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최고 성탄선물은 자유, 너무 늦지 않게 배달되길"[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탈북 다큐 주역 김성은 목사와 이현서 작가
■
「 미국 감독 제작 '비욘드 유토피아'
'지상낙원' 탈출한 두 가족 스토리
1000여명 탈북 도운 목사 김성은
기획부터 참여, 탈북 현장도 동참
TED 강연 유명 탈북작가 이현서
총괄프로듀서와 내레이션 맡아
」
내년 3월 10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앞두고 오스카 사무국은 지난 21일 출품된 다큐 114편 중에서 선정한 예비후보 15편에 '비욘드 유토피아'를 포함했고, 유명 영화 잡지 '버라이어티(Variety)'는 '비욘드 유토피아'의 수상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이 영화를 만든 여성 감독 매들린 개빈은 앞서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은 다큐 '기쁨의 도시(City of joy)'를 제작했는데, 영화의 소재가 된 주인공 콩고민주공화국 산부인과 의사 드니 무캉게르 무퀘게(68)는 2018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통일부 등 시사회, 1월 31일 개봉
'비욘드 유토피아'는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공개될 당시 티켓이 매진됐을 정도로 호평받았다. 최근엔 외교부·통일부·국방부·국가인권위원회에서 VIP 시사회를 열었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내년 1월 12일 일본에서 개봉되고, 31일엔 국내에 개봉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카데미상 수상 등 적절한 분위기가 마련되면 이 영화를 직접 관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언도 들린다.
이와 별도로 지난 2일 태영호 의원(국민의힘)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600석)을 가득 채울 정도로 성황을 이룬 가운데 특별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의 핵심 주인공인 두 탈북민 가족 외에도 주한 로마 교황청대사관과 스웨덴·튀르키예·멕시코·라트비아·에스토니아 대사관에서 외교관들이 같이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북한 인권과 탈북자 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다.
영화는 지난 10년간 북한 주민 1000여명을 구해내 미국·유럽에서 '한국판 쉰들러(Schindler)'로 불리는 충남 천안 갈렙선교회 김성은(58) 대표목사가 노용길(53)씨와 이소연(48)씨 가족의 탈북을 기획해 실행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에 담았다. 북·중 국경 지역은 중국 농민과 '탈북 도우미' 등이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했고, 중국-베트남 구간은 먼저 탈북한 가족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날아가 동행 촬영했다. 베트남·라오스 영상과 국내 영상은 한국팀이 맡았다.
시사회 직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노용길씨의 둘째 딸 진평(10)양은 "탈북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여기 와서 생각하니 북한 정권은 악마 같다"고 말했다. 이소연 씨는 "북에 남겨진 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마주 앉아 아들과 같이 밥 한 끼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해 관객들이 안타까워했다.
꽃제비 참상 보며 탈북민 돕기 결심
이 다큐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한 김성은 목사를 별도로 인터뷰했다. 백석대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1998년부터 사역을 시작했다. 전북 군산의 개척교회(에이스 중앙교회) 국장으로 일하던 2000년 무렵 두만강 인근 중국 투먼(圖們)에서 구걸하는 북한 어린이, 즉 '꽃제비'들의 참상을 보면서 탈북민 돕기에 앞장서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북·중 국경 지역에서 만난 탈북 여성을 아내(53)로 맞았고 아내의 한국 행을 궁리하면서 탈북 루트를 다각도로 개척했다. 그는 중국에서 탈북민을 돕다가 쓰러져 크게 다쳐 지금도 몸에 철심을 박고 있을 정도로 후유장해를 앓고 있다. 2019년 라오스 밀림을 다녀온 뒤 담낭을 적출했다. 특히 아내의 출산 당시 후유장해를 얻은 어린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계기는.
"2019년 초 마들렌 개빈 감독 측이 연락을 해와 '북한 주민의 실상과 중국에 머무는 탈북민 상황을 영화로 담고 싶다'며 협조를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수많은 탈북민을 구했다던데.
"내가 구한 1호 탈북민이 아내다. 직접 구한 사람이 300여명이고, 브로커를 통한 경우를 포함하면 누적 1000명이 넘는다. 지난 11월에 구한 탈북민 3명 중에는 중국 농촌에 씨받이로 팔려갔던 여성도 들어 있다."
-탈북엔 1인당 200만~300만원이 든다던데.
"탈북민이 입국한 뒤 정착금의 일부를 브로커에게 지불해야 하니 나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브로커는 '필요악'이다. 브로커도 여러 종류인데 중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도우미들은 믿을 만하다."
