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리스트서 한국 탁구 1호 영업사원으로… 도전의 스매싱

송경모 2023. 12. 2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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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RSM스포츠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2004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협회장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오른 그는 “부족하기에 더 열심히 했다”고 돌이켰다. 권현구 기자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한국 탁구 부활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출전한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수확하며 선전했다. 압권은 여자복식에서 나온 신유빈(대한항공)-전지희(미래에셋증권) 듀오의 금빛 호흡이었다.

이번 메달은 21년 전 열렸던 부산 대회 이후 처음 나온 아시안게임 탁구 금메달로 회자됐다. 2002년 대표팀이 따낸 금메달은 총 2개였다. 하나는 이번과 같은 여자복식, 나머지 하나는 남자복식이었다.

당시 이철승 현 삼성생명 감독과 짝을 이뤄 금메달을 합작했던 10살 아래의 파트너는 2년 뒤 올림픽에서 단식 정상에 오르며 한국 탁구의 얼굴이 됐다. 이후 지도자를 거쳐 행정가로 변신한 그는 한국 탁구의 수장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을 겸임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RSM 빌딩에서 유승민(41) 대한탁구협회장을 만났다.

‘탁구 1호 영업사원’

유 회장에게 도전은 낯선 단어가 아니다. 2019년 조양호 전 회장이 사망하며 공석이 된 한국 탁구 수장 자리에 출마,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1982년생인 그의 나이 37세 때 일이었다. 대한체육회 산하 체육단체장 중 최연소였다. 유 회장은 “어리다, 경험이 적다는 얘길 들으면서 임기를 시작했다”며 “부족한 만큼 더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실제 유 회장이 취임 당시 내걸었던 주요 공약은 모두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프로리그가 대표적이었다. 20년간 추진 방식 등을 두고 공전을 거듭해온 탁구 프로리그를 지난해 1월 두나무의 스폰서십 아래 출범시켰다. 유 회장은 “어린 선수들의 경험이 늘다 보니 경기 감각을 유지하거나 덜 긴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더라”며 “팬들로서도 탁구를 접할 창구가 많아졌다는 점은 긍정적 변화”라고 평가했다.

생활체육 면에선 국가 사업을 따내 디비전리그를 구축했고 유소년 지원체계 또한 강화했다. 재정적으론 발품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주어진 직함은 ‘한국 탁구 1호 영업사원’”이라며 “많은 기업들의 도움 덕에 5년간 150억원 규모의 후원을 유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프로리그든 생활체육이든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아직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짚었다. 탁구 리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챔피언스리그까지 치르는 유럽처럼 자생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절반의 성공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아시아권에서 유럽과 같은 모델로 챔피언스리그를 만들면 중국·일본은 물론 인도 홍콩 대만 등과도 경쟁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며 “이미 중국 일본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받았으나 결국엔 우리 (리그를) 먼저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IOC 위원 필수 자질은 성실성”

스타 선수 유승민을 체육 행정가로 바꿔놓은 건 우연찮게 찾아온 기회였다. 은퇴 후에도 코치로 현장을 지키던 그는 2016년 IOC 선수위원에 출사표를 냈다. 장미란·진종오라는 쟁쟁한 경쟁자들 앞에서 내세울 경력이나 업적은 부족했지만 발품을 팔아 가며 이를 메웠다. 그는 “더 넓은 스펙트럼에서 체육계에 기여하고 싶었다”며 “마침 한국에 (새 후보를 낼) 순번이 돌아왔다”고 돌이켰다.

예상을 뒤엎고 최종 승자가 된 그의 최대 무기는 국제 무대에서도 변함 없이 성실성이었다. 발품팔이 유세로 선거전에서 이겼고 이후 활동을 인정받아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선수촌장을 맡았다. 현재 몸담고 있는 분과위원회만 7개에 이르는 유 회장에게 IOC 선수위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을 묻자 “부지런함, 일을 처리하는 능동적인 자세”란 답이 돌아왔다.

2024 파리올림픽을 끝으로 선수위원 임기를 마치는 그는 자신의 뒤를 이어 도전장을 낸 ‘골프 여제’ 박인비를 향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그는 “2016년엔 24명이었던 선수위원 후보자 수가 도쿄올림픽 때 30명으로 늘더니 이번엔 32명까지 왔다”며 “스포츠 외교 활동의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부담도 크겠지만 (박인비는) 분명 준비된 후보”라고 치켜세웠다.

항저우 金은 기폭제…부산·파리 이어가야

“남자는 4강권, 여자는 8강권.”

지난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직후 유 회장은 한국 탁구의 객관적 실력을 이렇게 진단했다. 아시안게임 여자복식 금메달 이후로도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결과를 거뒀다고 해서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에서도 안정권이라고 보는 건 오히려 가장 경계해야 할 생각”이라고도 꼬집었다.

다만 세계 최강 중국을 만나지 않았으니 의미가 없다는 일각의 시선엔 명확히 선을 그었다. 신유빈과 전지희 모두 복식은 물론 단식에서도 최근 좋은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우승이라는 결과를 위해선 철저한 준비와 선수들의 노력, 상대팀까지 모두 맞아 떨어져야 한다”며 “이번 금메달이 기폭제로 작용해 파리올림픽에까지 좋은 영향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년 2월 부산에서 열릴 세계선수권대회는 그 전초전이다. 사상 최초로 국내에서 개최하는 세계선수권대회기도 하다. 유 회장에겐 그 의미가 특히 남다르다. 취임 당시 성공적 개최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코로나19를 겪으며 대회 자체가 거듭 연기된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는 “그만큼 드라마틱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에서도 많은 관중들이 찾아와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앞서 평창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 땐 중국 관중들이 앞쪽 열을 다 채우다시피 했다”며 “이번 부산 대회 또한 흥행을 자신한다”고 힘줘 말했다.

세계선수권에 이어 올림픽까지 치르면 유 회장은 IOC 선수위원에서 내려온다. 탁구협회장 임기 역시 공교롭게도 내년이면 마친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체육단체장, IOC 위원을 모두 지냈지만 스포츠인으로서 그의 행보는 끝나지 않는다.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다음 세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큰 틀의 목표다. 지난 10월 RSM 스포츠 재단을 설립한 것도 그 일환이다. 유 회장은 “동계청소년올림픽 등 당면 과제들이 있는 만큼 그 뒤를 아직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진 않았다”면서도 “체육인으로서 커리어를 이어가면서 (체육계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운동복 상의 안에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유 회장의 휴대전화는 인터뷰 내내 수시로 울려 댔다. 올해만도 60번 넘게 비행기를 탔다는 그는 인터뷰 이틀 전 스위스 로잔에서 입국했다고 털어놨다. 그로부터 일주일 전엔 유소년 선수들을 격려하고자 슬로베니아를 찾았다고 했다. 그간 밀린 일정을 소화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잔다던 그에게 버겁지 않은지 묻자 미소가 돌아왔다. “시차 적응은 좀 어려운데요. 체력은 아직 자신 있습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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