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주12시간 계산법' 바꿨다…"주52시간내 연속 밤샘 가능"

윤지원 2023. 12. 25. 09: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2020년 9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16일차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주 52시간만 넘지 않으면 주중 ‘크런치 모드’(야근과 밤샘을 반복하는 집중 근로)로 일해도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하루 21시간씩 철야 근무를 이틀 연속(하루 13시간씩 초과근무)하더라도 나머지 사흘간 10시간만 근무했다면 ‘주 12시간’ 연장근로 한도를 제한한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7일 “주 12시간 한도 초과 여부를 판단할 때 1주간 실근로시간 중 주 40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시간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며 “각 근로일마다 초과 시간을 합산한 원심은 법리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항공기 객실청소업체 대표 A씨가 근로자 B씨에게 사흘 또는 나흘씩 장시간 연장근무를 시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에서 원심을 일부 파기 환송하면서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53조1항이 1주간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 건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가 가능하다는 의미이지 1일 연장근로 한도까지 별도로 규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주 52시간(주 12시간 초과 근무) 한도 내에선 일별 초과 근로시간은 길어도 무방하다란 취지다.

이번 판결은 2018년 ‘주 52시간제’(법정 근로시간 40시간+최대 연장근로 시간 12시간) 도입 이후, 당사자 합의가 있을 경우 허용되는 ‘1주간 12시간’ 연장근로를 어떻게 계산할지 대법원이 3년 1개월간 심리를 벌인 끝에 내린 첫 판단이다. 대법원은 일별 초과근무를 단순 합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간 총 근로시간에서 법정근로 40시간을 초과한 부분만을 ‘연장근로’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김영주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2018년 6월 29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부 브리핑실에서 '노동시간 단축 시행준비'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앞서 A씨는 2013년 9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일하다 사망한 근로자 B씨에게 ‘1주간 12시간’의 한도를 초과해 연장근로(3년간 총 130개 주)를 시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근로기준법상 주 12시간 한도를 위반한 사용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B씨는 통상 주말 근무는 하지 않고, ‘3일 연속 근무 후 하루 휴무’를 얻는 식의 ‘집중 근무’ 체제로 일했다. 1심은 문제가 된 130개 주 가운데 109개 주를 유죄라고 판단했다. 2심의 판단도 같았다.

그런데 대법원이 ‘1주당 최대 12시간’의 연장근로 시간 계산법을 두고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근로기준법 50조가 정한 ‘법정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다. 여기에 더해 근로기준법 53조 1항은 “근로자가 동의하면 1주간에 총 12시간을 연장근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원심은 ‘12시간 연장근로’를 각 주별로 Ⓐ 하루 8시간을 초과해 일한 시간을 주간 합산하는 방식(일별 합산법), Ⓑ 주간 총 근무시간에서 법정근로 40시간을 빼는 방식(역산법)을 각각 적용해, 어느 하나라도 12시간을 초과하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는 기존 하급심과 실무 현장에서 통용되던 방식이다.

대법원 전경, 뉴스1

반면 대법원은 Ⓐ 일별 합산 방식이 아니라 Ⓑ 역산법으로만 연장근로 시간을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109개 주간’ 가운데 총 3개 주는 주간 최대 52시간을 넘지 않았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예컨데 원심은 근로자 B씨가 2014년 4월 셋째 주인 15일 12시간, 16일 11시간 30분, 17일 14시간30분, 20일 11시간30분 등 나흘간 하루 8시간을 초과해 근무한 시간을 합산하는 방식(4시간·3시간30분·6시간30분·3시간30분=17시간30분)으로 주 12시간 한도를 초과했다고 봤다. 반면에 대법원은 근로자 B씨가 같은 주 나흘간 총 49시간30분 일했기에 주 40시간 법정근로시간에서 9시간30분만 초과해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봤다.

민주노총 등 제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4월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주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 폐기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스1

이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선 “사업주를 압박했던 엄격한 근로시간 계산법이 이제야 바로 잡혔다”(대형 로펌 변호사)는 반응과 “자칫 과로사를 일으킬 수 있는 판결”(지방법원 부장판사)이란 시각이 엇갈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하루당 30분만 초과해 일을 시켜도 사업주가 처벌받았는데 숨통이 트인 셈”이라고 말했다. 반면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단은 1주 단위 내에서도 몰아서 일하는 방식을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