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날짜까지 바꿨지만...우크라는 지금 되는 게 없다
" 우크라이나의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절망이 많다. "
도이치벨레(DW)는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많은 사람이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와의 전쟁에 지쳐 우울한 성탄절을 맞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의 한 우크라이나군 사령관은 최근 AP통신에 "모든 사람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쳤다"고 토로했다. 후방의 우크라이나 국민 대다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승리에 대한 희망이 작아지고 있다는 게 현지 반응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옹호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력을 없애기 위해 106년 만에 기존 1월 7일(율리우스력) 대신 12월 25일(그레고리력)에 성탄절을 갖기로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3일 "우크라이나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주간"이라며 자국군과 국민을 격려했다.
그러나 한껏 고무됐던 지난해 성탄절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지난 겨울엔 하르키우·헤르손 일부 지역을 수복하고 서방의 지원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사기가 드높았지만, 올겨울엔 서방 지원이 주춤하고 대반격은 사실상 실패했단 평가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우크라이나 국방부 내 부정부패가 터져나오고, 젤렌스키 대통령과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 사이 불화설 등 내분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대반격 사실상 실패로 좌절
오히려 병력 피해만 커졌다. 특히 대반격의 핵심 전선인 남부 헤르손주(州) 드니프로강 도하 작전에서 막대한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병대원은 언론에 "자살 임무"라고 표현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해 2월 말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군에서 38만3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특히 지난 6월 대반격에 나선 이후 약 반년간 15만9000명에 이르는 병력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45만∼50만명의 추가 병력을 동원할 계획이다.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지난 21일 "해외에 체류 중인 25∼60세 남성까지 징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추가 동원은 쉽지 않아 보인다. 개전 초기엔 '조국을 지킨다'는 명분에 자원입대자가 인산인해를 이뤘으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대도시 젊은이들은 뇌물을 써서 병역을 기피하는 등 입대자가 급격히 줄고 있다. 이로 인해 소도시 출신의 건강상 문제가 있는 40대 이상 입대 비중이 높아지면서 전투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보도(월스트리트저널·WSJ)가 나왔다.
러군 강해지고, 서방 지원 줄고
무기 사정도 개선됐다. 서방의 강력한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보다 전차(5.6배)·드론(16.8배)·탄약(17.5배) 등 주요 무기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북한과 이란 등으로부터 포탄·드론을 공급받고 있다.
리처드 배런스 전 영국 합동군 사령관은 "우크라이나군이 올해 유독 좌절감이 큰 이유는 올해 전투 성과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군이 점점 개선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를 더욱 좌절하게 하는 건,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발발한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지원이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공화당의 반대로 614억 달러(약 80조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이 포함된 예산안 협상이 내년으로 미뤄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달 중순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지만, 지난해 깜짝 방미에서 환영받은 것과 달리 '찬밥' 신세였다. EU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려 했던 500억 유로(약 72조원) 규모의 지원 예산도 지난 14일 회원국인 헝가리의 반대로 가로막혔다.
독일 키엘 세계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지난 8~10월 우크라이나 지원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거의 90%가 감소하며 최저치를 기록했다. 연구소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이 둔화하고 있다"며 "EU의 최대 지원이 최종 승인되지 않았고, 미국의 지원도 감소 추세여서 우크라이나는 불확실한 상태에 빠지고, 푸틴 대통령의 입지는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 수뇌부 불화설 솔솔
이런 와중에 우크라이나는 내분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잘루즈니 총사령관 사이에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부패 척결 차원에서 전국 각지의 병무청장을 전원 해임하고, 전황 교착 상황에서도 '무조건 승리'를 강조하자 잘루즈니 총사령관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국방부 부패도 잇따라 폭로됐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지난 22일 포탄 구매 계약과 관련해 15억 흐리우냐(약 521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국방부 고위 관리를 구금했다. 앞서 지난 1월에는 국방부가 식량을 부풀려진 가격에 구매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군 수뇌부와 갈등하는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내년 3월로 예정된 대선을 연기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국내 반발은 물론 EU 회원국 사이에서도 민주적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5번째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며 2030년까지 집권하기 위해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전쟁을 끝낼 마음도 내비쳤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휴전할 용의가 있다는 신호를 조용히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러시아의 전·현직 관료들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반격 시도가 실패하면서 여론이 악화하고, 서방의 지원 의지도 약화한 현 상황이 휴전할 최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선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을 계속 지연시키기 위해 휴전 신호를 보내는 것"(ISW)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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