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저출산과 탄도미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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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를 만나고 아이를 낳으려는 욕망은 호모사피엔스의 DNA에 새겨진 본능이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저고위 회의가 NSC의 절반, 아니 5분의 1 수준이라도 열린다면 저출산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가 지금보다는 덜 한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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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를 만나고 아이를 낳으려는 욕망은 호모사피엔스의 DNA에 새겨진 본능이다. 그 본능 덕에 인류가 지금까지 유지됐다. 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최근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언급하며 “새끼를 낳아서 기를 수 없는 상황에서 새끼를 낳는 동물은 절대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없다. 그럴 때 오히려 낳지 않고, 상황이 좋을 때 새끼를 낳아야 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의 상황은 종족 번식 본능을 거스르는 정도에 이르렀다.
뉴욕타임스(NYT)로부터 “흑사병보다 심각하다”는 ‘진단’까지 받은 저출산은 20년 묵은 병이다. 저출산이 국정과제로 처음 채택된 때가 2004년 노무현정부 시절이다. 2004년 2월 민간위원장 체제의 ‘고령화 및 미래사회 위원회’가 출범했고, 이듬해 9월 대통령 직속으로 격상했다. 명칭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로 변경됐다. 노 전 대통령은 “출산율이 높아지거나 낮아지거나 효과가 있거나 없거나 관계없이 국가가 해야 할 기본은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출산이 사적 선택인 동시에,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된 것이다
저고위는 출범 약 20년을 맞았고 5년 단위의 저출산 기본계획도 이미 4차까지 나왔다. 하지만 저출산은 개선은커녕 악화했다. 합계출산율은 0.7명이 됐다. NYT는 저출산 문제가 북한과의 병력 비대칭으로 이어져 안보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흑사병, 저출산 쇼크, 대한민국 소멸 등 제아무리 극단적 표현을 동원해 봐도 추락 중인 저출산 흐름을 막지 못했다.
저출산이 ‘흑사병’이 된 것은 진단을 받고도 치료에 온 역량을 쏟아붓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고위가 꾸려졌지만 한국 사회가 저출산 해결에 전념했다고 볼 수는 없다. 대통령 직속이었던 저고위가 이명박정부에서는 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격하되기도 했다. 성 평등이라는 시대 흐름 속에 ‘출산 장려’가 여성을 출산 도구로 보는 시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임기 5년짜리 정권 입장에서도 저출산은 최우선 의제로 올리기는 부담스러운 주제다. 저출산은 심각한 문제지만 일자리나 안보처럼 시급한 문제는 아니다. 정부가 자원을 쏟아부어도 눈에 띄는 성과가 당장 나타나기 어렵다.
다행인 것은 저고위가 정권이 네 차례 바뀌는 와중에도 2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진보, 보수 정권 할 것 없이 저출산이 초당파적 국가 과제라는 인식은 공유하는 셈이다. 결국 남은 숙제는 저고위의 내실화다. 저고위는 현재 대통령이 위원장이다. 하지만 대통령 직속이라는 위상은 무색하다. 지난 3월, 무려 7년 만에야 대통령 주재 저고위 회의가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가가 우리 아이들을 확실하게 책임진다는 믿음과 신뢰를 국민들께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확실하게 책임’지려면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대통령이 지금보다는 더 자주 회의를 열어야 한다.
대통령이 주재하거나 임석하고, 국방부 외교부 등 관계장관이 모두 참석하는 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 상임위원회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쏠 때마다 거의 자동으로 개최된다. 저출산이 ICBM만큼 두려운 문제인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대통령이 5년 임기 중에 한두 번 저고위 회의를 주재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저고위 회의가 NSC의 절반, 아니 5분의 1 수준이라도 열린다면 저출산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가 지금보다는 덜 한가할 것이다.
임성수 사회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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