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았겠어요, 50대에 튜브톱을 입을지

전윤정 2023. 12. 2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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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올해의 ○○]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게 된 훌라

'올해의 ○○'은 2023년을 마무리 하는 기획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도전, 실패,인물 등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전윤정 기자]

'올 한해 수고한 나에게 00상 주기.'

연말이라 그런지 글쓰기 모임에서 재밌는 숙제를 받았다. 올 한해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 꾸준히 해낸 일, 포기했던 일 등을 되돌아보다 올해 새롭게 도전한 일이 생각났다. 훌라. 하와이 전통춤 그 훌라(hula)다.

올해 1월부터 우연히 친구를 따라 훌라를 배웠다(관련 기사 : 50 넘어 알게 된 '엉덩이를 해방한' 기쁨 https://omn.kr/239ct) 두 번 결석을 빼고는, 일 년 동안 매주 성실하게 훌라 수업을 들었다. 그만큼 훌라가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몰랐던 훌라의 매력에 빠지다
 
▲ 2023 훌라 페스티벌 크고 작은 파도가 넘실대듯 다양한 몸이 함께 춰서 멋졌던 100인의 훌라
ⓒ 전윤정
 
훌라는 손동작으로 노래 가사를 표현하는 수화(手話) 같은 춤이다. 아름다운 하와이 노래는 사랑과 자연을 담은 가사가 많다. 훌라를 추는 동안에는 사랑에 빠지고, 자연과 융화된다.

당신밖에 없다는 고백을 받기도 하고, 사랑의 말을 속삭여 달라고 연인에게 조르기도 한다. 잠시 나는 사랑밖에 모르는 여인이 되어 연애하는 감정으로 달뜬다. 이 얼마만의 감정인지! 훌라는 나의 죽은 연애 세포를 깨워주었다.

자연을 표현하는 동작 또한 어떤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면 나는 빛나는 해가 되었다가 은은한 달이 되기도 한다. 손을 움직이면 부드러운 바람도 물결치는 파도도 될 수 있다. 다섯 손가락을 모아 꽃도 만들고, 조개껍데기도 만든다. 양팔을 벌려 새가 될 때, 잠시나마 하늘을 나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훌라를 추며 하늘과 땅 그 안에 살아가는 생명을 몸으로 묘사하다 보면, 사람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자연의 일원임을 깨닫게 된다. 모든 생명체와 지구라는 마을을 나눠 쓴다는 겸손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난다. 이렇게 사랑과 자연에 푹 빠질 수 있는 훌라가 점점 더 좋아진다.  
 
▲ 중년에 튜브톱을 입다  ‘누구나 고유한 훌라를 춘다’라는 훌라의 메시지는 어떤 몸이나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인식으로 확장되었다
ⓒ 전윤정
 
내가 훌라를 배우고 있다고 하면 "오~ 역시 건강엔 운동이 최고! 집에 안 쓰는 훌라(후프) 줄게"라든지, "설마 그 훌라(카드 게임)는 아니겠죠?"라며 아리송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코코넛 브라?"라며 짓궂은 농담을 건네는 친구도 있다.

물론 코코넛 브래지어를 입지는 않지만, 배가 보이는 크롭티 혹은 요가, 운동 등을 할 때 입는 브라톱을 상의로 입은 수강생들이 많다. 나는 삼 년 전 완경(폐경)을 한 이후로 팔과 배에 군살이 쪄서 평소에 민소매조차 절대 입지 않았다. 그들이 부러워서 두툼한 팔뚝 살과 늘어진 뱃살을 원망했다.

그러나 '누구나 고유한 훌라를 춘다'라는 훌라의 메시지는 어떤 몸이나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인식으로 확장되었다.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몸이 왜소하거나 큰 대로 '나만의 훌라'를 만들 수 있다. 큰 파도와 작은 파도, 부서지는 파도까지 모두 바다의 파도다. 넘실대는 크고 작은 파도의 어울림과 부서지는 파도의 반짝임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듯이 다양한 몸이 함께 추는 훌라는 그 자체로 멋지다.

지난 가을, 나는 훌라 수업 때 용기 내서 어깨와 팔을 드러내는 튜브톱을 입어보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세상의 미(美)의 기준과 상관없이 내가 만든 금기를 깼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훌라 안에서의 작은 도전 역시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느슨하지만 다정한 인연, '오하나'

훌라의 또 다른 매력은 다양한 사람과 가족이 된다는 것이다. 훌라를 막 시작하고 썼던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뜻한 댓글이 하나 달렸다. "훌라 오하나 되신 것을 환영하고 축하합니다."

그때 '오하나'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오하나(ohana)는 하와이어로 '가족'이라는 뜻인데, 단순한 혈연을 넘어 친구와 이웃 등 서로를 위하면서 영원히 기억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훌라 동작을 함께 익히며, 박자에 맞게 같은 동작을 해낼 때 맛보는 기쁨의 시간이 쌓이면서 '오하나'가 되어간다.

훌라 수업 전, 근황을 나누는 시간에 다양한 나이와 직업, 삶에서 나오는 진솔한 이야기 또한 가족으로 묶어준다. 생일이었다는 사람에게 생일 노래를 신나게 불러주고, 청혼을 받았다는 말에 모두 손뼉 치며 내 일처럼 기뻐해 준다. 남자 친구와 헤어진 이에게는 위로를, 부부싸움을 한 이에게는 너도나도 위기를 넘기는 비법을 전한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IT기업을 나와 새 사업을 시작한 이, 전통 막걸리를 만들고 가르치는 이, 타투이스트나 프리 다이빙 강사로 세계를 돌며 일하는 이 등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만난다. 동네 카페,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이의 일상을 통해 손님으로는 몰랐을 고충을 알게 되고, 어린이연극 배우의 연기 후기를 들으며 나도 살짝 동심을 맛본다. 아픈 반려동물을 말하며 펑펑 울 수 있고, 번아웃으로 생긴 우울감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할까. 느슨하지만 다정한 '오하나'라 가능할 것이다. 
▲ 2023 올해의 00상  글쓰기 모임에서 숙제로 받는 2023 올해의 00상
ⓒ 배미용
 
나는 올해 성실하게 훌라 수업을 들었고, 훌라를 익히느라 수고하였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었다. 다양하고 새로운 훌라 오하나(가족)를 만나 나의 세계가 확장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만의 훌라'를 찾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올 한해 내가 가장 잘한 일은 훌라에 도전한 것일 테다.

그리하여 나는 나에게 줄 상장을 적었다. 올해의 '훌라 걸' 상. 이름 전윤정. 상기 본인은 2023년 한 해 '훌라'에서 고유의 멋진 자질과 덕목으로 '나만의 훌라'를 이뤄냈으므로 이 상장을 수여함.

계속 '훌라 걸'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어도 훌라를 통해 사랑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영원한 '훌라 걸'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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