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부끄러운 포기
입사 7년차인 친구는 최근 팀 후배를 “포기했다”고 했다. 처음엔 후배가 회식에 안 간다 해서 ‘요즘 애들’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러다 업무 연락 답이 너무 늦어서 불만이 쌓였다고 한다. 어느 금요일엔 주말까지 급하게 끝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후배가 업무 도중 “먼저 가보겠습니다”하고 칼퇴근했다고 한다. 결국 친구가 밤까지 남아 잔일을 처리했다. “왜 뭐라고 안 했어?” 물었더니 친구 대답이 이렇다. “꼰대라고 생각할까 봐.” 입사 7~8년차 지인 대부분이 이렇게 잔소리 대신 한두 명씩 후배를 포기해본 경험이 있다.
연차가 쌓일수록 깨닫는 것 한 가지. 건방진 요즘 애들이 되기도, 고지식한 꼰대가 되기도 쉽지 않다. 위에는 “그건 아닌데요”라고, 아래에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요”라고 말하는 건 엄청 품 드는 일이란 걸 깨달아서다. 으레 3, 6, 9년차를 퇴사 욕구가 가장 높은 연차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9년쯤 지나면 적당히 포기하는 법을 익힌다는 뜻이다.
그 포기가 부끄러워진 건 최근 양당 초선 의원들을 보고서다. 정확히는 그들을 대하는 ‘선배 의원’들의 태도 때문이다.
올해 초 ‘나경원 반대 연판장’을 돌렸던 국민의힘 초선들은 수직적 당·청 관계를 지적한 중진들을 향해 “자살특공대”라며 퇴출까지 거론했다.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으로 구속된 송영길 전 대표에 대해선 반성 한 마디 없는 민주당 초선들은 당의 문제를 지적한 ‘이낙연 신당’에는 득달같이 반대 연판장으로 침묵을 압박했다.
“공천 때가 되니 이 당이나 저 당이나 초선이 완장 차고 한다”는 진중권 교수의 비판보다, 침묵하는 재선, 3선이 더 눈에 띄는 건 적지 않은 숫자 때문이다. 민주당 70명(재선 48명, 3선 22명), 국민의힘 38명(재선 21명, 3선 17명) 의원들이 초선의 ‘연판장 정치’에 뚜렷이 비판도 대안도 제시한 기억이 없다. 사석에선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데…”라면서도 적극적 목소리 대신 눈치보기 바쁘다. 양당 내에선 “재선의 최대 덕목은 눈치”라는 씁쓸한 자평까지 나온다.
그러니 멋진 재선 도전 대신 우울한 초선의 불출마가 줄을 잇는다. 얼마 전 불출마를 선언한 홍성국 민주당 의원은 “문제 제기를 국회 밖에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한다. 좌충우돌 초선에게 “이렇게 하면 국회가 달라질 것”이라고 방향을 제시하는, 또는 닮고 싶은 재선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2년 전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1년 이내 조기퇴사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절반이 ‘MZ 세대 조기 퇴사비율이 높다’고 답한 게 화제였던 기억이 난다. 후배를 포기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다른 친구가 말했다. “우리가 비겁하다. 그 후배도 잘 하고 싶었을 텐데.”
성지원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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