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낮추고 비워낸 동굴, 예수 탄생교회

2023. 12. 25.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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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나사렛의 요셉은 동정 수태한 약혼녀 마리아와 혼인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제국의 인구 총조사를 시행했고, 요셉 일가도 신고를 위해 본향인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마리아는 산기를 느꼈으나 몰려든 방문객들로 숙소는 만원이어서 겨우 마구간을 빌어 해산할 수 있었다. 아기 예수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눕혀진 까닭이다.

135년 로마제국은 탄생지로 전승되어 온 곳에 기독교 말살 책의 하나로 아도니스 신전을 지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모친 헬레나의 감화로 기독교를 공인하게 이른다. 독실한 신자인 헬레나 황후는 베들레헴을 친히 방문해 신전을 허물고 330년 그 자리에 소박한 탄생교회를 세웠다. 565년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바실리카를 완공해 현재의 예배당이 되었다. 이후 로마 가톨릭 뿐 아니라 아르메니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등 여러 교파가 수도원과 교회를 겹쳐지었다.

공간과 공감

1700여년간 수많은 증축과 관리 부실로 교회의 외관은 변형되어 폐허의 성벽 같아 보인다. 12세기 십자군들은 말을 탄 채 교회당에 들어가는 불경을 막기 위해 주입구를 1.2m로 낮추었다. 이 ‘겸손의 문’ 혹은 ‘좁은 문’을 지나 주 예배당에 들어서고 제단 옆 계단으로 지하에 내려가면 드디어 ‘탄생의 동굴’에 이른다. 동굴 제단 중앙의 14각 별로 둘러싼 성혈이 바로 탄생지점이라 전한다.

당시 유대 지역은 동굴을 깎아 가축의 축사나 서민들의 주거로 사용했다. “자기를 비워내어 사람들과 같이 되신” 하나님 예수는 비워낸 동굴에서 탄생했다. 이 ‘비워냄(kenosis)’은 예수 탄생의 신학적 주제이며 구원 메시지의 시작점이다. 현재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위치한다. 탄생지는 누추하고 비천한 곳이었고 2000년이 지난 지금 세계 최악의 분쟁지역이다. 가장 낮은 탄생이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듯이, 최악의 고통을 겪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도 최선의 평화를 맞기를 성탄절 아침 간절히 기원한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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