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디 결혼이야기] 남편이 돌아왔다, 잔소리도 함께
공부하는 남자와 결혼해서 18년간 가장 노릇을 하던 아내. 대학원 석사 시절에 결혼해서 박사, 강사를 거쳐 유럽 대학 교수가 되어 떠난 남편.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를 넘어 일 년에 서너 번 보는 롱디 부부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최혜선 기자]
남편이 돌아왔다. 학기가 끝난 게 12월 14일. 비행기에 오른 게 19일. 도착한 게 20일이었다. 9월 15일에 갔으니 정확히 3개월 하고 5일 동안 우리는 롱디 부부였다.
이십대 때 한국에 여행 오는 일본 관광객들을 가이드 하는 일을 9개월쯤 했던 나는 도착 시간이 오후 4시 40분이면 출국장에 나오는 건 그로부터 30~40분 쯤 후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남편이 없는 동안 자동차 배터리 꺼뜨리지 않으려고 매주 한 번씩 빼먹지 않고 마트 운행을 했던 터라 용기를 내어 공항에 차를 가지고 나갈까 하고 물었다. 남편은 인천공항은 주차하기도 힘들다며 그냥 대중교통을 타고 오라고 했다.
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했다. 들어갔을 때 눈에 띄는 출국장 앞에서 기다렸다. 3개월여 만에 만나는 남편이 출국 게이트에서 나오는 모습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동영상 모드로 맞춰 놓은 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남편이었다.
"어디야?"
"나, 출국장 앞."
"나 나왔는데?"
"응? 나 당신 찍으려고 카메라 켜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남편은 E 출국장에서 나왔고 나는 C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으로 누군가를 마중나가는 일은 근 20년 간 하지 않다보니 비행기 편에 따라 출국 게이트가 다르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 거다.
"바보냐? E로 와."
"당신도 걸어 와. D에서 만나자."
▲ 남편이 사온 선물 |
ⓒ 최혜선 |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둥 마는 둥 남편은 짜장면을 먹어야겠다고 했다. 남편을 배웅하러 왔던 날도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짜장면과 꿔바로우를 먹었었다. 뭘 먹겠냐고 묻는 남편에게 당신이 먹고 싶은 걸로 내 몫까지 시키라고 했다.
"당신은 짬뽕 먹고 싶지?"
그렇게 짬뽕 먹고 싶은 사람이 되어 짜장과 짬뽕, 꿔바로우로 이루어진 2인 세트메뉴로 첫 식사를 했다. 남편은 짜장을 거의 마시듯 끝냈다. 체코에서 한식 제대로 만들어서 팔면 대박이 날 거라며. 한국 음식 먹고 싶다는 사람은 많은데 팔지를 않는다고 한탄을 했다.
집에 다가올수록 남편은 아이들과의 만남을 기대했다. 중 2지만 아빠와 키가 비슷했던 아들이 많이 컸냐며, 이제 자기보다 더 컸냐고 곧 만날텐데 그새를 못 참고 내게 계속 물었다. 아직 아빠가 더 크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지 훌쩍 자라 아빠 키를 넘어선 지 오래라는 말을 듣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집에 들어서며 '아빠 왔다' 하면 아이들이 달려나와 안기는 순간을 상상했을텐데 실상은 달랐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긴장이 풀어진 아이들은 초저녁인데도 잠들어 있었다. 언제 집을 떠났나 싶게 남편은 침대 위로 올라가 아이들을 안아주며 인사했다. 아이들도 아침에 출근했다 돌아온 아빠를 대하듯 일상적인 재회였다.
짐을 풀고 식탁에 마주 앉은 남편은 '여기 이렇게 있으니 내가 체코에 가긴 했었나 싶다'고 했다. 어제도 집에 있던 사람처럼 남편은 싱크대에 남은 그릇을 설거지 하고는 집 곳곳을 살폈다. 테스리스하듯 짐을 쟁여놓은 베란다 창고에서 출장 간다고 캐리어를 꺼낸 후 다시 넣을 엄두를 못 내고 방치했던 공간을 정리했다.
▲ 분리배출은 남편이 맡은 일이었다. |
ⓒ 최혜선 |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남편은 일찍부터 일어나 대중목욕탕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딸아이를 만나 굳이 차로 학교에 데려다줬다. 다녀와서는 익숙하게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자동차 엔진오일을 갈고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생활 기반이 있는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부지런히 해나가는 남편을 보니, 체코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 여기서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얼마나 하고 싶어했을까 싶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내가 업무를 마칠 즈음 돌아와서 오랜만에 4인 가족 완전체로 집밥을 먹었다. 원래 밥을 많이 먹지 않는 사람인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체코에 간 이후 처음으로 먹는 밥 같은 밥이라며 감개무량해했다.
체코에 김치찌개 제대로 하는 한식당이 한 개만 있으면 좋겠다고 다시 한번 말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니 남편이 사는 동네에 맛있는 한국음식점이 들어서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남편에게는 '한국 식재료 수입해서 외지에서 가게 여는데 드는 품이 같다면 이왕이면 시장이 더 큰 곳으로들 가겠지요?'라고 말했지만, 나도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줄 한국 음식점이 하나 생겼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란다.
남편이 가기 전에 우리는 내 회사 일이 끝나고 같이 식사를 한 후에 꼭 한 시간쯤은 걸었었다. 내가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거나, 모임을 할 때는 혼자라도 나가서 걸었다. 저녁 시간에 온라인 모임이 있는 날엔 남편 혼자 걷고 왔다. 남편이 돌아왔을 때 나도 온라인 모임을 끝내고 나와 모두 거실에 모였다.
남편이 아이에게 배우 이경영씨를 패러디하는 코믹 콘텐츠를 보자고 한다. 아빠와 아들이 '진행시켜' '좋았어' 같은 성대모사를 하며 꺽꺽대며 웃는 소리에 남편이 없는 몇 달간 우리집에서 사라졌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이들과 나만 있는 우리집은 서로 부딪힐 일도 딱히 없었지만 박장대소하며 웃을 일도 없었던 것이다. 대충대충 쓰기 편한 방식으로 정리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손이 한 번 더 가더라도 지저분한 것이 눈에 안 보이도록 깔끔하게 정리하고 사는 사람이다.
돌아오자마자 베란다 창고를 정리해준 남편은 아이들 방에 차례로 들어가 정리 좀 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슈야, 아빠 여기서도 공부해야 돼. 너 학교 간 동안 니 책상을 써야되니까 방 정리 좀 할래?"
"간장아, 방 정리 좀 해."
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얘들아, 각오해. 아빠가 계신 동안은 '정리 지옥'에 빠져서 살아야 할 테니까."
그렇다. 그가 돌아왔다. 한 사람이 돌아왔는데 우리 집엔 유쾌한 웃음소리와 정리하라는 잔소리도 함께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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