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영의 마켓 나우] 기술 발전은 소득불평등을 악화하는가
소득불균형 심화는 1990년대 이후 경제학계가 일반적으로 수용하는 가설이다. 주요국들이 경제적 약자를 위해 정부지출을 늘리고, 산업정책과 보호무역 등 국가 이기주의를 강화하는 근본 이유도 소득불평등 확대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최근 소득분배 악화라는 장기 추세에 변화 가능성이 엿보인다. 인구 고령화, 인공지능(AI)·로봇 등 기술 발달, 정부 개입 강화 등이 가져온 결과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전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정체기를 넘어 감소가 예상된다. 생산요소가 희소해지면 그 요소의 가격(임금·이자·지대 등)은 오른다. 이민을 늘리지만 충분치 않다. 독일은 경기침체에도 70여만개 일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이고, 최근 베를린은 운전기사 부족으로 공공 버스 서비스 감축을 발표했다.
노동력 부족으로 기업은 AI·로봇 등 기술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기술로 대체되기 어려운 육체 노동자나 대면 노동자들의 일인당 자본량, 즉 자본장비율이 더욱 높아진다. 저임 노동자들의 생산성 향상과 임금 상승은 당연한 이치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데이비드 오터 교수와 동료학자들은 2023년 3월 논문에서 지난 10년간 미국의 임금이 빠르게 상승했는데, 특히 소득 하위 10% 근로자의 임금이 가장 빠르게, 상위 10% 근로자 임금이 가장 느리게 올랐다고 밝혔다.
개입주의든 포퓰리즘이든 정책변수도 저소득층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주요국 정부는 경제적 약자의 고용 증가와 임금 상승을 위해 지출을 늘린다. 최근의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주요 선진국에서 실질최저임금이 유지되거나 인상되는 이유다.
요컨대 기술발전과 함께 인구고령화와 정부지출 증가로 소득분배와 관련한 변화 가능성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주로 미국·유럽 이야기이고 우리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한국은 청년고용이 여전히 부진한 데다 AI 등 기술이 소득불균형을 완화하기보다는 직장을 빼앗을 가능성에 우려가 큰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기술 확산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기술 도입에 따른 한 부문의 생산성·소득 증가는 다른 부문의 수요·고용 증가 등 파급효과를 낳는다. ‘기술발전은 소득불균형 확대를 불러온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인구고령화 등 여타 환경변화를 고려해 기술발전의 영향을 면밀히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AI 등 기술 확산이 소득분배를 개선한다면 이는 엄청난 축복이다. 성장과 분배라는 딜레마에서 벗어나 각국이 기술개발에 힘을 모아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분배구조를 개선할 수도 있다.
신민영 홍익대 경제학부 초빙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결국 이 지경" 노홍철 깜짝 근황…휠체어에 지팡이, 대체 뭔일 | 중앙일보
- 그 섬의 여자는 참지 않는다, '이혼율 1위' 도시의 속사정 | 중앙일보
- 결국 소변줄 꽂고 기저귀 찬다…어르신 입원 한 달 뒤 닥칠 일 | 중앙일보
- 92학번 동기 조정훈, 尹사단 주진우...한동훈 정치 인맥은 | 중앙일보
- "변기도 뚫어줬다, 개인비서 전락" 원어민 교사 싫다는 학교들 | 중앙일보
- "산타에겐 너무 벅찬 소원"…美 부모 난감하게한 '성탄 선물' | 중앙일보
- 서울 마지막 달동네의 성탄 선물…'비타민' 같은 목욕탕 이야기 [르포] | 중앙일보
- "3·4·5·6등이 다 전학간대" 역대급 이전상장에 코스닥 떤다 | 중앙일보
- 삼성·애플 '큰 전쟁' 다가온다…AI폰 5억대 놓고 대혈투 | 중앙일보
- 아내 4명, 자녀 3명, 여친 2명…日 35세 백수男 놀라운 가족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