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유방암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약 3년 전, 건강검진을 통해 유방에 뭔가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가족력은 없지만 지인이 유방절제술 이후 몇 년간 고생한 모습을 봐온 터라 덜컥 겁부터 났던 게 사실. 검사 결과를 들은 당일 초음파 촬영과 유방촬영술을 하고 싶었으나 예약이 차 6개월 후에나 가능했고, 그렇게 가슴이 ‘찌부’되는 고통도 잊은 채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들으러 갔다. “다행히 형태가 나쁘지 않네요. 악성 종양은 아니고 유방 조직 내 칼슘 성분이 침착된 석회로 보입니다. 당장 조직검사는 하지 않지만 사이즈가 커지면 위험하니 6개월마다 추적 검사가 필요합니다.”떠밀리듯 했던 건강검진을 통해 이 소식을 들은 후 ‘암이 남의 얘기가 아니구나’란 사실을 새삼 느꼈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에 따르면 2020년에만 전 세계적으로 약 230만 건의 유방암이 새롭게 진단됐는데, 이는 폐암 환자 수를 능가하는 수치다. 프랑스 국립암연구소(Institut National du Cancer)는 올해 여성 암 환자 17만7526명 중 6만1214명이 유방암 환자라고 발표했으며, 진단 나이도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미국은 50세부터 유방촬영술을 권고했으나 올해 5월부터 미국질병예방특별위원회(U.S. Preventive Service Task Force)에서 40세부터 정기적으로 유방 촬영을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 초안을 내놓았다. ‘무조건 이른 나이에 받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검사를 받으면 젊은 여성이 불필요하게 조직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어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린 여성들이 해마다 유방암 진단을 받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오고 있다. 2016년부터 유방암 진단을 받은 40세 이상 여성 비율은 매년 2%씩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 의하면 유방암을 진단받은 여성 11명 중 1명이 45세 미만이라고 한다.
국내 상황은 어떨까?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가 2022년 12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유방암은 수년째 여성 암 중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한국유방암학회는 30세 이후부터 매달 거울 앞에서 자가검진을 하고, 35세 이후에는 2년 간격으로 의사에 의한 임상검진을 해야 하며, 40세부터는 1~2년마다 유방촬영술을 받길 권고한다. 가족력이 있다면 30세부터 매년 전문가 검진을 받길 권한다. 국내에서도 젊은 유방암 환자들이 느는 추세인데, 39세 이하 환자가 11%로 서양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 그럼에도 유방암 조기 발견에 대한 인식과 실천은 미흡한 편이다. 유방암학회가 지난 9월 전국 20세 이상 60세 미만 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86%가 유방암을 걱정하거나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 검진을 받은 여성은 10명 중 6명에 그쳤다. 한국유방암학회에서 발행한 〈2022 유방암 백서〉에 따르면 유방암 환자의 수술 후 생존율은 1기에 발견했을 경우 96.6%이지만, 4기에 발견했을 때는 34%로 곤두박질친다. 유방암 조기진단이 예후에 크게 기여한다는 의미. 유방암의 대표 증상은 멍울과 유두 분비물 분비, 피부 변화 등이다. 유방암이 꽤 진행된 경우 유두에서 초콜릿색을 띠는 분비물이 나오기도 하고, 유두나 주변 피부가 붉게 변하거나 오렌지 껍질처럼 두꺼워질 수 있다. 가슴의 변화를 알아채기 가장 좋은 시기는 매월 생리가 끝나고 3~5일 후. 거울 앞에 서서 양손을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팔에 힘을 준 채 가슴을 앞으로 내밀어 형태를 확인하거나, 의자에 앉아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반대쪽 검지와 중지, 약지의 첫 마디로 가슴을 천천히 눌러볼 것. 겨드랑이 밑에서부터 유방 주변부를 향해 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만지다가 좀 더 작은 원을 그리는 식으로 범위를 좁혀가며 멍울을 확인해 보자. 유두 주변부까지 왔다면 유두의 위아래와 양옆에서 안쪽으로 짰을 때 비정상적인 분비물이 나오는지 체크할 것. 침대에 누워 있을 땐 검진하려는 가슴 쪽 어깨 밑에 타월을 접어서 받친 후 팔을 위로 올리고, 반대쪽 손으로 가슴을 시계 방향으로 둥글리며 만져보는 방법이 있다. 이때 멍울 외 통증이나 유두의 함몰, 주름, 피부나 유두 크기에 변화가 있다면 진료를 받길 권한다.
글로만 읽어서는 잘 모르겠다면 스마트폰에서 ‘핑크터치’ 앱을 다운로드해 자가검진 일러스트레이션을 따라 해볼 것. 한국유방암학회 한원식 이사장은 “한국은 지난 20년간 유방암 발병률이 약 5배 증가했고, 이 수치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방암이 증가하면서 폐경 후 발병률이 늘어나는 서구 패턴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유방암 발병률이 증가할 거예요”라고 전망했다.
뉴욕 프레스바이테리언 퀸스 병원 유방의학종양학과 과장 로렌 엘레다(Lauren Elreda) 박사의 설명처럼 가족력이 없다고 해서 안심하긴 이르다. 이는 남성도 마찬가지. 2022년에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유방암의 남녀 성비는 0.004:1로 환자의 대부분이 여자지만 남자에게도 발생한다. 그 누구도 유방암의 위험으로부터 안심할 수 없다는 의미. 미국유방암연구재단(Breast Cancer Research Foundation)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나이와 성별과 무관한 유방암 검사 프로토콜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유방암연구재단 과학 부문 최고책임자인 도라야 엘-애슈리(Dorraya El-Ashry)의 전언이다. 그는 이런 방식을 적용해 운동이나 식단, 예방의학 같은 방법론이 실제로 유방암의 위험을 낮춰주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검사법을 구상하고 있다. 한국 의료인공지능 기업 루닛은 3D 유방단층촬영 인공지능 영상분석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DBT’를 개발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수출 허가를 받았다. 치밀 유방까지 정밀하게 진단 가능하다는 게 회사의 설명. 물론 이 인공지능 진단 시스템을 제2·제3의 판독자로 사용하려면 더 많은 임상실험이 필요하겠지만, 끊임없는 연구와 기술을 통해 유방암 종식에 한 발자국 다가서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언젠가는 한 달에 한 번 유방암 자가검진이 일상처럼 스며들기를, 그래서 유방암 발병률이 현저하게 낮아지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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