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더는 특별하지 않을 때, 이렇게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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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기자]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여동생과 카톡을 하다 "크리스마스날 뭐할 거야?"라는 나의 질문에 돌아온 심드렁한 대답. "크리스마스날 뭐 별거 있나, 점점 감흥이 떨어져, 언닌?"
슬프지만 동생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끄덕이고 말았다.
"맞아, 점점 나이들수록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도 설렘도 떨어진다야.애들이랑 케이크 파티나 하지뭐."
나이들수록 감흥이 떨어지는 건 비단 크리스마스 뿐이랴. 어렸을 땐 특별하게 느껴졌던 날들. 생일, 추석, 설날, 어린이날 등등 모든 것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반비례하여 그 감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자연의 섭리인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런 날들을 손꼽아 기다리며 행복감에 젖어 살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내 기억 속 최초의 크리스마스는 바로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쯤이다. 대여섯살 쯤 됐었던가? 전날엔 보이지 않던 냉장고 위 하얀색 케이크상자. 의문의 상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한참을 바라보았었다. 엄마는 "간밤에 산타할아버지가 놓고 갔어." 그 당시 버터크림이 발려진 분홍색 꽃모양 장식의 케이크는 특별한 날에만 맛볼 수 있었기에 과히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었다. 좁은 거실이 울리도록 방방 뛰며 신나했던 기억이 점처럼 남아있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크리스마스는 친구들과 함께였다. 작은 시골마을에 살았던 터라 온전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못 느꼈지만 읍내 사거리에 자리한 그 당시 가장 세련되고 큰 크리아트라는 문구점은 우리의 크리스마스 욕구를 충족시키기엔 충분한 곳이었다. 크리스마스 입체카를 사고, 인형, 곱창 머리끈, 팬시용품 등을 사서 예쁜 포장지로 포장해 친구들과 선물증정식을 가지고 과자 한 봉지씩 사서 도서관 휴게실에서 과자파티를 하며 행복한 웃음을 머금던 그 시절. 방학까지 함께 겹쳐 더없이 즐거운 나날을 보냈었다.
중고교 시절 크리스마스는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 당시 '크리스마스날=대구 동성로 가는 날'로 친구들 사이에선 암암리에 공식화 되어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부모님 허락을 받은 뒤 크리스마스 날이 되면 청도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표를 끊어 설렘과 함께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 안엔 이미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우리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을 가득 안고 있었다. 25분여 남짓 걸려 도착한 대구역.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한 인파가 쏟아져 나오고 우리는 그 인파와 함께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물든 동성로 시내로 유유히 유영하듯 나아갔다.
그곳은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천국이었다. 오색찬란한 거리거리의 성탄빛이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끌고 대형트리와 거리에 포근히 울러퍼지는 캐이 귀를 타고 들어가 온몸에 퍼질 때면 우리는 마치 크리스마스 동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간 듯 환상적인 기분에 취했더랬다. 홀린 듯 크리스마스 풍광에 취했다가 허기가 느껴질 때면 빨간코에 노란 오버롤을 입은 아저씨가 반기는 가게에 들어가 입에 마요네즈를 잔뜩 묻히며 햄버거 세트를 먹고, 작은 골목골목의 액세서리 가게에 들어가 윈도쇼핑도 하고, 돌아오는 길엔 중앙로 지하상가 교보문고에 들러 뿌까인형이 그려진 다이어리를 사서 들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날은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고 그 여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 이후 성인이 되고 맞은 크리스마스는 연인과 함께였던 것 같다. 대학시절 난생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 크리스마스 특집 옴니버스식 로맨스영화를 보고, 머플러와 장갑 선물을 받으며 수줍은 미소를 건네던 그 장면이 선연히 기억에 남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연인과 무엇을 할까 어디를 갈까 가슴 설레는 고민을 하며 보냈었던 것 같다. 물론 연인이 없어서 크리스마스는 케빈과 함께 라는 씁쓸한 말을 내던지며 친구와 영화보러 간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 머릿속 크리스마스에 대한 감흥은 결혼을 기점으로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30대가 넘어가고 나선 일에 허덕이느라, 그리고 아이를 낳고선 육아에 파묻혀 제대로 된 캐럴을 듣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올해는 특히나 복직을 했고, 직업 특성상 12월이 가장 바쁜 달이므로 크리스마스는 내게 사치였다. 그러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주일 전, 아이들의 유치원 어린이집에서 같은 공지가 왔다.
"22일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으니 빨간 옷, 크리스마스 선물, 소품 준비해서 보내주세요."
일로 정신없는 와중에 받은 공지에 얼떨떨했으나, 준비 못한 엄마로 인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제대로 즐기지 못할 두 아이들을 그리며 퇴근 후 부랴부랴 대형 문구점에 들렀다. 그곳은 이미 크리스마스 물결로 가득했다. 문구점 안에 아늑히 울러퍼지는 캐이 내 고막을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대형 트리에 반짝이는 오색전구알이 피로에 젖은 내 눈을 환히 밝혀주었다. 바쁜 나날에 치여 까맣게 물든 내 마음이 일순 환해져왔다.
아이들 선물을 찬찬히 고르며 나는 어린 시절로 잠시 타임슬립한 기분이었다. 인형, 로봇 등등 어린 시절 내가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을 내게 선물해준다고 생각하며 찬찬히 골랐다. 첫째을 위한 고양이발 미니카메라, 둘째를 위한 시크릿 쥬쥬 요술봉. 잠들어있던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 그 시절 느꼈던 행복이라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맞아, 크리스마스는 내게 이런 날이었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감을 선물해주던 그런 날. 크리아트에서 선물을 사고 동성로에서 크리스마스 물결에 휩쓸려가며 환상적인 하루를 보냈던 그 날들이 마치 영화처럼 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아이들 선물을 양쪽 손에 들고 나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이들어감에 따라 감흥을 잃는 이유는 바로 감흥을 일으키는 무언가를 내게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어린시절 크리스마스날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바로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해 좋아할 누군가를 위해 애써 선물을 고르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며 분위기에 취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물든 시내거리를 걷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캐럴을 듣는 등 그 날을 즐기기 위한 나만의 의식을 치렀기 때문이다. 남들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 온전히 내가 한 일이라서 행복할 수 있었다.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척박한 하루를 보내고 있더라도 특별하게 주어진 그날엔 어린시절처럼 일부러라도 캐럴 들으며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고, 작은 케이크를 사서 초에 불을 밝히며 눈을 촉촉하게 만들고 누군가를 위한 크리스마스 카드와 작은 선물을 고르며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보는 것. 숨어있던 내 안의 감흥을 일깨우는 방법이 아닐까? 누군가가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닌 내가 나를 위해 하는 여러 가지 행위들 말이다.
아이들 선물을 사가지고 나오는데 여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쓴 7살 아들의 편지 |
ⓒ 이유미 |
덧붙이는 글 | 작가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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