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20년간 내 작품 공개 말라"…최초 추상화가 유언, 왜
힐마 아프 클린트 다큐 개봉
이숙경 관장 "서구 백인男 중심 미술사
이슬람 미술, 중국·한국 회화사도 배제
…전지구적 미술사 다시 써야"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영적 체험을 연기한 칸 국제영화제 수상작 ‘퍼스널 쇼퍼’(2016), 스웨덴의 잔혹한 축제를 그린 공포 걸작 ‘미드소마’(2019), 두 영화의 공통점은? 스웨덴 추상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에게 영감 받았다는 점이다.
“사후 20년간 내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는 그의 유언으로 봉인됐던 아프 클린트의 그림들이 전세계 예술계를 흔들고 있다. 201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아프 클린트 회고전에 개관(1959년) 이래 최다 관객인 60만명이 찾아온게 열풍에 불을 붙였다. 특히 추상화 역사를 5년이나 앞당겼다. 그가 현대적 추상을 제시한 ‘원시적 혼동, No.16’(1906)은 지금껏 최초의 추상화로 알려진 바실리 칸딘스키의 ‘구성 V’(1911)보다 5년 먼저 그려졌다.
과학이 우주를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던 19세기말 경 아프 클린트는 추상화를 ‘발명’해간다. 영매를 자처하기도 한 그는 세상을 향한 독특한 시각을 1500여점의 작품, 2만6000쪽 노트에 남겼다.
칸딘스키 5년 앞선 추상화 발명가
Q : -힐마 아프 클린트는 어떤 화가인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것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인간의 지식 범주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을 때 추상미술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작가다. 추상이지만 자연주의적이다. 화폭의 규모에서도 시대를 앞섰다. 캔버스보다 아주 큰 종이를 사용해 꽃‧잎사귀, 물의 소용돌이, 은하수의 나선형태 같은 일상 속 소재들을 서정적, 신비주의적 방식으로 그렸다.”
Q : -그의 대표작은 무엇인가.
“포스터에 쓰인 ‘더 텐 라지스트(The Ten Largest)’ 연작이다. 호수 등 북구의 자연이 준 색채를 자연스럽게 담고 있다.”
Q : -왜 자신의 작품을 사후 20년간 공개하지 말라고 했나.
“세상이 자기 미술을 따라잡는데 20년은 걸릴 거라 생각한 것 같다.”
Q : -동시대에 저평가된 이유는.
“사실 추상미술 자체가 금세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말레비치, 몬드리안 이런 거장들도 비판받았다. 자연주의적이고 재현적인 서구 미술사에서 낯설고 어려운 것으로 여겨졌다. 일부 평론가는 저급한 것으로 보기도 했다. 이 다큐에서 아프 클린트가 인정받지 못한 가장 중요한 구조, 여성에 대한 편견을 보여주는 건 일종의 실마리다. 이런 방법론을 다른 곳에도 적용할 수 있다. 백인이 아닌 우리가 봤을 땐 서구 중심의 미술사엔 다른 편견도 많다.”
Q : -전 지구적 미술사를 쓰는 게 당신의 사명이라고.
“서구 백인 남성 중심적인 틀과 문화적 선입견이 존재해왔다. 다시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5년간 해외에서 활동해왔는데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미술관의 인식이 많이 발전하고 개방적으로 변했다. 서양미술사 뿐 아니라 동양 미학‧동양미술사, 일본‧중국‧인도 미술사도 공부했는데, 그런 지식을 살려 서로 다른 문화 간의 관계를 연구해보고 싶다.”
Q : -일본 작가 모리유코와 함께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에 참여하게 됐는데.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은 1956년에 시작돼 우리(한국관 1995년 설립)보다 역사가 긴데, 최초의 외국인 큐레이터가 된 게 감사하다. 문화적으로도 흥미롭다. 역사적 갈등이랄지, 식민주의 역사란 게 있잖나. 굉장히 다른 목소리를 가진 큐레이터와 작가가 협업할 때 그런 부분들이 어떤 새로운 사고로 등장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다.”
Q : -최근 한국 미술이 해외에서 조명받고 있다.
“좋은 미술작품이 있는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한국은 한국전쟁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의 현대미술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 같다.”
Q : -글로벌 미술 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남의 문화를 존중하고 관심 갖는 게 중요하다. 지식을 넓히고 이게 문화적 편견은 아닌지 자문하면서, 세상에 더 흥미롭고 의미 있는 예술은 없는지 계속 연구해야 한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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