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면 ‘호랑이 힘’?…원래는 성욕 억제 음식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2023. 12. 2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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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리얼과 자위행위

먹으면 ‘호랑이 힘’이 솟아난다는 어느 시리얼을 아시는지.

주말 아침 식사 단골 메뉴인 이 녀석의 과거는 지금의 광고 슬로건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개발 당시 목적이 ‘성욕 억제’였기 때문이다. 한 의사가 본인 환자들 식욕과 성욕을 억제하는 식단 개발에 나섰다가 시리얼을 발명했다. 의사의 이름은 존 하비 켈로그. 시리얼의 대표 브랜드는 이 사람 이름에서 따왔다.

“욕망의 미국을 구하자”

성욕 억제 식단 개발에 나선 이들

켈로그는 왜 그토록 ‘자위행위’를 막고 싶었을까. 시대상에 비춰보면 사실 그가 ‘유별난 자위 혐오자’였던 건 아니다. 그가 살던 1881년 미국에서는 과다한 성욕과 식욕이 건강을 해친다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서부 개발로 미국 사회가 매춘, 육식, 음주가 만연한 ‘욕망의 나라’로 변해가면서 이에 대한 우려도 커져 나갔다. ‘청교도(Puritan)’들이 세운 미국을 하나님의 본래 뜻에 맞는 나라로 만들자는 목소리도 힘을 얻었다. ‘템퍼런스 무브먼트(Temperance movement)’라고 불리는 절제 운동의 시작이었다.

템퍼런스 무브먼트는 초기에는 알코올 절제 운동의 모습이었다. 점점 힘을 얻으면서 점차 성욕, 육식 등 많은 쾌락들이 교정의 대상으로 확대됐다. 알코올 절제, 매춘 근절, 육식 자제까지 나아가는 ‘범 탐욕 자제 운동’이었다.

특히 종교계가 이 운동을 주도했는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가 대표적이었다. 이들은 종교적 신념에 맞춰 육식을 배제하는 채식주의를 내세웠다. 육식이 성욕의 효모가 되고, 성욕은 병(과 죄)의 근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존 하비 켈로그 역시 이 종파의 신자였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가 세운 ‘배틀크릭 요양소’의 관리인으로서 그가 ‘육식’과 ‘자위행위’를 혐오한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존 하비 켈로그가 ‘식단 개혁’을 외친 미국 최초의 선구자는 아니었다. ‘신앙인다운 식사’를 고안한 여러 종교인이 있었다. 장로교 목사였던 실베스터 그레이엄은 “채식은 죄짓지 않은 에덴동산의 인간들이 먹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19세기 미국 종교인들은 육식을 대체할 식단을 만드는 데 무진 애를 썼다. 그레이엄 목사 역시 자위행위를 비롯해 모든 쾌락으로부터 자유로운 음식을 꿈꿨다. 이내 입자가 두터운, 맛없는 밀가루를 구워 비스킷을 만들었다. ‘그레이엄 크래커’였다. 지금 우리가 먹는 크래커의 최초 형태였다.

켈로그는 그레이엄의 신앙을 계승했다. 종교에 심취한 그는 자위행위를 혐오했다. 심지어 부인과 각방을 쓸 정도로 ‘성관계’도 싫어했다.

보수적 기독교 종교인들에게 ‘섹스’는 언제나 ‘출산’을 위한 도구여야만 했다. 다음은 그의 대표 저서인 ‘노인과 젊은이를 위한 자명한 사실들(The plain facts for Old and Young)’의 한 대목이다.

“배뇨하는 것을 참아서는 안 된다. 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방광에 염증이 생기고, 그 결과로 비정상적인 흥분을 유도해 나쁜 습관(자위행위)을 갖게 된다.”

자위행위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양상도 12가지나 나열했다.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내용이며 필자의 편견이 아님을 밝힌다.) 급격한 쇠약, 기억력 감퇴, 비정상적인 탈모, 자극적인 양념을 좋아하는 부자연스러운 식욕의 증가 등 현대 의학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학설이었지만, 그는 주장을 꺾지 않았다. 그는 포경 수술 옹호자기도 했다. 자위를 예방하는 수단이라 생각해서다. 자위를 자주 하는 남성들에게 포경 수술을 추천할 정도였다. 자위와의 전쟁에서 최전방에 선 전사였던 셈이다.

