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논쟁적 이슈 부딪혀라" 이후, 두루뭉술 한은 달라졌다

김경희 2023. 12. 2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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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일 오후 '2023 BOK 지역경제 심포지엄'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제' 주제로 열린 이날 심포지엄은, 정부·지자체·학계·기업 등 각계각층이 모여 지역사회의 관심 현안에 대해 고민하고 정책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취지로 올해 처음 열렸다. 뉴스1

“한국은행을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4월 취임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밝힌 포부다. 내년 초 임기 반환점을 맞는 이 총재가 그간 내부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외부와의 소통ㆍ협력을 늘린 결과 이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강한 어조로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3일 한은이 발간한 ‘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 원인ㆍ영향ㆍ대책’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1년이 넘는 중장기 심층연구를 통해 인구 감소 문제에 대한 종합적 대책을 내놓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연구진은 한국이 저출산ㆍ고령화에 정책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2050년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확률이 68%에 달한다고 경고하면서 청년 고용률 제고, 집값 하향 안정화 등으로 출산 여건을 개선하면 출산율을 0.845명까지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후 정부 기관이나 관련 단체에서 보고서 집필자들을 초청해 관련 설명을 듣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ㆍ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와 함께 긴급 전문가 자문회의를 소집했는데 이 자리에 보고서 집필자인 황인도 한은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도 초청됐다. 황 실장은 “앞으로도 저출산 대책 관련 부처나 기관의 요청이 오면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고서 내용을 설명하고 함께 대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수많은 저출산 대책이 있지만 정책을 집행하는 분들이 각각의 정책 효과에 대한 확신을 갖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게 이번 연구의 목표였다”고 말했다.

한은이 올해 처음 주최한 지역경제 심포지엄 주제도 인구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정민수 한은 지역경제조사팀 차장 등은 지난달 2일 열린 심포지엄에서 2001년부터 2021년까지 수도권 청년 쏠림 현상으로 인해 줄어든 전국 출생아 수가 4800명(2021년 기준)에 달한다고 경고했다. 당시 정치권에서 ‘김포 서울 편입’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저출산 해결을 위해서라도 수도권 인구 집중을 해소해야 한다고 조명한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 총재가 취임 후 강조한 것 중 하나가 논쟁적인 이슈도 피하지 말고 부딪혀봐야 한다는 것”이라며 “최근 한은 보고서들이 두루뭉술한 결론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수준으로 발전한 배경”이라고 귀띔했다. 이 총재가 지난해 8월 한은 기획협력국 산하 지역협력실을 조사국 내 지역경제부로 개편한 것도 해당 인력을 연구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인구구조 변화 및 지역경제 관련 정보 공유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호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국장, 홍석철 상임위원, 김영미 부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웅 부총재보, 이재원 경제연구원장. 사진 한국은행

앞으로도 다양한 외부 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한은의 연구 역량을 200%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19일에는 저출산위와 인구감소 해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지역경제 심포지엄을 계기로 저출산위가 한은에 적극 제안해 성사됐다고 한다. 한은 관계자는 “앞으로도 저출산ㆍ고령화, 지역소멸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연구 및 대안 제시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와의 연 2회 정기 세미나도 이어간다. 경제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인데 한은이 민간 기관과 정기 세미나를 열기로 한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지난 9월 한은 경제연구원장에 40대 이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임명된 것도 한은의 싱크탱크 기능 강화 기대를 높이고 있다. 이 원장은 2008년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후 미국 럿거스대ㆍ버지니아대ㆍ서울대 등의 교수를 거치면서 거시경제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실적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은 핵심 관계자는 “이 원장의 학문적 엄격함(academic rigor)이 한은의 각종 연구와 보고서를 보완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40대 후반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장을 역임한 후 한국인 최초로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ㆍ태평양 국장까지 한 이 총재가 향후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인재 양성 플랜의 일환으로 이 원장을 발탁한 거란 해석도 나온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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