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시력 찾았다 '성탄 기적'…피란지서 눈뜬 우크라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36년 만에 기적적으로 시력을 되찾은 한 우크라이나 남성의 이야기를 영국 일간 가디언이 23일(현지시간) 자세히 다뤘다. 소련군 출신의 전 우크라이나 국가대표 유도 선수 세르히 시도렌코(56)가 그 주인공이다.
소련군 시절 불의의 사고로 실명했던 시도렌코는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군의 침공으로 폴란드로 피란을 떠나면서 수술할 기회를 얻었다. 폴란드 카토비세의 한 병원에서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오른쪽 눈에 인공각막을 이식했다.
수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 그는 결혼 31년 만에 처음으로 희미하게나마 한쪽 눈으로 아내 타마라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의 모습도 처음 눈으로 확인했다. 그에게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
시도렌코는 소련 군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8살에 장교를 꿈꾸며 군사대학에 입학했으나 1986년 훈련 도중 사고로 양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다. 옛 소련 붕괴로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91년에 타마라와 결혼한 그는 이후 유도 선수가 됐다. 96년부터 우크라이나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했는데 2000년과 2004년 패럴림픽에서 연속 4위에 올랐고, 2008년 대회에선 동메달을 따냈다.
시도렌코는 인공각막 이식 수술에 대해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내에선 수술할 집도의가 없는 데다가, 비용 문제 등으로 해외에서 수술받을 형편이 안 됐다. 실제로 시도렌코처럼 전 세계에 인공각막 이식 수술이 필요하지만 수술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1200만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서쪽으로 약 140㎞ 떨어진 지토미르가 그의 고향이다. 전쟁 이후 가족과 폴란드 포즈난으로 떠났던 그는 올해 5월 고향을 잠시 방문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지토미르의 풍경은 매우 낯설었다. 그가 눈으로 기억하는 소련제 라다 승용차는 더는 거리에 없었다. 대신 러시아군의 미사일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고향 사람들의 삶도 무척 달라졌다. 소련 군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의 남동생은 이제 우크라이나 군인으로 러시아에 맞서 싸우고 있다.
시도렌코는 올해 크리스마스도 폴란드에서 맞으며 왼쪽 눈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내년엔 꼭 전쟁이 끝난 고향에서 성탄을 맞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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