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봉'에도 의사 많아져야?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류옥하다 2023. 12. 2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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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의료 취약지역 위해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 필요? 해법 잘못 찾았다

현재 한 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하고 있는 류옥하다 시민기자가 지난 16일 보도된 한겨레의 기사 <삼도봉 어르신들 청진기 대려고, 오늘도 굽이굽이 넘습니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그의 글을 가감 없이 싣습니다. 류옥하다 시민기자의 글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류옥하다 기자]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삼도가 만나는 곳, 백두대간 자락에 '민주지산 삼도봉'이 있다. 태종 때 조선을 팔도로 나누며 이 봉우리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산세가 어찌나 깊은지 설 쇠러 들어갔다 눈에 갇혀 보름에나 나갈 수 있다는 '설 보름 마을'이 삼도봉 아래 우두령 흥덕리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이 삼도봉 자락을 뛰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까운 보건소는 차로 10분, 읍내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병원은 내게 가깝지는 않은 곳이었다. 종종 충치를 때울 때는 면 소재지의 보건소를, 중이염이 생겼을 때는 읍내 이비인후과를 갔다. 낫에 발가락이 베였을 때는 영동군 유일의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한 달간 입원하기도 했다.

반가운 삼도봉 뉴스, 그러나 

도시의 종합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한 와중에, 반갑게도 '삼도봉' 뉴스를 보게 되었다. '삼도봉 어르신들 청진기 대려고, 오늘도 굽이굽이 넘습니다'라는 12월 16일자 한겨레 기사였다. 기자는 르포 형식으로 충북 영동-전북 무주-경북 김천 지역을 순회하는 '삼도봉 행복버스'를 소개한다.
 
 한겨레 기사 '삼도봉 어르신들 청진기 대려고, 오늘도 굽이굽이 넘습니다'
ⓒ 한겨레
 
'삼도봉 행복버스'는 의료 취약지역인 산마을 지역 주민들에게 '찾아가는 건강관리'를 제공한다. 3개 시군 9개면 173개 마을에서 환자들의 기초적인 혈압과 혈당, 골밀도 등을 측정하고 건강상담과 진료를 수행한다. 의료기관이라고는 면 소재지에 보건소 하나, 그마저도 왕래하는 버스는 하루 서너 번 다니는 동네에서 이런 복지는 어르신들께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는 단순한 르포 기사가 아니었다. 말미에 돌연 '의사 수 부족'을 논하며 '지역 의대생'을 뽑아야 한다는 주장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가 필요하다고 한다. 삼도봉 행복버스와 비교하며 다른 의사들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서울의 살풍경'"이라 묘사한다.

먼저 삼도봉 행복버스를 기획하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힘써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어린 시절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 밑에서 자란 나로서는 누구보다 이런 의료 서비스가 값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장암을 늦게 발견해 항암으로 고생하시던 앞마을 할아버지, 백내장을 방치해 결국 실명하신 꼭대기 집 할머니도 이 행복버스가 있었다면 조기 진단과 치료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삼도봉 동네에서 자란 의사로서, 기사의 몇 가지 주장에 반박을 하고자 한다.

1. 한국의 의료 접근성은 세계 최고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환자는 전문의를 바로 만날 수 없다. 자신의 주치의를 우선 만나고, 2차 병원을 통해 비로소 3차 병원을 찾는다. 암과 같은 만성 질환은 대기 시간이 수개월에서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한국은 아니다. 의사를 접할 기회가 많다. 아무 병원이나 자유롭게 들어가서 비교적 쉽게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2017년 기준(2017 의료서비스 경험조사) 한국의 당일 예약환자의 외래 대기시간은 21분인 반면, 미국의 초진 진료를 위한 환자 대기시간은 기준 24.1일이었다.

