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언론에 깊은 원한 있지 않고서야..."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신상호 기자]
▲ 어제는 국민권익위원장, 오늘은 방통위원장 후보자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지난 12일 열린 국무회의에 배석했던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사진 왼쪽)이 13일 오전에는 권익위에 휴가를 내고 경기도 과천시에 마련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사무실로 첫 출근을 했다. 국회 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양 손에 떡을 쥐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
ⓒ 권우성/이정민 |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지난 22일까지만 해도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공식 직책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겸 국민권익위원장'이었다. 지난 6일 차기 방통위원장으로 공식 지명된 김 후보자는 지난 12일과 19일, 국민권익위원장 자격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13일 방통위원장 인사청문회 사무실 출근 때는 권익위에 휴가를 냈다고 했다.
"양손에 떡 쥐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라는 민주당 과방위원들의 비판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김 후보자는 지명 17일째인 22일에서야 이임식을 하고 권익위원장직을 내려놨다. 언론에도 일정조차 사전에 알리지 않은 비공개 이임식이었다.
김홍일 첫 업무, '방문진 이사 해임' 예상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되고도, 즉각 권익위원장직을 사퇴하지 않았던 것은 무슨 연유 때문이었을까. 당초 김 후보자의 이임식은 8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전날 저녁 급작스럽게 취소된 바 있다. 보름이 넘는 기간 동안 그가 권익위원장으로 있어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던 걸까. 정확한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김 후보자가 시작부터 불필요한 논란과 오해를 불러온 것만은 확실하다.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가 남아있지만, 김 후보자의 임명에는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언론장악 문건, 아들 학교폭력 문제, 배우자 위장전입 의혹 등 청문회 내내 논란을 일으켰던 이동관 전 위원장도 임명한 사람이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다.
만약 김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이 된다면 지금의 '겸직 논란'은 오히려 해프닝 수준이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걱정되는 일들이 많다는 뜻이다. 김 후보자가 위원장으로 가장 먼저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 중 하나는 '방문진 이사 해임'이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11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권태선 이사장 등에 대해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관련 자료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이첩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1월 이사들에 대한 의견조사를 실시했다. 앞으로 방통위가 청탁금지법 위반을 빌미로 또다시 권태선 이사장 등의 해임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방문진 이사 해임의 경우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결정되는데, 만약 김홍일 위원장이 방문진 이사 해임을 추진한다면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한다. 본인이 권익위원장 시절 이첩했던 사건을 방송통신위원장이 돼 마무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김홍일 후보자 스스로 '회피'를 해야 하지만, 그런 판단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언론 길들이기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것 중 하나가 'MBC 사장 교체'이기 때문이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상임위원이 자신이 국장 시절 담당한 사건이 올라오면 회피를 한다"면서 "만약 공영방송 이사들의 사건을 전체회의에서 심사할 경우, 김홍일 후보자는 스스로 회피 신청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았을 경우 당연히 이해상충 논란이 벌어질 수 있고, 결정된 내용들도 행정 소송에서 무효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영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22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 리시 수낵 총리와의 한영 정상회담을 위해 도착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그러나 방통위 출입기자가 보기엔 앞으로도 방통위는 이런 위법적 일 추진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간 방통위가 해왔던 행태를 톺아보면 이런 예상은 더욱 자명해진다.
김효재 위원장 권한대행 시절, 방통위는 지난 7월 언론현업단체들의 집단 반발과 위헌 논란에도 TV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의 의결을 강행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의결을 거쳐 확정된 최민희 방송통신위원 내정자의 임명을 수개월째 미루면서, 대통령 추천 위원(이상인, 이동관)만 속전속결 임명했다.
전임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상임위원 5명 가운데 2명만 있는 상황에서 KBS와 EBS 이사진 개편 등 14건을 전체회의에서 의결했다. 대통령 추천 위원 2명만 참여한 상태에서 의결된 사안으로, 합의제 기구의 취지를 위배한 행위이기도 하다.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 보도를 계기로 '가짜뉴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과 같은 위헌적 정책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국회에서 이동관 위원장 탄핵안이 상정되자 이 전 위원장이 탄핵안 처리 당일에 '기습 사퇴'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 방통위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들은 국민들이 기대하는 행정기관의 독립적이고 적법한 운영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일반 국민들의 상식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무리한 일들만을 강행해왔다.
이동관 전 위원장은 기습 사퇴 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물러나더라도 "제2의 이동관이 나올 것"이라고 호언 장담했다. 김홍일 후보자 역시, '언론 길들이기'를 위해, 기꺼이 '제2의 이동관' 역할을 자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김 후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일밖에는 없다. 평생 검사로만 살았던 김 후보자가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의 미래 전략을 내놓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김 후보자라는 인물은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언론 길들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전대식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김홍일 후보자 지명 소식을 들은 이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윤석열 대통령이 언론에 대해 깊은 원한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까지 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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