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에 상품 설명 정확했나…‘홍콩 ELS’ 자세히 따져본다
내년 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와 연계한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대규모 손실이 우려되는 가운데 24일 금융당국이 관련 민원을 유형별로 분류하는 작업에 나섰다. 대규모 분쟁에 앞서 유형별 손실 부담 기준 등을 마련해 신속한 배상 절차가 가능하도록 준비하겠다는 취지다. 불완전판매로 보기 어려운 유형들도 함께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관련 금융상품 투자 경험 유무, 가입 목적, 불완전 판매 정황, 은행의 입증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있다”며 “은행들은 해당 유형에 해당하는 건들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눠 조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건 은행이 고령 투자자에게 상품을 충분히 설명했는지 여부다.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60대 이상 고령층에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편입 주가연계신탁(ELT)·주가연계펀드(ELF) 잔액은 총 6조4541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판매 잔액(13조5790억원)의 47.5%에 이른다. 90세가 넘는 초고령층 고객 22명에게 판매한 잔액도 90억8000만원이었다.
금융당국은 ELS가 고난도 상품인 만큼 시중은행이 고령층 투자자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고 판매한 것인지 의심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엔 “의사소통도 어려운 90대 아버지가 3년 전 예금이자보다 낫다는 은행 직원 말만 믿고 가입했다”며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는 사연이 회자됐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ELS는) 은행 직원조차도 무슨 상품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며 “고령자인 은행 고객은 잘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데 이런 부분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자세히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명시된 ‘적합성 원칙’에 따르면, 금융사가 소비자의 재산 상황과 투자 경험 등을 고려해 부적합한 금융상품을 권유해선 안 된다. 이를 어길 경우 불완전판매 배상 시 손실 배상 비율이 높아진다. 2019년 해외 금리연계파생상품(DLF) 분쟁 조정 시에도 65세 이상은 5%포인트, 80세 이상은 10%포인트의 배상 비율이 가산됐다.
하지만 은행권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고령층이라 해도 ELS 투자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아 불완전판매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90대 고객이 ELS에 신규로 가입했다기보다는 오래전에 가입했던 고객이 90세 이후에도 상품을 유지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은행 입장에서도 초고령 고객의 ELS 신규 가입은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잘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ELS에 가입한 적 있는 투자자는 만기나 조기상환을 통해 수익을 낸 뒤 재가입하는 경우가 90% 정도 된다”며 “같은 상품에 투자를 반복하면서도 ELS가 원금손실이 나는 구조인지 몰랐다고 주장하는 건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손실을 본 ELS 투자자 대다수는 H지수가 고점을 보이던 2021년에 가입한 경우다. 2021년 초 1만2000선을 보이던 H지수는 급락해 최근 5500선을 오가고 있다. 금감원이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이 판매한 H지수 연계 ELS 중 9조2000억원 규모 만기가 내년 상반기 중 돌아온다. 당장 다음 달 만기 도래 규모만 해도 8000억원 수준이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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