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죄를 지은걸까”… 10세 딸 잃은 아빠의 먹먹한 편지

김지훈 2023. 12. 2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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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스쿨존 사고’로 세상 떠난 예서양
아빠 A씨, 공판 앞서 딸 향한 먹먹한 편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부산 스쿨존 참사로 10세 딸을 하늘로 떠나보낸 고(故) 황예서양의 아버지가 딸을 향한 먹먹한 감정을 편지에 담아냈다. 그는 “‘아빠’ 하고 부르는 소리에 되돌아봤는데 네가 아니었다. 네가 아니어서 한참을 울었다”고 말했다. 연말이면 반짝이던 크리스마스 트리와 케이크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예서양의 아버지 A씨는 지난 21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예서양 사건 관련 2심 2차 공판 소식을 알리며 딸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편지를 올렸다.

A씨는 “나의 막내 예서야, 널 잃어버린 지 237일째다”라며 “보고싶다 내 딸아, 눈물을 가슴으로 삼키는데 참 힘이 드네”라고 적었다.

A씨가 기억하는 예서는 크리스마스를 참 좋아했다고 한다. 12월이 되면 항상 “아빠, 크리스마스 트리 언제 장식할 거야?”라고 물으며 엄마와 언니와 즐거워하곤 했다고 한다.

A씨 가족은 매년 이맘때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예약했지만 올해 A씨의 집에는 트리도, 케익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A씨는 “우리 강아지가 없는데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트리에 붙어 있는 별을 떼서 갖고 놀다가 놀고 나면 제자리에 붙여놓는 우리 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주변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항상 예서양이 얼마나 착하고 예쁜지 자랑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딸을 보며 행복해했다고 한다. 그는 “네 엄마가 식사를 준비해도 칭찬해주는 네가 없고, 매일 잠들기 전 사랑 고백을 해주는 네가 없다”며 “예서 없는 이 겨울 우리 집이 더 춥구나”라고 했다.

A씨는 이 끝없는 고통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죄 지은 사람이 벌을 받는 것처럼 아빠, 엄마의 고통도 2년, 3년 이렇게 정해지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네 사진을 보고 넋 놓고 울고 있는 네 엄마를 보면 아빠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아빠는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된 걸까”라고 적었다.

A씨는 “늘 아빠가 최고다, 멋지다 해주던 작은 너 하나를 지키지 못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미친놈처럼 고래고래 소리질러 네가 피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넘기는 밥숟갈에도 죄책감이 느껴진다. 예서야 보고싶다. 많이많이, 사랑한다 내 딸아”라고 편지를 끝마쳤다.

그는 지난달 1차 공판을 앞두고서도 딸을 향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A씨는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다가 ‘아빠’ 하고 부르는 소리에 네 목소리 같아 뒤를 돌아봤는데, 예서가 아니었다”며 “아빠는 가슴이 무너졌다. 분명 너였는데. 네가 아니어서 아빠는 밖에 나가 한참을 울었다. 너를 땅에 직접 묻고도 지금도 널 찾아 헤맨다”고 말했다.

A씨는 “얼마 전 독감 예방접종을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주사실 앞에서 무서운지 여자아이가 울고 있더라”며 “네 생각이 얼마나 나던지. 우리 예서도 주사 맞기 전엔 무섭다고 울었었는데. 주사 잘 맞고 금세 울음도 멈추고 ‘나 잘했지’ 하며 쳐다보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적었다.

그는 어딜 가든 딸의 흔적이 묻어있다고 했다. A씨는 “며칠 전 흰여울문화마을에 다녀왔는데, 네 엄마가 그러더라. 저기서 사진 찍었어, 저기서 동영상 찍었어, 저기서 돌을 집어 바다로 던졌어”라며 “네 엄마에게 듣는 이야기에 네 모습이 그려지더라. 아직은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질까 두렵다. 그날 네 엄마랑 하염없이 걷다가 집까지 걸어왔다. 다리가 아프도록”이라고 말했다.

예서양 아버지가 편지를 쓴 이날 오후 부산지법 4-3형사부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어망 제조업체 대표 B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함께 기소된 직원 3명에게는 각각 금고 1년을 구형했다.

B씨는 지난 4월 28일 부산 영도구 청동초 인근 도로에서 무면허로 지게차를 운전하다 1.7t짜리 원통형 화물을 떨어뜨려 등교 중이던 예서양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학생들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예서양은 1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심 재판부는 B씨에게 징역 2년 6개월, 나머지 직원 3명에게 각각 금고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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