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법원장 추천제 보류, 변화의 첫걸음

2023. 12. 25.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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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영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

추천제, 도입 취지와 달리
'인기투표'로 변질

재판 지연 해결 위해선
법원장 역할·권한 제한하는
관행과 제도 개선해야

법관 인사제도 손 보고
대법원장 지원조직도 확충을

재판이라는 건 다른 사람들의 일일 뿐 살아가면서 송사를 겪을 일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리라.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쩌다 한 번쯤은 재판에 맞닥뜨리게 될 수 있다. 집에 도둑이 들 수도 있고, 운 나쁘게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처음 송사를 겪게 되면 가장 먼저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이 과연 자신의 사건을 어느 법원의 어느 재판부가, 어떤 법관이 담당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법관도 사람인지라 재판부마다 구체적인 판단 기준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재판을 진행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어느 법관을 어느 재판부에 두고 어떤 사건을 담당하도록 할 것인지 누가 정하고 있을까?

법원장은 해당 법원의 사법행정 사무를 관장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 재판부와 법관 배치를 정하는 사무분담, 개별 사건을 담당할 재판부를 정하는 사건배당, 소속 법관에 대한 근무평정 등이 모두 법원장의 권한에 속한다. 어느 법관에게 민사재판을 맡기고 어느 법관에게 영장 재판을 맡길지, 어떠한 사건을 어느 재판부에 맡길지 등 사항들이 모두 법원장의 권한 범위 내에 있다.

과거에는 대체로 고등법원 부장판사 중에서 서열에 따라 법원장을 임명해 왔지만 근래 지방법원은 지방법원 판사 가운데 추천을 통해 임명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법관 3인 이상의 천거를 받은 법관들을 상대로 투표를 통해 복수의 후보자를 대법원장에게 추천하면 그중 한 사람을 법원장으로 임명한다.

애초 대법원장의 법원장 임명 권한을 축소해 사법행정의 민주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이지만 실제 운영은 달랐다. 대법원장에 비판적인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은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법원장 임명에 관한 대법원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운영된다는 비판이 있었다. 인기투표 방식으로 변질되었을 뿐 아니라 법원 내 경쟁 구조를 무너뜨려 재판 지연의 원인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임 조희대 대법원장은 내년 법관 정기 인사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중단하기로 했다. 향후 재추진 여부는 시간을 갖고 추가 논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법원장 추천제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자기 법원의 사법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최고 법관을 소속 법관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기 어렵다. 지금껏 대체로 지역에서 존경받고 있고 후배 법관들의 신망이 두터운 분들이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통해 법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럼에도 현 시점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 시행을 보류한 것은 옳다. 추천 및 선출 절차를 지금과 같이 ‘누군지 잘 모르는’ 후보자들에 대한 ‘인기투표’ 형태로 진행하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것이 재판 지연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단순히 법원장을 어떤 절차로 임명하느냐는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적정한 사무분담을 통해 법관들을 전문성과 역량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는데 막상 사무분담이나 사건배당 기준에 관한 사항은 사무분담위원회를 통해 대부분 결정되고 있어 법원장이 권한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소속 법관들이 내부 협의를 통해 기일별 최대 선고 건수를 정하고 있는데도 법원장이 관여하기 어렵다. 근무평정을 하지만 인사상 영향은 별로 없어 근무평정의 고하도 대부분의 법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재임용 탈락은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정작 법원장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는 법원장에게 요청되는 기능과 역할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법원장들이 그 기능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특별한 근거 규정도 없이 법원장의 사법행정 사무에 관한 권한을 제한하고 있는 관행들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정비하고 개선할 것인지,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법관들을 인사상 어떻게 처우할 것인지 등에 있다.

내년 정기 인사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 시행을 보류하기로 한 결정도 그러한 변화를 위한 첫 발걸음으로 의미가 있다. 신임 대법원장이 짧은 시간 내에 미래 사법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 조직을 확충하고, 실무 조직도 대폭 보강해야 한다. 사법행정이 오롯이 국민을 위한 사법에 그 목표를 집중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최창영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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