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간 친구도 있어요"…내 삶 살 시간 꿈꾸는 병원학교
“언젠가 치료가 끝나고 내 삶을 살 시간이 올 겁니다. 그때까지 꿈 잃지 말고 꿋꿋하게 나아갈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21일 오후 서울대어린이병원 제일제당홀에서 열린 ‘2023 어린이병원학교 학예전시회 및 시상식’, 연단에 서 마이크를 잡은 지호(가명·18) 군이 수상 소감을 말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자리는 서울대어린이병원이 한 해 동안 열심히 치료받고 병원학교 수업에도 성실히 참여한 어린이 환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마련했다. 항암 치료로 머리를 민 어린이 환자들이 부모와 함께 객석을 채웠다. 지호 군은 투병 생활을 하면서 올해 서울대학교에 합격했고 이날 특별상을 받았다. 지호 군을 포함해 백혈병 등 소아암을 진단받은 초·중·고 학생 60명이 상을 받았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학교는 1999년 전국 최초로 문 열었다. 현재 전국에 있는 36곳 병원학교의 모태가 됐다.
병원학교는 학령기 아이들이 2~3년의 치료 후에도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병원 안에 설치된 학교시설이다. 초등학생은 하루 1시간, 중·고등학생은 2시간 수업을 들으면 소속 학교의 출석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장기 결석으로 인한 유급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중등2급 정교사와 평생교육사가 상주하며 51명의 자원봉사자 교사가 국어·영어·수학·과학 등 주교과뿐 아니라 미술과 무용, 체험학습 등 부교과 수업을 대면·비대면으로 제공한다. 심리 지원도 한다. 올해 초등학생 88명, 중학생 26명, 고등학생 20명 등 총 134명의 학생이 병원학교를 찾았다. 24년간 누적 7000여명이 거쳐 갔다.
송윤경 어린이병원학교 교무부장은 “올해 고3 등 수능을 본 친구가 8명인데 집으로 합격기원 물품도 보냈다”라며 “어떤 친구는 서울대를 갔고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간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병원학교는 투병 생활을 잘 견디게 해주는 활력소다. 재승(11)이는 “미술 시간이 가장 즐겁다”라며 “학교에 오면 같이 놀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재승이 엄마는 “병원학교에 안 왔다면 병실과 집만 오갔을 것”이라며 “수업에 참여해 칭찬을 들으며 받아오는 에너지가 있다. 친구들과 교류하며 작은 학교처럼 사회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작가가 돼 전시한 36점의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여기엔 몽골에서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진단받고 치료를 위해 지난해 2월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이주한 아나르(15) 군의 작품 4점도 포함됐다. 드넓은 초원에 말과 작은 집을 그린 그림은 몽골에 있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두 달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아나르는 올해 2월부터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학교에서 미술과 국어 수업을 들었다. 한국어를 빠르게 익혔고 올 9월 한국 국제학교에 들어갔다. 아나르는 “병원학교에서 잘 도와주신 선생님 덕분”이라고 말했다.
강형진 어린이병원학교 교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예전에는 치료 성적이 좋지 않아 생존한 것만으로 감사한 시기였는데 지금은 10명 중 8명 이상이 완치되고 학교에 복귀한다”라며 “어린이병원은 사람답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국내에 이런 학교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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