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해괴한 검찰 쿠데타론과 범죄자의 사당화 회귀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정당의 놀라운 사당화 회귀 현상
피할 수 없으면 정면으로 맞서야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정치제도는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까? 생뚱맞게 들리겠지만 아주 현실적인 의문이다. 이 땅에 대한민국을 건립하고 민주공화정을 선포, 시행한 이래 75년여가 지났으나 대의제 존속의 앞날은 여전히 암울하다. 건국 초기에는 통치권자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으로 인해 민주정이 파탄의 위기를 거듭 경험해야 했다(그 시대적 불가피성과 정권의 공과와는 관계없는 제도 자체만의 평가).
결정적 전기는 1987년의 ‘6‧29선언’이었다. 35일간 법무부 장관으로 재임했던 조국 씨가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가리켜 “노태우의 길을 가려 할 것”이라고 했다던데 그 노 전 대통령이야말로 명실상부한 정치민주화의 길을 연 인물로 기록되어야 옳다. 정치적으로만 말하자면 그렇다. 그리고 이는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업적이다.
조국 씨의 해괴한 검찰쿠데타론
조 씨는 24일 페이스북에 “완벽한 검찰공화국의 수립을 위한 포석이 놓였다. 이제 ‘당, 정, 청(=용산)’이 모두 검찰 출신에 의하여 장악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더불어민주당은 전과자‧욕쟁이에 의해 장악된 것인가? 검찰 출신 인사들이 요직에 앉은 것이 왜 문제인지도 설명해 줘야 한다. 변호사와 법률가는 괜찮은가?
“2019년 ‘검찰 쿠데타’가 시작되었다고 문제 제기했을 때 과한 규정이라고 동의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 앞 다투어 ‘검찰 쿠데타’란 말을 쓰고 있다.”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것인지, 사람 보는 눈이 남달랐다는 것인지, 어쨌든 황당한 자화자찬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국의 검사와 검찰조직을 이끌고 주권재민의 민주체제를 둘러엎었다는 말인 것 같은데 그게 논리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가능하기는 한 건가? 군부(軍府) 쿠데타는 ‘경성(硬性) 쿠데타’, 검부(檢府) 쿠데타는 ‘연성(軟性) 쿠데타’라는 말장난도 했다.
그러니까 조 씨 일가의, 많이 치사한 범법행위에 대해 수사를 시작한 게 쿠데타였다고 하는 것 같은데, 자존망대 (自尊妄大)도 이쯤 되면 병증일 수가 있다. 자신에 이어 등장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당시)의 온갖 핍박에도 자리를 내놓지 않고 버틴 것이 쿠데타적 행태였다는 건가? 문재인 대통령(당시)이 조 씨에게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까지 말했는데도 검찰이 수사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아니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서 비리 의혹이 있는 그 당의 유력자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여온 걸 쿠데타라고 규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게 법치의 제1원리 아닌가? 그런데 민주당과 전 정부 유력자들은 “왜 우리 편 사람들을 일반 국민과 똑 같이 대하느냐”며 검찰을 공격해 왔다. ‘검사공화국’ ‘야당 탄압’ ‘정치 탄압’이라는 표현도 예사로 구사했다. 국가의 핵심 형사사법기관인 검찰을 정치·사회적 악으로 규정하길 서슴지 않았다.
정당의 놀라운 사당화 회귀 현상
조 씨의 논리를 따른다면 민주당 이 대표, 송영길 전 대표, 그 외 모모한 당 소속의 피의자 또는 피고인들이야말로 국가권력의 정당한 행사 과정을 둘러엎으려는 쿠데타 세력일 수 있다. 이는 정당부(政黨府: 이런 造語가 가능하다면) 쿠데타인가 의원부(議員府) 쿠데타인가?