일러스트 : 강유나
금욕주의자의 발명품 ‘콘플레이크’

켈로그 아이디어 훔친 포스트도 ‘대박’

“그래, 이 맛이야. 이거면 사람들의 정욕을 잠재울 수 있겠어.”

1894년 어느 날이었다. 켈로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요리하던 밀반죽이 과하게 숙성됐다. 망한 요리였지만 버리기 아까웠던 존 하비 켈로그는 동생인 윌 켈로그와 함께 이를 뜨거운 롤러에 밀어서 재활용을 시도했다. 이게 웬걸. 반죽이 플레이크 형태로 떨어져 나오면서 바삭하고 고소한 음식으로 재탄생했다.

형제는 더 많은 실험 끝에 옥수수 반죽을 활용한 ‘콘플레이크’를 개발한다. (여기서 tmi. 이때는 우유에 말아 먹지 않았다. 당시 생우유가 위생적으로 위험한 식품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요양원 환자들은 이 메뉴에 매우 만족감을 표시했다. 지역 사회에서도 입소문이 나면서 콘플레이크에 관한 관심이 퍼지기 시작한다. 마침 미국 사회에 전염병이 퍼지면서 ‘신의 식단’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목적으로 개발한 켈로그의 역작 ‘땅콩버터’ 역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켈로그는 이후 ‘시리얼의 왕’으로 큰 부자가 됐을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련이 그를 찾아왔다. 켈로그가 일하던 요양원의 환자였던 한 남자가 이를 맛보고 먼저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한 것. 이 사내의 이름은 C.W. 포스트. 우리가 아는 시리얼 대표 브랜드 ‘포스트’의 설립자다.

포스트는 켈로그로부터 훌륭한 서비스를 받고 이에 감탄한 나머지 비슷한 요양원을 건립하기까지 했다. 그것도 같은 동네에! 그리고 이내 시리얼과 같은 건조식품을 만드는 포스트홀딩스도 세웠다. 1897년, 그레이프 너츠라는 제품을 개발해 ‘대박’을 쳤다. 켈로그 콘플레이크를 표절한 것이었지만, 대중들은 속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포스트 제품은 불티나듯 팔렸고, 포스트는 세계 최고 식품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었다.

포스트의 성공을 본 동생 윌 켈로그가 형 존 켈로그를 다그쳤다. “원조인 우리도 사업에 나서야 한다.” 또 소비자 입맛에 맞게 설탕을 가미해야 한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형 존은 ‘종교인’에 가까운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사업과 본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성욕과 식욕을 자제하고 소화를 편안하게 돕기 위한 음식으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설탕을 뿌리자니. 믿고 의지하는 동생의 말일지라도 수용할 수 없었다.

존 하비 켈로그는 동생의 제안을 끝까지 거절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동생 윌 켈로그는 홀로 배틀크릭토스트콘플레이크 회사를 설립했다. 1906년 9월의 일이다. 형 존은 동생 윌의 회사에 소송을 제기한다. 1920년 법원은 윌의 손을 들어줬다. 원작자 존 하비는 개발하고도 이득을 볼 수 없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애먼 사람이 벌었던 셈이다.

굴지의 회사 켈로그와 포스트는 전 세계인의 아침 식사를 바꿔버렸다. 미국을 넘어 동양의 대한민국에서도 시리얼은 인기 있는 아침 메뉴다. 우리의 맛있는 아침 식탁이 ‘금욕주의자’들의 열정으로 차려진 셈이다.

하루가 바쁜 독자 여러분의 아침 식사는 무엇인지. 노릇노릇 구운 식빵에 땅콩버터를 바르고, 시리얼을 우유와 함께 즐기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성욕 억제’라는 발명자의 본뜻과는 달리 ‘호랑이 기운’을 내어보시길. 배우자의 실망한 표정을 보고 싶지 않다면.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9호 (2023.12.20~2023.12.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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