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은 정말 나쁠까? 논란에 맞선 거장의 목소리

김성호 2023. 12. 2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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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616] <뉴클리어 나우>

[김성호 기자]

시대가 당면한 문제가 있다. 한국에선 인구소멸이야말로 국가의 명운을 건 싸움이다. 불과 한 세대 뒤면 연금부터 국방, 경제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위기국면이 도래하리란 분석이 쏟아져 나온다. 인구급감이 사회소멸과 국가소멸로 나아가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 한국의 미래를 구하는 길임에 분명하다.

사회의 명운을 건 싸움을 벌이는 건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시야를 지구로 넓힌다면 전 세계 역시 제 생존을 담보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세계적 부호가 나서 화성을 개발해 지구를 탈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건 그저 허황된 이야기만이 아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돼 지구가 끓고 있는(Global Boiling)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경고가 설득력을 얻는다.

파리협정에서 정한 바 있는 기후변화 마지노선, 즉 산업화 시대 이전보다 지표온도가 1.5도 올라가는 일이 불과 7년 뒤인 2030년 즈음 이뤄지리란 과학자들의 분석까지 이어진다. 한때는 전쟁이었고, 또 한때는 질병이었던 인류 최대의 적은 탄소배출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기정사실화된 모양이다.
 
 영화 <뉴클리어 나우> 포스터
ⓒ 로스크ROSC
 
영화를 통한 적극적 사회참여, 스톤의 신작

그 누구보다도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온 올리버 스톤이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전) 3부작을 시작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 살해를 다룬 <JFK>,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리처드 닉슨의 이야기 <닉슨>, 자본주의의 민낯을 다룬 <월 스트리트>, 미국의 국가범죄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 <스노든>, 조지 W. 부시를 조롱하고 풍자한 <더 프레지던트> 등 미국 사회와 맞닿은 작품을 끊임없이 쏟아낸 그다. 묵직한 메시지는 물론이고 작품성까지 담보된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영화가 어쩌면 사람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에 파문을 던지리라는 기대를 품게 되고는 한다.

올리버 스톤의 관심이 미국을 벗어나 전 지구적 문제에 닿은 건 우연한 일은 아니다. 세상 뛰어난 많은 작가들이 그러했듯 스톤 또한 과거 뱃사람으로 일하며 먼 바다를 항해했던 일이 있지 않던가. 그로부터 미국의 베트남 침공 등에 대해 남다른 인식을 갖게 된 건 유명한 일화지만, 배에서의 생활이 그저 어느 전쟁에 대한 시각만을 바꾸었을 리는 없는 일이다. 수많은 뱃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를 움직이는 것, 곧 바다를 통해 옮겨지는 에너지의 중요성을 목격했을 테니 말이다.

신작 <뉴클리어 나우>는 스톤의 영화가 언제나 그러했듯 용감무쌍한 작품이다. 기후변화라는 지구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원자력 발전이 불가피함을 주장하는 다큐멘터리로, 원자력 발전에 흔히 따라붙곤 하는 반감과 마주할 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의 통일돼 있다 보아도 좋을 과학자들의 시선과 달리, 원자력 발전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란 참으로 복잡하기 짝이 없다. 원자력이라 하면 당장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폭탄부터 생각하기 십상이고, 발전소를 붙인다 해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비극을 떠올리는 이가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도 소위 원피아라 불리는 특정 집단의 비리부터 시작하여 노후화된 발전소와 잠재적 위기가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한 주류의 이미지라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영화 <뉴클리어 나우> 스틸컷
ⓒ 로스크ROSC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논쟁에 맞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영화는 원자력 발전과 관련한 불편하지만 명확한 진실을 알기 쉽게 일깨운다. 그 시작은 원자력 발전의 대모라 해도 좋을 마리 퀴리의 명언으로 극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인생에서 두려워 할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이해의 대상일 뿐이다. 지금은 더 많은 걸 이해해야 할 때다. 우리의 두려움을 줄일 수 있도록." -마리 퀴리

인류가 처한 가장 큰 문제인 기후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탄소배출로 꼽히는데, 그 대부분이 석유와 석탄, 가스를 사용하는 데서 발생한다. 주지하다시피 전기를 만들기 위해 석탄을 떼고, 비행기와 선박, 자동차를 운행하기 위해 석유를 쓰며, 난방과 주방에선 가스를 쓰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문제는 전력 사용이 지난 백수십년 간 급격히 늘어왔고, 앞으로도 수십 년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미국 등 선진국의 전력사용이야 한계치에 달해 정체돼 있지만, 소위 제3세계로 불리는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남미와 아프리카의 전력사용과 탄소발전은 향후 급속히 늘어날 밖에 없다. 그들의 경제사정이 나아짐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경제체제가 값싸고 빠른 문제해결방식에 초점을 맞출 밖에 없음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나라는 급증하는 전력수요를 화력발전소를 세우는 것으로 충당하려 들 테고, 그렇다면 지구가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영화 <뉴클리어 나우> 스틸컷
ⓒ 로스크ROSC
 