역대 국회에서 집권당 또는 다수당의 횡포와 행패가 이어져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1대 국회의 제1당처럼 교활하고 비열하고 이기적인 집단을, 적어도 정치 민주화 이후엔 경험한 바가 없다. 이들은 의회의 입법권을, 당 대표를 위한 사법적 방패로 전락시키고 보복적·위협적 입법행태를 공공연히 드러내 보였다. 정치도의는 물론이려니와 국회법까지 무시하고 농락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정당의 사당화(私黨化) 회귀 현상이다. 거대 정당이 1인에 의해 거의 완전하다할 정도로 장악되었다. 이런 현상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팬덤 정치·진영 정치로 인한 보스정당체제라고 하더라도, 입만 열면 민주화 공로를 내세우는 사람들의 정당 아닌가. 민주화투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그 당을 지배하게 된 것은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이런 정치 현실이 우리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존속 가능성을 회의(懷疑)하게 한다. 정당이 특정 개인이나 특정 세력의 사적 욕구 추구와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을 국민 모두가 목격하고 있다. 정당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바탕으로 거대한 권력기관화 했다. 국가 3권에 1권이 더 추가됐다. 정당권이 입법·행정·사법권 위에 군림하게 된 것이다.
한 정당이나 정당연합 혹은 연대가 총선에서 의석 60% 이상만 차지하면 무소불위의 입법권을 휘두를 수 있다. 민주당의 입법권 농단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앞으로도 이런 의석 구도가 없으란 법은 없다. 행정권보다 정당권의 비대화가 초래할 위험은 더 크다. 행정권에 대해서는 제도적 제동장치가 상시 가동되고 있지만 정당에 대한 제도의 감시체제는 상대적으로 아주 느슨하다. 게다가 팬덤 혹은 진영을 업고 나설 때는 대적할 상대가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정면으로 맞서야
민주당은 당 대표 보호를 위해서라면 법과 제도를 바꾸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정부 여당을 위협하기 위해, 혹은 세 과시를 위해 ‘탄핵’ 또는 ‘특검’ 카드를 걸핏하면 꺼내든다. 요즘엔 ‘김건희 특검’ 밀어붙이기 재미에 푹 빠졌다. 총선용 ‘꽃놀이패’로 여기는 빛이다. 윤 대통령이 거부하든 수용하든 이익은 민주당 몫이 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총선 여론을 선동하는 데 이만한 호재가 달리 있겠는가.
민주당 이 대표에 대한 수사와 기소에는 ‘정치탄압’이라고 소리를 질러대면서 김 여사 특검 수사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고 주장한다. 빅딜을 하든지, 아니면 선동에 당해 보든지 알아서 하라는 협박처럼 들린다. 그래서 언론들은 이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기사를 쏟아낸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이 게임에서 밀리면 한 전 장관은 첫 스텝부터 꼬이게 된다. 길은 하나다. 피할 수 없으면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선거기간을 몽땅 잡아먹고 말 특검을 수용하는 것은 총선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공세 또한 전형적인 ‘여의도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찾아보면 고치거나 버려야 할 ‘여의도 문법’ ‘여의도 방식’ ‘여의도 구조’는 아주 많다.
정당의 중앙당 중심체제 탈피, 정당 공천제도의 획기적 개선, 정당에 대한 국고지원 제도 폐지, 국회의원 정수 감축, 국회의원 특권 및 특혜 폐지, 입법·사법·행정부의 관계 재정립, 국가 통치 체계 개혁, 과도한 국회의원 유지 및 예우 비용 축소, 지역 정주체제 구축을 위한 획기적 지방발전 정책 수립 등이 그 예다.
수세로 일관하면 선거에서 질 수밖에 없다. 욕심을 비우면 고쳐야 할 것들이 보이고 그걸 공약할 용기가 생긴다. 대한민국의 대의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진정한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다. 국회를 명실상부한 민의의 전당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이 절실한 과제인지를 파악하고 실천할 것이 요구된다. 그 첫걸음이 ‘내 몫 덜어내기’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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