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범용 반도체도 정조준…'좁은 마당'서 때리던 美, 판 키운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에 이어 '범용 반도체'까지 중국을 규제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간 핵심 기술을 중심으로 좁은 범위에서 강도 높게 중국을 때리는 정책을 표방했지만, 이제 그 견제의 범위 또한 확장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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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보 위해 조사"
미 상무부는 21일(현지 시각) 다음 달부터 자동차, 항공우주, 방산, 통신 등 주요 분야에서 자국 기업이 중국산 범용 반도체를 얼마나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는지 실태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중국으로부터 제기되는 "국가 안보상의 위험을 낮추기 위한 목적"이라면서다. '레거시 반도체'(legacy chips)로도 불리는 범용 반도체는 첨단 기술 없이도 만들 수 있는 저가의 저성능 반도체로, 갈수록 중국산 비중이 늘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관련 대(對) 중국 수출 규제를 가한 데 이어 범용 반도체까지 규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근거 마련에 들어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이날 "지난 몇 년간 중국이 자국 기업의 범용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해 미국 기업의 경쟁을 어렵게 하는 우려스러운 행태를 포착했다"며 "실태 조사를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익명의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의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한 관세 등 통상 관련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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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견제 마당 넓어져
미국의 이번 실태 조사 착수로 미ㆍ중 공급망 경쟁의 '마당'이 한층 넓어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4월 미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우리는 '좁은 마당'(small yard)을 둘러싸고 '높은 울타리'(high fence)를 치는 방식으로 기초 기술을 보호하고 있다"며 "중국을 향한 최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는 아주 정교한 방식으로 단행됐다"며 제한적 조치임을 강조했다.
범용 반도체는 워낙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에 수출 통제 같은 방법으로 얽매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주목할 것은 범위를 확장해가는 미국의 대중 견제 추세다.
실제 미국은 지난 10월에는 상대적으로 사양이 낮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칩의 대중 수출 또한 금지했다. 이로 인해 최첨단 AI 칩의 중국 수출길이 막히자 성능을 떨어트린 칩을 팔아오던 엔비디아가 타격을 입었다.
이와 관련,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중국의 범용 반도체까지 견제하고 나선 건 그간 이야기하던 '스몰 야드, 하이 펜스' 정책과는 결이 다른 측면이 있다"며 "만약 실제 규제 조치로까지 이어진다면 한국으로선 지금까지는 중국과 어느 정도 협력의 여지가 있었던 범용 반도체 분야에서도 미국의 대중 견제 기조에 발맞춰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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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경쟁 격화 대비해야"
전문가들은 미 상무부가 일단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실태 조사 계획까지만 밝힌 만큼, 첨단 반도체에 집중하는 한국 기업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미국의 이런 조치에 중국이 곧바로 희토류 가공 기술의 수출 금지로 맞불을 놓는 등 양국 간 공급망 경쟁이 2라운드로 치닫는 상황 또한 우려스럽다는 지적이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향후 조치를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한국 또한 범용 반도체의 중국 의존도를 다시 살펴보고 기업에 미칠 수 있는 간접적, 제한적 영향을 따져봐야 한다"며 "첨단 반도체가 미래 경제안보 패권 경쟁과 직결된다면 범용 반도체는 현재 경제 전반과 관련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일단 미국의 이번 실태 조사에 당장 미국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포함될 가능성부터 살펴보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조사 범위와 계획이 나오진 않았지만,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필요 시 미국 정부와 협력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효로 인해 자동차 업계가 예기치 못한 후폭풍을 맞은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행보 하나하나가 국내 경제에 미칠 잠재적 여파를 주시하고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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