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클럽보다 의리? 황희찬의 선택은 옳았을까
[이준목 기자]
▲ 울버햄튼 황희찬 |
ⓒ AFP/연합뉴스 |
올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던 '코리안가이' 황희찬이 소속팀 울버햄튼과 장기 재계약을 체결했다. 선수 본인과 구단은 만족스러워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팬들의 반응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상위권 클럽으로의 이적설도 나오고 있던 상황에서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울버햄튼은 지난 22일(한국 시간)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구단 최다 득점자 황희찬과 1년 연장 옵션이 포함된 내용으로 2028년까지 새로운 장기 계약을 체결하며 미래를 약속했다"고 발표하며 황희찬과의 재계약 소식을 전했다. 울버햄튼 구단은 홈페이지에 한국 팬들을 위하여 황희찬의 얼굴과 함께 한국어로 '황희찬 2028'이 배경 문구로 등장하는 이미지도 제작해 게재했다.
황희찬과 울버햄튼과 당초 계약은 2026년까지였다. 하지만 이번 재계약으로 2028년 이후 1년의 연장 옵션도 포함되며 최대 2029년까지 울버햄튼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게 됐다. 또한 이번 계약으로 몸값도 크게 상승했다.
정확한 계약조건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황희찬의 주급은 3만 파운드(약 4950만 원)에서 3배 가까이 인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울버햄튼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수령하는 선수는 파블로 사라비아로 연봉 468만 파운드(약 77억 원)에 주급으로 치면 9만 파운드(약 1억 4850만 원) 정도인데 황희찬의 대우도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명실상부 울버햄튼을 대표하는 주축 선수로서 대우를 받은 모습이다.
황희찬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으로 리퍼링-독일 함부르크(임대)와 라이프치히를 거쳐 2021년 8월 울버햄튼으로 임대 이적했다. EPL에 입성한 황희찬은 첫 시즌에 5골을 터뜨리며 잠재력을 인정받고, 이듬해 1월 울버햄튼으로 완전 이적했다.
2022-2023시즌에는 부상으로 고전하며 선발과 교체를 오가면서 총 4골 3도움(리그 3골 1도움)에 그쳤다. 입단 당시부터 스피드와 돌파력에 비하여 득점력은 약점으로 지적받았고, 기복심한 활약과 잔부상으로 방출설에 휩싸이는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황희찬은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포르투갈전 결승골로 축구대표팀의 16강을 이끌며 주목받았고 이때를 기점으로 자신감을 회복했다.
2023-24시즌 들어 EPL 적응을 마친 황희찬은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매섭게 질주하고 있다. 황희찬은 17경기에서 벌써 8골 2도움을 기록하며 시즌이 반환점을 지나기도 전에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를 달성했다. EPL 득점 7위이며 울버햄튼 팀내에서는 단연 최다골이다.
올시즌 개막을 앞두고 울버햄튼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홀렌 로페테기 감독이 개막 직전 갑자기 사임하며 게리 오닐 감독이 급하게 지휘봉을 물려받았고, 에이스인 윙어 페드로 네투는 계속된 부상에 신음했다. 강등권 추락까지 걱정되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황희찬의 득점력이 팀을 위기에서 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버햄튼은 현재 5승 4무 8패(승점 19)로 13위에 올라 강등권에서는 벗어난 상태다.
황희찬은 공헌도를 인정받아 울버햄튼 팬들이 꼽은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다. 또한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명문클럽중 하나인 아스널이 황희찬의 영입을 노린다는 이적설이 나오며 상종가를 구가 중이었다.
황희찬은 왜 이런 시기에 서둘러 울버햄튼과의 재계약을 발표했을까. 황희찬 입장에서도 울버햄튼은 독일무대에서의 주전경쟁 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에게 빅리거로서 한 단계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준 고마운 구단이다. EPL에서는 중소 규모에 해당하는 울버햄튼으로서는 상당한 대형계약으로 황희찬을 예우해준 셈이다. 계약기간을 모두 준수한다면 황희찬은 32-33세가 될 때까지 사실상 축구인생의 최전성기를 모두 울버햄튼에 헌신하게 된다.
다만 우려되는 부분은, 울버햄튼이 우승권 전력과는 거리가 먼데다 심지어 1부리그 잔류조차 그리 안정적이라고 할만한 구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울버햄튼은 1950년대에만 세 차례나 1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보냈으나 1960년대 중반 이후 몰락했고 한때 4부리그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에도 승격과 강등을 거듭하다가 2018-19시즌부터 다시 프리미어리그에 올라온 이후 최근 여섯 시즌째 1부 잔류에 성공했다. 이중 승격 첫 두시즌만 연속 7위를 기록했고, 이후 세 시즌은 13-10-13위로 모두 강등권만 면한 중하위권 성적에 그쳤다. 울버햄튼이 1부리그 무대에서 우승을 거머쥔 것은 1980년 리그컵 우승이 마지막으로 무려 43년 전이다.
울버햄튼은 재정 문제로 인해 올시즌을 앞두고 주축 선수들을 지키지 못하고 대거 이적했으며 이는 로페테기 감독이 개막 직전에 사임한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 황희찬은 울버햄튼에 입단한 이래 브루노 라즈-로페테기-현 오닐 감독까지 벌써 매년 다른 사령탑을 맞이해야 했다.
황희찬과 절친한 대표팀 선배인 기성용은 EPL에서 뛰던 2010년대 중반 스완지시티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유벤투스-첼시 등 명문구단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소속구단의 만류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기성용은 끝내 팀에 잔류해야 했다.
이후 기성용은 부상과 주전경쟁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스완지는 강등권을 전전하다가 끝내 2부리그로 강등당했다. 기성용은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한두 시즌 더 활약하면 다시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상황이 잘 풀리지 않았다"며 빅클럽 이적 시기를 놓친 것을 후회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손흥민처럼 우승트로피보다 한 팀의 레전드로 인정받는 길을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꼭 빅클럽에 이적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황희찬이 한창 커리어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시점에 울버햄튼과의 장기계약을 선택한 것은, 앞으로의 축구 인생에서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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