-영화를 보니 먼저 떠난 아들을 '밀알'이라 표현했는데.
"유골을 뿌린 서해에서 아내와 함께 울면서 '하느님이 너무 일찍 데려가셨다. 북한 아이들과 주민을 구하기 위해 밀알로 쓰셨다'며 이를 악물었다."
-지난 10월 중국이 탈북민 500여명을 강제 북송했다.
"중국 정부가 탈북민을 최소한 난민으로 인정해주기 바란다. 중국은 최근 유엔에 '북한의 고문 증거가 없다'고 회신했지만, 탈북민 3만5000명이 살아 있는 증거다."
의원 7명, 북송 규탄결의안 기권
-국회 본회의에서 중국의 탈북민 북송을 규탄한 결의안에 국회의원 260명 중 253명이 찬성하고, 윤미향·민형배·백혜련·김정호·신정훈·강성희·강은미 등 7명은 기권했다.
"기권한 국회의원들은 정체성이 의심스럽다. 문재인 변호사는 1996년 원양어선 페스카마 15호에서 선상 살인 사건을 저지른 조선족 범죄자들을 변호했다. 문 대통령 재임 시절 정부는 탈북 청년 어민 2명을 비밀 강제 북송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쳐온 86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대북전단 살포를 막고, 유독 탈북민 인권에는 침묵하는 것이 아이러니다."
-윤석열 정부에 바라는 것은.
"탈북민이 북한의 인권 실상을 증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 고맙다. 중국 정부와의 물밑 교섭을 통해 탈북민들이 제3국으로 갈 수 있도록 정부가 더 노력해주기 바란다."
-성탄절이다.
"지금도 중국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동포가 많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에 비하면 가장 소외된 탈북민을 돕는 과정에서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기쁜 일이다."
탈북민 최초 TED 강연 큰 반향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에서 영어 내레이션을 맡았고 총괄프로듀서로도 참여한 탈북 작가 이현서(43)씨도 인터뷰했다. 양강도 혜산에서 태어나 17세에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했고, 2008년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외대에서 영어와 중국어를 전공했고 2013년 대학 재학 중에 탈북민으로는 최초로 TED 강연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일곱살 때의 공개 처형 목격담, 가족을 북에서 구출한 사연 등을 담은 12분짜리 TED 강연이 폭발적 반응을 일으켜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4000만회를 넘었다. 2018년 2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으로 다른 탈북민 8명과 함께 백악관을 방문해 "중국 정부의 탈북민 강제 북송을 제지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탈북한 동기는.
"북한이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배웠는데 중국 드라마를 보면서 북한 정권에 세뇌당한 것 같아 내 눈으로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TED 강연 이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처음엔 거절했으나 '북한의 현실을 알리는 가교 역할을 해달라'는 한 출판사의 간곡한 제안을 수락해 2015년 『The Girl with Seven Names(일곱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를 출간했다. 지난 4월엔 한국어로 『이현서, 나의 일곱 번째 이름』을 냈다."
커피 한 잔의 소박한 자유에 감사
-책이 영화 제작으로 이어진 계기는.
"2016년 미국 현지에서 저자 사인회를 했는데 할리우드 유명 배우 로버트 드니로(80)가 다가와 '현서, 당신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까'라고 물었다. 탈북민 스토리가 영화로 만들어져 할리우드에서 상영되길 바라니 꼭 도와달라고 했더니 그날 현장에 있던 다른 분이 '비욘드 유토피아' 제작진에 내 책을 전달하면서 영화 제작으로 이어졌다. 뭔가 신비로운 힘이 작용한 것 같다."
-관객에게 미리 하고 싶은 말은.
"이 영화는 보수·진보의 얘기가 아니다. 북한이라는 가짜 유토피아를 탈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치를 배제하고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람들의 실상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이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나.
"대한민국이 내가 죽으면 묻힐 수 있는 '집'이라 느끼기까지 입국 이후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거창한 자유가 아니라 햇볕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 커피 마시는 소박한 자유에 감사한다."
-북한 주민에겐 어떤 성탄 선물이 가장 필요할까.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엔 성탄절이 없지만, 북한에 최고의 성탄 선물을 보낸다면 자유가 아닐까. 점점 요원해져 보이는 그 자유가 절실하다. 내가 살아 있을 때 북한에도 자유라는 성탄 선물이 배달되길 바란다.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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