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아들의 성공적인 '산타 할아버지' 데뷔

박서진 2023. 12. 2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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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어린이집의 가장 큰 행사 크리스마스... '산타 형아' 등장에 아이들 눈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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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진 기자]

 어린이집의 연말 가장 큰 행사인 크리스마스를 맞아 '산타 할아버지'로 변신한 아들.
ⓒ 박서진
 
산타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졸린 두 눈을 비비며 잠을 쫓아내려 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산타할아버지는 늘 꿈속에서 잠깐 만나고 헤어지며 아쉬움을 한아름 주셨죠. 그 아쉬움을 채워주는 건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있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습니다. '착한 아이'에게만 준다는 그 선물은 세상을 다 가진 듯 벅차게 만들었습니다. 

어느덧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어린이집의 가장 큰 과제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바로 크리스마스 산타행사입니다. 어린이집에서는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크리스마스 행사준비로 분주합니다. 가정방문을 할지, 어린이집 자체행사로 진행할지, 산타는 누가 할지, 풀어야 할 과제가 산더미입니다.

대부분 교사가 산타할아버지를 맡게 되는데요, 그런 날이면 아이들은 족집게가 되어 산타할아버지의 정체를 눈치채고 맙니다.

"산타할아버지 아니잖아요, 000선생님인데요?"
"산타할아버지가 서운하시겠다. 저 멀리서 친구들 만나러 오셨는데 그 마음을 몰라주어서~"
"아닌데, 진짜 000선생님인데..."

그래서 아이들이 알고 있는 어른에게 산타할아버지를 맡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자면 이벤트 업체에 행사를 의뢰해야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죠. 선생님들과 회의를 하며 여러 의견을 나눴습니다.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걸 어쩌지?' 그 순간, 2월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이 생각났습니다.

"선생님, 산타 구할 수 있겠어요."

퇴근 후, 아들에게 산타할아버지 대역을 부탁했습니다.

"쭈니가 해주면 안될까? 엄마가 정말 산타를 못 구해서 그래."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생각 좀 해봐도 되죠?"
"그럼, 생각해 보고 말해줘. 어렵지 않아, 선물에 써 있는 편지 읽어주고 아이들이랑 사진 찍고, 우리 쭈니는 잘할 수 있을거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고민 될 아들의 마음은 몇 번이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부담이 되겠어요. 불과 몇 년 전까지 산타를 만나던 아들에게 산타할아버지가 되라니요. 엄마 욕심이 아들의 동심을 파괴한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뒤늦게 찾아왔습니다. 산타행사를 하루 앞두고 아들은 엄마의 짐을 덜어주겠다며 산타할아버지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쭈니야, 고마워, 연습 조금만 해줘."
"엄마, 할아버지 목소리 안내도 되죠? 할아버지 목소리가 안 돼요."
"그럼,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해."

다음 날, 아들과 함께 출근을 하며 아이들 몰래 엄마 사무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당부를 했습니다.

"원장님, 산타할아버지 만날 준비할까요?"

선생님이 크게 말씀하시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네~ 선생님. 곧 도착하신다고 하니 준비해주세요."

빨간 옷을 입은 아들이 수염을 쓰고 산타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오~ 쭈니! 산타할아버지같은데!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 하고 크게 부르면 나오는 거야, 엄마는 먼저 나가서 있을게."
"네, 엄마."

"우리 친구들 큰 소리로 "산타할아버지"하고 불러볼까?"
"산타할아버지~"

아이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합니다.

"어, 그래, 친구들 안녕?"

산타할아버지가 어설프게 손을 흔들며 쭈뼛쭈뼛 아이들에게 다가옵니다.

"안녕, 나는 산타할아버지라고 해, 오늘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왔어."

누가봐도 할아버지 보다는 형아가 어울리는 산타를 보고 아이들의 고개가 갸우뚱합니다. 그와 동시에 '산타할아버지가 누굴까?'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일단, 우리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모르니 마냥 뿌듯했습니다.

"00이가 누굴까? 앞으로 나오자, 너가 00이야?"
"네"
"착한 일 많이 했어?"
"으흠~ 아니요"
"괜찮아, 지금부터 하면 돼."

세상 쿨한 산타할아버지 등장에 분위기가 유쾌합니다. 그리고, 뒤에 꼭 덧붙이는 한 마디. "그리고 어린이집선생님 말 잘 들어야 해"

"자~ 이거 받고 이제 사진 찍자"

알려주지 않아도 척척척 진행도 일사천리입니다.

"산타할아버지 엄마,아빠 말씀도 잘 들어야하죠?"

그 순간, 산타할아버지가 저를 외면합니다.

"자 다음은 00 앞으로 올래?"
"손잡고 사진 찍자."

신세대(?)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증정이 그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우리 내년에 다시 만나자, 안녕"

아들의 산타할아버지 데뷔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아들의 모습과 산타할아버지께 선물을 받으며 좋아라 하던 어린 아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습니다.

그 순간, 어렸을 때 엄마가 주셨던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났습니다. 한량이던 아빠의 몫을 채우기 위해 돈 벌랴, 집안일 하랴, 자식 돌보랴 늘 바빴던 엄마는 크리스마스면 여러 가지 과자가 담긴 종합선물세트를 사오셨습니다. 하루 마무리를 모두 끝내고 자고 있는 우리들 머리 위에 커다란 과자상자를 올려놓으며 '크리스마슨데 이거라도 받아야지' 엄마의 혼잣말에 자는 척하며 찔끔 눈물 흘리던 크리스마스 이브밤이었습니다.

지금도 나에게 종합선물세트가 최고의 선물인 이유는 그 시절 엄마가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었고 우린 그런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보니 어린시절 저의 크리스마스는 산타할아버지가 없어도 엄마가 있어 너무나 행복했네요. 더 늦기 전에 엄마의 산타할아버지가 되어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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