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치솟자, 아이 안고 뛰어내린 아빠 숨졌다…성탄절 참변 [방학동 화재 참변]
“아이고 어째. 애들 아빠가 죽었다며. 어떡하면 좋아. 크리스마스라 다들 행복하게 지내려고 했을텐데...”
25일 오전 서울 방학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은 검게 그을린 아파트 외벽을 바라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 아파트 3층에선 이날 오전 4시 57분쯤 불이 났다.
바로 위층에 살던 30대 남성 박모씨는 아래층에서 불길이 치솟자 먼저 소방서에 불이 났다고 신고한 뒤 부인과 함께 각각 0세·2세 자녀를 안고 4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박씨는 7개월 된 0세 아이는 이불에 싸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했지만 자신은 끝내 숨졌다. 어깨 골절상을 입은 박씨의 부인과 두 자녀는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연휴 마지막 날이자 성탄절인 25일 새벽 서울 방학동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불이 나 박씨 등 2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쳤다. 또 다른 30대 남성 임모씨는 11층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국은 연기 흡입으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원을지대병원에서 만난 유족들은 “아이고 어떡해. 우리 집에 불이 난 것도 아닌데. 우리 아들을 먼저 데려가면…”이라고 오열했다.
목격자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새벽 화재 현장은 불길이 삽시간에 12층까지 번질 정도로 급박했다. 아파트 외벽 그을음은 15층까지 이어져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아파트 주민은 “집에 있었는데 갑자기 공기청정기가 소리 내면서 빨갛게 변하더라. 윙윙거리는 소리로 공기정화 작업을 하는데 이상하다고 느꼈다“며 “창문을 열어보니 검은 연기와 불길이 보였다”고 말했다. 불이 난 1·2호 라인이 아닌 옆 3·4호 라인에 거주하던 한 주민은 “바람을 타고 연기가 번져 저도 연기를 마셔 어지러웠다. 대피한 덕에 괜찮다”고 말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57분쯤 도봉구 방학동의 23층짜리 아파트 3층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당국은 오전 5시 2분쯤 선착대가 도착한 직후 대응 1단계를 발령했으며 차량 57대와 인력 222명을 동원해 화재를 진압하고 주민 200여명을 대피시켰다.
큰불은 오전 6시 36분쯤 잡았다. 불이 완전히 꺼진 건 화재 발생 3시간여 만인 8시 40분이다. 불이 난 집 거주자인 70대의 남녀 2명은 밖으로 뛰어내려 생명을 건진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아파트 3층 내부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일단 겨울철 난방용 전열기 등 사고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26일 오전 합동 현장 감식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화재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주민들은 단지 내에 위치한 임시대피소에 대피하거나, 치료를 위해 병원에 머물고 있다. 도봉구청은 현장에 통합지원본부를 꾸리고, 재난 구호 키트 등을 제공하는 등 이재민 구호활동에 나서고 있다.
이찬규‧김대권‧김정은‧이아미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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