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황제 실종’ 사건
올 한 해 중국에서 나온 여러 뉴스 중에서 ‘가장 중국다운’ 기사를 뽑으라면, 기자는 지난 10월 보도된 ‘황제 실종 사건’을 꼽겠다. 명(明)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숭정제(崇禎帝)를 다룬 책 『숭정: 부지런했던 망국의 임금(崇禎: 勤政的亡國君)』이 출판 며칠 안 돼 서점에서 사라져야 했다는 기사다.
출판사는 인쇄 문제로 회수한다고 했지만, 항간에서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었기에 금서가 됐다’는 얘기가 나돈다. ‘패착의 연속이었고, 착오는 거듭됐다. 열심히 정사를 돌볼수록 나라는 망해갔다.’ 책 표지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책은 정말 시 주석의 역린을 건드린 걸까.
시진핑 주석의 나라 운영은 ‘중화 민족주의’와 ‘강성 권위주의’의 결합으로 요약된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몽(中國夢)’을 외치며 애국을 강조한다. ‘위대했던 중화 민족의 부흥’, 중화 민족주의는 그렇게 현실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중국몽 실현을 위해 선택한 게 바로 보다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다. 국가 권력은 점점 더 당으로 모였고, 당의 이념이 정치와 경제를 압도했다. 권위주의 국가는 국민의 생각을 통제하려 한다. 체제에 반하는 사상을 차단하지 않으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구글·유튜브 등 서방 인터넷을 차단하고, CCTV 등을 활용한 디지털 감시 체제를 강화하는 이유다. 책 『숭정』이 사라져야 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권력의 집중은 나라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지만, 그런 한편으로는 ‘정책 실패’의 위기도 키운다. 코로나19 때 무리한 봉쇄가 경제에 충격을 줬던 건 이를 보여준다. 공동부유 이념이 부동산 업계의 시장 논리를 압도하니 경제는 타격을 받는다. IT 플랫폼 기업의 고삐를 죄니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
그동안 중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느슨한 권위주의 정치’와 ‘포용적 경제’ 덕택이다. 중국 정치는 지난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꾸준히 민간에 대한 개입을 줄여왔고, 민간의 자율과 혁신을 부추겼다. 그게 중국 경제를 글로벌 ‘넘버 투’로 올려놓은 핵심이다. 시진핑 시대 ‘중화 권위주의’가 이 논리를 부정하면서 경제는 주춤하고 있고, 국민의 피로감은 높아가고 있다.
『숭정』이 시 주석을 겨냥한 책은 아니다. 그런데도 독자들은 서점에 진열된 책을 보며 그들의 지도자를 떠올렸고, 책은 서점에서 사라져야 할 운명이 됐다. ‘숭정제 실종’ 사건은 2023년 중국 사회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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