혹자는 '소아과 오픈런'을 예시로 의사가 부족하다 말한다. 그러나 이는 독감이 유행하는 특정 계절 아침 시간대의 소아과라는 특수성을 생각해야 한다. 혹자는 '응급실 대기'를 예시로 든다. 그러나 '응급실은 응급 순'이기에 의사 판단하에 증상이 위급하지 않다면 대기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조차 몇 시간에 불과하다. 되려 경증 환자들이 밀려드는 탓에 중증 환자의 진단/치료가 늦어져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의료의 수준은 어떨까. 회피 가능 사망률은 치료를 통해 막을 수 있는 사망률로, 낮을수록 우수한 의료 수준을 나타낸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144.0명('18)으로 OECD 평균(199.7명)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 수치는 의사 수가 많은 국가들(미국, 독일, 프랑스 등)보다도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현재 한국의 의료는 적절한 치료와 관리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OECD_치료 가능 사망률
ⓒ OECD
 
환자가 의사를 만나는 횟수 또한 이미 충분하다 못해 되려 과도할 정도이다. 2019년 기준 OECD 국가별 의사·상담건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국민은 1인당 의사·상담건수가 연간 17.2회로 OECD 국가 중 의사를 가장 많이 만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의사·상담건수는 OECD 평균(6.8회)보다 2.5배나 더 많았다.

2. 한국의 도농 의사 격차는 세계 최소이다

그렇다면 도농 의료 격차는 어떨까? '삼도봉...' 기사에서 산마을을 '취약지역'이라 말하고, 도시에 비해 의사가 부족하다 주장한다. 그러나 'OECD Health at a Glance 2019'에 따르면, 우리나라 도시(2.5명) - 농촌(1.9명) 간 의사 분포 차이는 인구 1천 명 당 0.6명, 일본(0.1명)에 이어 뒤에서 2위였다. 이는 OECD 평균 도농 의사 분포 차이(1.5명)에 비해 현저히 낮다. 우리나라는 도시와 농촌 간에 의사 인력이 매우 골고루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

5만 인구의 우리 영동군의 읍내에만 해도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등 40여 개의 병의원이 산재한다. 삼도봉 지역에서 이 병의원들을 차량으로 30분, 버스로 1시간 이내로 접근 가능하며 이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근거리이다. 주민들의 건강 개선을 위해서는 차라리 대중교통을 더 자주 배치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OECD_도농 의료 격차
ⓒ OECD
 
3. 필수 의료 붕괴 우려하지만, 의대 증원이 답 아니다

산마을 어르신들도 KTX를 타고 '서울 빅5'라 불리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시대다. 되려 지방 병원들은 이런 '환자 서울 집중' 현상 때문에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와중에 윤석열 정부는 필수 의료 붕괴 등의 명분으로 의대 증원을 꺼내들었다.

많은 이들이 각자의 이유로 의대 증원을 환영한다. 학생 수 감소 와중에 입결을 유지하려는 대학들, 싼 가격의 의사-전공의-를 원하는 대학병원부터 의대 창구가 넓어지는 것을 반기는 학부모들, 의사가 늘어나면 그들이 지방으로 오리라 막연한 기대를 품는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의료 자원 분배의 문제를 의대 증원 여부의 문제인 양 앞세워 표를 얻어내려는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있다.

우리 사회의 현명한 의료자원 분배를 위해서는 공급자(의사)보다는 되려 소비자(환자) 측면에서 해법을 찾아보는 건 어떤가? 병원을 방문할 때 주소지 병원을 먼저 가도록 한다든지, 전문의를 만나기 전에 주치의를 만나거나, 경증 환자의 경우 응급실 방문을 제한하는 건 어떨까? 특히 저출산/고령화로 빠르게 상승할 의료비 부담을 생각한다면 OECD에 비해 2.5배나 많은 진료 횟수는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10월 15일 오후 서울의 한 의과대학의 모습.
ⓒ 연합뉴스
이미 신경외과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의사 증원의 미래를 알 수 있다. 한국의 신경외과 의사는 OECD에 비해 3배에 달하지만, 뇌출혈을 수술할 의사가 없어 대한민국 5대 병원에서 직원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의사를 아무리 증원해도 필수과 기피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순한 숫자 뻥튀기는 국민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폭발적인 국민 의료비 부담으로 이어질 뿐이다.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사람을 살리려다 징역형을 받고, 산부인과 의사가 산모를 도우려다 5억을 배상하는 나라에서, 어떤 이가 필수의료를 선택할까. 의사 수를 10배로 늘린다 한들 그 누구도 그런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을 것이다.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지역의사제보다는 필수 의료에 대한 형사/민사 소송 면책, 과감한 재정적 지원과 같은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현장의 간절한 외침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서울의 살풍경'으로만 치부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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