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는 선고하지만…노숙인에게 책 한 권과 10만원 건넨 판사

이정헌 2023. 12. 25. 14:4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부산의 한 법관이 50대 노숙인을 집행유예로 풀어주면서 진심어린 위로와 서적, 현금 10만원을 건넨 소식이 전해졌다.

20여년 간 떠돌이 생활을 하다 우발적 범죄를 저지른 노숙인에게 법에 따라 유죄는 선고하지만, 앞으로 사회 일원으로 정착하길 바라는 마음도 전한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박주영 부장판사
50대 노숙인에 집행유예 선고한 뒤 위화의 소설 ‘인생’과 현금 건네
“사회보장 제도 속에서 살길”
국민일보 DB

부산의 한 법관이 50대 노숙인을 집행유예로 풀어주면서 진심어린 위로와 서적, 현금 10만원을 건넨 소식이 전해졌다. 20여년 간 떠돌이 생활을 하다 우발적 범죄를 저지른 노숙인에게 법에 따라 유죄는 선고하지만, 앞으로 사회 일원으로 정착하길 바라는 마음도 전한 것이다.

24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에 따르면 형사1단독 박주영 부장판사는 특수협박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지난 20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 2년을 명령했다.

노숙인 A씨는 지난 9월 28일 오전 1시쯤 부산의 한 편의점 앞에서 다른 노숙인 B씨와 함께 술을 마시던 중 말다툼을 하게 되자 손수레에서 칼을 꺼내 B씨를 위협한 혐의를 받는다.

박 부장판사가 실시한 ‘판결 전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칼을 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스스로 칼을 밟아 부러뜨렸다고 한다. A씨는 “손수레에서 술자리까지 약 4m가 떨어져 있어 B씨는 칼을 든 자기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A씨가 칼을 들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시민의 신고로 A씨는 경찰에 체포됐고 주거가 일정치 않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박 부장판사는 선고 직후 A씨에게 “앞으로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려고 하느냐. 주거를 일정하게 해 사회보장 제도 속에 살고 건강을 챙기시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A씨에게 중국 작가 위화의 책 ‘인생’과 현금 10만원을 주면서 “나가서 상황을 잘 수습하고 어머니 산소에 꼭 가봐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박 부장판사는 부산일보에 “평소 독서를 좋아하는 A씨에게 책을 줬고, (선고 당일이) 한파였는데 당장 현금이 없는 것으로 보여 고민 끝에 하루 이틀 정도는 찜질방에서 지내라고 현금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접수된 A씨의 공소장을 본 뒤 그가 걸어온 삶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호관찰소에서 ‘판결 전 조사’를 의뢰했다. 통상 피고인이 구속되면 재판부에 가족과 지인 등이 보내는 탄원서가 들어오는데, A씨는 그조차 전무했기 때문이다. 판결 전 조사란 법관이 판결 전에 피고인의 인격과 구체적인 삶 등을 면밀히 살피기 위해 실시하는 조사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경남 출신인 A씨는 부모가 사망한 뒤 30대 초반에 부산으로 넘어와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부산 전역을 돌아 다니며 27년 동안 폐지나 고철 등을 수집해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휴대전화도 없으며, 주민등록 호적 역시 말소된 상태였다.

박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과 지원이 개인적인 미담으로 다뤄지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그는 부산일보에 “법복을 입는 순간 스스로가 형사사법 절차이기 때문에 평소 엄격하게 재판을 진행하는데, 따뜻한 법관으로만 비칠까 걱정스럽다”며 “무명에 가깝던 사람이 법정에 선 순간 형벌과 함께 사회적 관심이 들어간다면 제2의 범죄에 휩쓸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