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무섭네" 33일 만에 천만 돌파…'서울의 봄' 이례적 질주
황정민 3번째 · 정우성 첫 천만배우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이 개봉 33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투자‧배급사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는 24일 ‘서울의 봄’이 이날 오전 0시 누적 관객 1006만533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이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기준).
마동석 액션 영화 ‘범죄도시3’(32일 만에 천만 돌파)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역대 31번째 천만 흥행작이 탄생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12‧12 군사반란을 상업영화 최초로 다룬 작품이다. 비슷한 시기 현대사 소재의 역사물이 천만 흥행한 건 ‘택시운전사’(2017), ‘변호인’(2013)에 이어 세 번째다.
반란군 주동자 전두광 역할로 연기 변신한 황정민은 ‘국제시장’(2014), ‘베테랑’(2015)에 이어 3번째 천만 영화의 주인공이 됐다. 그에 맞선 진압군 이태신 장군을 연기한 정우성은 영화 ‘구미호’(1994)로 데뷔한 지 30년 만인 올해 처음 천만 배우에 등극했다. 그와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9), '무사'(2001), '아수라'(2016) 등을 함께한 김성수 감독도 ‘서울의 봄’으로 역대 최고령(62세) 천만감독 타이틀을 얻게 됐다.
황정민 3번째·정우성 첫 천만배우 등극
이순신 3부작의 최종편 ‘노량: 죽음의 바다’(감독 김한민)가 20일 개봉하며 ‘서울의 봄’의 28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장기 집권을 끊어냈지만, ‘서울의 봄’ 뒷심이 만만찮다. 개봉 5주차에 접어든 영화가 하루 관객 30만(23일)을 동원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서울의 봄’은 비수기로 꼽히는 11월 개봉해 개봉 4일차 100만, 6일차 200만, 10일차 300만, 12일차 400만, 14일차 500만, 18일차 600만, 20일차 700만, 25일차 800만, 27일차 900만을 돌파했다. ‘노량’이 등판한 20일(문화가있는날)은 전체 박스오피스 매출액에서 ‘노량’이 점유율 51.1%로 1위, ‘서울의 봄’이 23.9%로 2위에 올랐지만, 주말에는 그 격차가 좁아졌다. 23일 좌석판매율(총 배정 좌석 대비 판매율)은 오히려 ‘서울의 봄’(46.9%)이 ‘노량’(38.2%)보다 더 높다. 다음 달 디즈니 애니메이션 ‘위시’, 할리우드 대작 ‘웡카’, 한국영화 ‘외계+인’ 2부, ‘시민덕희’ 등 신작이 가세해도 ‘서울의 봄’ 흥행 화력이 당분간 지속하리란 관측도 나온다.
"옆 관객 떠들어도 집중"…현대사 영화 재관람 열풍
'서울의 봄' 흥행 비결로 첫손에 꼽히는 건 탄탄한 만듦새다. 복잡한 군사 대치 상황을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 연출과 편집, 한밤중 서울 한복판의 일촉즉발 상황을 몰입감 높게 담은 촬영‧조명‧액션 등 호평이 많다. 주연 황정민‧정우성부터 특별 출연의 정만식‧정해인 등 역할의 경중을 넘어 모든 배우들이 열연해 연기 구멍을 찾기 힘들 정도라는 평가다.
CGV 예매앱에선 “돈 내고 (극장) 가서 볼만함. 연기가 리얼해서 캐릭터들이 무서웠다” “영화관에서 폰 보는 사람, 떠드는 사람을 개의치 않고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는 관람평도 나온다.
‘서울의 봄’ 흥행 주축으로 2030 관객이 꼽힌다. 현대사를 잘 몰랐던 이들이 현대사 소재 영화들을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으로 보며 ‘서울의 봄’을 되짚어보는 관람 문화도 장기 흥행에 한몫 했다. 메가박스 예매앱에선 ‘서울의 봄’이 “‘남산의 부장들’과 ‘택시운전사’ 사이를 이어주는 미드퀄 같다”는 관람평이 눈에 띄었다.
현대사 소재 한국영화를 시기별로 정리한 도표도 SNS 등에서 공유된다. 1979년을 배경으로 한 ‘그때 그 사람들’(2005), ‘남산의 부장들’(2020), ‘서울의 봄’을 비롯해 1980년대를 묘사한 ‘박하사탕’(2000), ‘화려한 휴가’(2007), '택시운전사'(2017), ‘변호인’(2013), ‘헌트’(2022), ‘1987’(2017) 등이다.
'택시운전사' '변호인' '서울의 봄' 천만흥행 릴레이
이 중 ‘택시운전사’, ‘변호인’,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화려한 휴가’(730만), ‘1987’(723만), '헌트'(435만) 등도 흥행했다. 이런 영화를 보며 성장한 세대는 스크린 속 현대사를 일종의 ‘세계관’으로 재인식하는 현상도 있다. 유운성 영화평론가는 “‘서울의 봄’이 김성수 감독과 같은 베이비붐 세대 뿐 아니라, 마블 유니버스 영화를 보고 자라온 젊은 세대에게도 익숙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분석했다.
다만, ‘변호인’,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1987’ 등 기존 현대사 소재 영화들이 시대의 격류에 휘말린 평범한 소시민의 아픔을 공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남산의 부장들’, ‘헌트’, ‘서울의 봄’ 등 최근작들은 시대적 부조리를 내부자 캐릭터 간의 대결 구도로 다루고 있다. 스크린 속 현대사 묘사 방식의 변화가 엿보인다.
‘서울의 봄’ 흥행 양상은 10년 전 ‘변호인’과 닮은 꼴이다. ‘변호인’은 2013년 12월 18일 개봉해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입소문에 불이 붙으며 24일(44만), 25일(64만) 등 흥행 역주행을 이뤄냈다. 이듬해 1월 33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변호인’의 최종 관객수는 1137만명이었다.
'속편만 생존' 코로나 흥행법칙 끊었다
‘서울의 봄’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침체한 극장가에서 속편이 아닌 영화로 흥행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범죄도시’ 시리즈, '명량'·‘한산’·‘노량’ 등 이순신 3부작, ‘공조’ 시리즈 등 속편 영화만 흥행하던 흐름을 바꿔놓았다.
연휴 초입인 23일은 ‘노량’과 ‘서울의 봄’이 모두 잘되며 이날 하루 전국 극장 관객수가 100만9139명으로, ‘오펜하이머’와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이 선전한 8월 15일 광복절 이후 131일 만에 하루 100만 관객을 넘겼다.
일주일 가량 남은 올해 연간 관객수는 23일까지 1억1914만7340명으로, 지난해 1억1280만명보다 다소 늘어난 1억 2000만명대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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