신재생에너지가 대안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일각에선 급증하는 전력수요를 원자력이 아닌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불행히도 한국 역시 지난 수년 동안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을 대척점에 두고 정치적 논의를 거듭한 역사가 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는 원자력 발전을 근본적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게 변치 않는 사실이다. 그 생산량과 가동률이 턱없이 떨어지고 대지와 설비비용도 비할 바 없이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요 화석연료 회사들이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고, 원자력 발전에 맞서 온 것이다. 신재생에너지가 원자력 발전을 대체하겠다며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동안, 실제로 부족분은 화석연료를 통한 발전으로 메우는 것이 현실이라는 이야기다.

스톤은 충실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해가며 이 다큐멘터리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흔한 편견과 맞서 싸운다. 그로부터 한때는 원자력 발전의 지지자였던 정치적 보수파가 어느덧 화석연료 회사와 손을 잡고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그려내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이가 대표적 사례라 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그저 미국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이 화석연료에 크게 의지하는 동안 원자력 발전 분야에선 러시아와 중국이 가장 앞서 있는 것이 현실이고, 프랑스 등 유럽국가가 그 뒤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는 러시아와 중국이 개발한 신기술 또한 인상적으로 담아낸다. 안전성은 물론 발전효율까지 높여가고 있는 이들 국가의 원자력 발전소를 돌아보고, 그로부터 미국을 비롯한 화석연료 및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발전을 꿈꿔온 국가들의 일대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다. 특히 영국 같은 선진국이 다시 원자력 발전으로 회귀하는 모습은 한국에도 특별한 감상을 자아낸다.

원자력 에너지의 출발은 결국 지구다. 핵분열과 핵융합 등 지구 안에 담긴 물질로부터 인간이 놀라운 에너지를 끄집어낼 수 있음을 과학이 증명했다. 과학자들은 원자력 발전으로 대표되는 핵융합과 핵분열 기술의 안정적 활용을 꿈꾼다. 원자력 발전 기술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고, 그 효율과 안전성, 연료봉의 크기 등에서 개선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문제는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와 폐기물에 대한 반감,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근시안적인 정치가들이다. 폭증하는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그 어떤 대책도 없이, 원자력 발전을 봉쇄하면 화석연료가 그 자리를 대체할 밖에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정치가들의 행위로 인류는 오판을 거듭해 왔다. 그 결과가 코앞으로 다가온 기상이변으로 인한 위기다.
 
 영화 <뉴클리어 나우> 스틸컷
ⓒ 로스크ROSC
 
전력소비 OECD 4위, 한국에 시사점 커

원자력 발전소 사고 또한 마찬가지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의 참사가 가져온 피해야 모두가 아는 바다. 그러나 스톤은 이를 비행기 사고에 비유한다. 비행기보다 자동차가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이지만, 대중들은 비행기를 두려워하지 자동차를 무서워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화석연료가 지구에 더 커다란 위기를 발생시키지만 사람들은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의 사고를 더욱 충격적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대체 누가 있어 그 주장에 반박할 수 있겠는가.

탄소배출 제로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의 사례나 정치적 올바름이며 친환경을 주장하는 일부 시민의 태도 또한 영화는 그 맹점을 아프게 찌른다. 실제로 캘리포니아가 사용하는 대규모 설비들을 중국이 제작해오는데 그 생산부터 이동에 어마어마한 탄소배출이 따른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발전이며 생산은 타 지역에 밀어두는 행태는 얼마나 근시안적인가.

여러모로 <뉴클리어 나우>는 도발적인 작품이다. 원자력 발전을 주장하는 이에게 따라붙는 논쟁을 정면으로 감당하며, 아예 더욱 전면적인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없이 해낸다. 다분히 올리버 스톤다운 결기로, 영화 전체가 그 특유의 지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충분한 자료 획득부터 현장을 찾아 사람을 만나고 설비를 확인한 결과가 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니, 앉은 자리에서 신재생에너지를 논하고 뒤돌아 아낌없이 전력을 소비하는 이들의 철없음을 매섭게 일깨운다.

미국 사회에서 원자력 발전이 보수의 상징이었다가 어느덧 진보는 물론 초당적 길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여전히 원자력 발전을 낡고 위험한 무엇으로 여기며, 충실한 정보전달 없이 국민적 반감을 자아내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까워지는 영화다. 미래를 바라본 투자 없이 화석연료 중심의 발전을 거듭한 시간과, 온 산을 깎아 몇 년 후면 쓸모가 없어질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과잉 투자했던 과오를 지나온 오늘의 한국이다. <뉴클리어 나우>가 제안하는 미래가 한국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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