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10마리 신화' 하림의 HMM 인수…전북 효자기업 됐다

김준희 2023. 12.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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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김홍국(66) 하림그룹 회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가 준 '병아리 10마리'를 밑천 삼아 사업을 시작, 50여 년 만에 재계 27위 대기업 최고 경영자(CEO)가 됐다. 사진은 알에서 갓 부화한 병아리들. 프리랜서 김성태


외할머니가 준 병아리 10마리로 사업 시작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께서 병아리 10마리를 주셨다. 잘 키워 몸보신하라는 것이었다. 미꾸라지와 개구리를 잡고 부모님 몰래 쌀까지 퍼다 먹이로 주며 정성을 쏟으니 병아리도 잘 자랐다. 닭장수에게 판 2500원으로 병아리 100마리를 샀다. 닭을 사고, 또 팔면서 이리농고 시절에 씨닭(종계) 5000마리, 돼지 700두를 기르는 농장주가 되었다.'

최근 국내 최대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을 품게 된 하림그룹 김홍국(66) 회장이 『나의 사업 이야기』에서 밝힌 성공 스토리다. 24일 익산시에 따르면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지난 18일 HMM 경영권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전북 익산에 본사를 둔 하림그룹을 선정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김경록 기자


나폴레옹 이각모 26억 낙찰…도전 정신 강조


내년 상반기까지 본계약이 마무리되면 하림그룹(자산 17조910억원) 재계 순위는 현재 27위에서 13위로 뛰어오른다. 자산 규모는 HMM(25조8000억원)을 더해 약 43조원으로 불어난다. 외할머니가 준 '병아리 10마리'를 밑천 삼아 사업을 시작한 김 회장이 50여 년 만에 덴마크 머스크와 스위스 MSC 등 세계 1, 2위 해운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초대형 국적선사 최고 경영자(CEO)가 되는 셈이다. HMM을 인수하면 세계 1위 곡물회사이자 대형 해운업체인 '카길'처럼 키우는 게 그의 목표다.

김 회장은 평소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 정신을 강조해 왔다. 2014년 11월 17일 프랑스 파리 '퐁텐블로 오세나' 경매소에서 열린 나폴레옹 1세 이각(二角) 모자(바이콘) 경매에서 188만4000유로(당시 약 26억원)에 낙찰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현재 이각모는 2017년 경기 성남에서 문을 연 NS홈쇼핑 '나폴레옹 갤러리'에 전시 중이다.

김 회장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이 이각모는 나폴레옹이 (1800년 6월) 패전 직전 급박한 상황에서도 승리에 대한 확신을 놓지 않고 (오스트리아 7만 군대를 상대로) 역전에 성공한 (이탈리아) 마렝고 전투에서 썼던 모자"라며 "대한민국 청소년과 젊은이에게 긍정적 사고와 도전 정신, 불굴의 용기, 열정과 탁월한 리더십을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NS홈쇼핑 나폴레옹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나폴레옹 이각모(바이콘).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2014년 11월 17일 프랑스 파리 한 경매소에서 188만4000유로(당시 약 26억원)에 낙찰받았다. 사진 나폴레옹 갤러리


전북에 17개 계열사…"효자 기업"


김 회장은 1978년 익산에 황등농장을 세우며 양계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각종 M&A(기업 인수·합병)를 통해 회사 몸집을 키웠다. 하림그룹은 이제 전북 경제를 떠받드는 효자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북에만 17개 계열사, 55개 사업장을 두고 있다. 특히 익산에선 절대적 위상을 차지한다.

익산시에 따르면 망성면에 있는 ㈜하림 닭고기 가공 단지(15만5843㎡)에선 연간 도계(잡은 닭고기) 1억9506만 마리를 생산한다. 직원만 2383명이다. ㈜하림산업은 2018~2021년 5100억원을 투자해 함열읍 제4산업단지 12만3429㎡에 소스·즉석밥·라면 등을 만드는 식품공장·물류센터 등을 지었다. 이곳에선 670명이 일한다. 왕궁면 국가식품클러스터엔 ㈜하림푸드가 2500억원을 들여 5만3614㎡ 규모 냉동식품 가공 공장을 짓는다. 내년 착공해 200명을 고용할 계획이다.

지난 9월 15일 부산신항 4부두에서 'HMM 타코마'호가 급유선을 통해 GS칼텍스가 생산한 바이오선박유를 공급받고 있다. 연합뉴스


"투자·일자리 늘어날 것" 기대


이 때문에 하림의 HMM 인수 소식에 전북에선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며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익산시 관계자는 "전북에 하나뿐인 대기업이기 때문에 축하할 일이고, 더 잘되길 응원하고 있다"며 "회사가 잘되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 기대감이 크다"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무늬만 전북 기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창엽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그동안 (하림그룹이) 지역에 기여한 게 별로 없다"며 "HMM을 인수해 알차게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으로서 짊어질 사회적 책무와 역할을 좀 더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왼쪽 첫 번째)이 지난 9월 15일 전북 익산시 함열읍 하림 퍼스트키친에서 열린 'NS 푸드페스타'에서 김홍국(왼쪽 두 번째) 하림그룹 회장 등과 함께 가루 쌀로 만든 라면을 시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익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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