다. 독재에 항거하는 정의의 외피를 쓰고 있으면(...) 나는 완벽하게 속았다"고 썼다. "가난하고 불쌍하고 궁색해진 이들은 착하다고 근거 없이 믿어버렸고, 그리스도나 정의 혹은 진보라는 걸 말하는 이들은 정직할 거라고 철석같이 신뢰해 버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휘둘렸다"면서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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