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다""프리랜서다" 4년새 신분 4번 바뀐 기구한 '이 직업' [팩플]
플랫폼 종사자는 프리랜서일까,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일까. 법원이 '타다 베이직' 운전기사를 플랫폼에 종속돼 일하는 근로자라고 판단하면서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정체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무슨 일이야
24일 플랫폼 업계,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은 지난 21일 타다 운영사 VCNC 모회사였던 쏘카가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쏘카) 패소 판결했다. “타다 기사는 근로자이고 쏘카는 실질적 사용자”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인력공급업체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타다 기사로 일하던 A씨가 2019년 7월 차량 감차를 이유로 계약을 종료당하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시작됐다. 지노위는 A씨가 근로자가 아니라며 이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2020년 5월 ‘부당해고’ 라고 판정했다. 실질적으로 쏘카가 이들을 고용했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일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서울행정법원이 "쏘카의 근로자가 아니다"라며 이를 뒤집었다. 그런데 1년 5개월 만에 항소심 법원에서 또다시 판단이 달라진 것이다. 4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타다 기사는 프리랜서(지노위)→근로자(중노위)→프리랜서(1심)→근로자(2심)로 신분이 바뀌었다.
이게 무슨 의미야
이 사건은 국내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자성 인정 문제를 다룬 첫 소송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플랫폼종사자 수는 220만명. 이들의 근무형태를 두고 프리랜서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냐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임금, 해고, 휴가, 근로 시간 등에 있어 법적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이 일감을 중개만 하기 때문에 종사자들은 프리랜서에 해당한다고 주장해왔다. 항소심에서 사실관계 변화 없이 같은 사안을 두고 판단이 달라지면서 현장 혼란은 가중될 전망이다.
법원 판단, 달라진 이유
◦ 근로자성 인정 왜?: 근로자성 판단 주요 기준 중 하나는 업무 수행과정을 회사가 지휘·감독하는 등 종사자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일했는지 여부다. 판결문에 따르면 항소심은 1심과 달리 쏘카가 협력업체들에 제공한 매뉴얼과 가이드의 성격을 “노무제공을 규율하는 지침”으로 봤다. 즉 쏘카가 이들을 매뉴얼과 가이드를 통해 지휘·감독 했다는 의미. 재판부는 “(메뉴얼 등에) 운전 용역 수행을 위한 내용 뿐만 아니라 운행 전 차량 외부 세차 상태, 차량 파손 여부 확인, 주유 등 차량 관리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 있고, 운전 용역 제공 각 단계별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배차를 수락하지 않을 경우 각종 인사상 불이익이 예정돼 있어 (기사들이) 사실상 배차 수락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었다”며 “근무시간 등에 관해 자유로운 선택권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 사용자성은?: 타다 기사들은 인력을 공급하는 협력업체와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했다. 협력업체는 쏘카와 프리랜서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즉, 타다 기사와 쏘카는 형식적인 계약 관계가 없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협력업체는 사실상 임금,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고 봤다. 쏘카가 실질적 사용자라는 의미다.
'클로즈콜' 플랫폼 노동, 앞으로는
◦ 노동계는: 노동계는 이번 판결을 반겼다. 한국노총은 “노동법 적용을 회피하려 했던 플랫폼 업체들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정부와 국회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한 입법 등 제도적 논의해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플랫폼·직종·회사에 따라 종사자의 근로 형태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별 사안마다 ‘클로즈콜’(close call·승패가 아슬아슬한 경기 판정) 성격을 갖는 분쟁을 이어가기보단 관련 내용을 종합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미.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같은 사실관계를 두고 법원 판단이 엇갈려 현장은 혼란스러울 것”이라며 “제조업 중심, 대공장 시대에 생긴 근로자성 판단 기준이 현재와는 잘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하는 방식이 변한 만큼 플랫폼 종사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사회적 논의를 통해 반영하는 입법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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