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의 일침, "윤 대통령,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교육개혁"
[서부원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방혁신위원회 3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12.20 |
ⓒ 연합뉴스 |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교육개혁'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교육개혁에 대한 아이들의 한 줄 평이다. 알다시피, 교육개혁은 노동 개혁, 연금 개혁과 함께 현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국정 목표였다. 며칠 후면 어느덧 집권 3년 차를 맞지만, 세 가지 개혁 모두 아직 첫걸음조차 떼지 못했다.
지난 금요일, 세 명의 고2 아이들과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을 주제로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화제는 교육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전반적인 문제에까지 미쳤다. 내년이면 투표권을 갖게 될 그들의 주장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들은 최근의 교육 현안을 두루 꿰고 있었다. 언론에서 연일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어 아이들이 모여있는 대화방에서도 종종 화제가 된다고 한다. 특히 자신들의 미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안이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나 몰라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 정부 무능" 답한 아이들
얼마 전 충청남도에서 전격 폐지된 학생인권조례와 교육부의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 시안에 관해 물었다. 이제 고3 수험생인 그들의 올해 수능에 대한 평가도 궁금했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한 교권 침해에 대한 인식도 알고 싶었다. 기실 이것들은 대화가 계속되다 보면 어떻게든 만날 수밖에 없는 주제다.
아이들의 답변은 한결같이 '현 정부의 무능'으로 귀결됐다. 내놓는 정책마다 교육과는 무관한 정치적인 선택이라고 답했다. 향후 문제점 등을 예측해 보지도 않고 막 던진 막무가내식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걸 대통령만 모르는 것 같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아이들은 충청남도 의회에 우선 '감사'를 전했다. 지금껏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일로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보게 됐다는 거다. 기실 그들에게 학생인권조례는 평소 고마움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한 아이는 지금 그들이 당연시하는 학교생활의 자유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며, 어느 2010년 졸업생이 SNS에 올린 글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체벌이 횡행하던 학창 시절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제목은 '나는 교권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였다.
공교롭게도, 2010년은 경기도교육청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해다. 이후 광주와 서울, 전남, 전북 등 전국의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학생인권조례는 'UN 아동 권리 협약' 등을 기준 삼아 학생 인권 보호를 위해 부모 등 보호자와 학교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물리적 체벌이 금지됐고, 두발 단속과 소지품 검사 등이 시나브로 사라졌다. 미션 스쿨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던 강제적 종교 행사 참여도 금지됐으며,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회장단이 참석하는 등 학생자치회의 권한도 커졌다. 교내 동아리 활동 등이 활성화한 건 덤이다.
아이들은 당시 일상적이던 체벌과 두발 단속 등을 마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여겼다. 한편, 그런 억압적 방식으로 교육했다면 그건 교육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교권이 침해당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던 이유다.
"왜 저들은 우리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때릴 권리를 못 줘서 안달일까?"
대입 개편안 살핀 아이들 "무책임"
▲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교사가 수능성적표를 배부하고 있다. |
ⓒ 권우성 |
자신들에겐 아무 영향이 없다면서도,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에 대해선 혹평을 쏟아냈다. 대통령과 정부가 아예 손을 떼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말을 쏟아낸 것도 이때다. 대입이 교육과정을 쥐고 흔들어 학교를 만신창이로 내몬 현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오로지 대입을 준비하는 훈련소로 여기는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교육의 본령과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무책임한 행태라며 발끈했다.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교육과정이 끊임없이 개정, 보완되고 있는 모습과 '따로국밥'인 현실이 절망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이렇게 단순 무식할 수도 있나 싶어요."
선택 교과별 유불리 문제가 발생하니, 문이과 구분을 아예 없애고 응시 과목을 통일한다고 했다. 내신 등급 경쟁이 치열하니, 현행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줄인다고 했다. 그나마 수능은 변별력 확보를 위해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죄다 '대증요법'뿐인데, 이를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꼬리(대입)가 몸통(교육과정)을 흔들지 못하도록' 하는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등급제를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꾸는 것조차 차선책일 뿐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교육 정상화에 힘써야 할 교육청이 사교육 기관을 불러다 입시 설명회를 여는 현실을 아이들도 모르지 않는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올해 수능 이야기로 이어졌다. 당장 "킬러 문항 없이도 변별력을 확보했다"는 교육부의 발표부터 문제 삼았다.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다"는 말에 빗대며, 정답률이 1.5%에 불과한데 '킬러 문항'이 없었다는 건 난센스라고 꼬집었다. 그들이 '킬러 문항 감별사'냐며 한껏 조롱했다.
아이들은 이번 사달을 통해 현 정부의 '작동 원리'를 눈치챘다. 지난 6월 전국연합평가 때 느닷없는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지시에 부화뇌동하는 관료들의 모습이 한 편의 코미디 같았다고 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나도 전문가지만, 윤 대통령에게 많이 배운다"며 머리를 조아렸던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장관부터 납작 엎드린 마당이니, 교육부 관료들의 입에서 나오는 아부성 발언들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고 했다.
정작 아이들이 문제 삼은 건 따로 있었다. '킬러 문항'이 사교육 의존도를 더욱 높인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그걸 없앤다고 의존도가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확언했다. 사교육은 '킬러 문항'이 아닌, 대입이라는 시스템을 먹고 사는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때 한 아이는 '킬러 문항'과 난이도에 연연하는 건 지엽적인 문제라며 말을 끊었다. 과연 수능이 사고력을 길러주는 제도인지 성찰하는 게 먼저라는 거다. 오지선다형 문항을 없애고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논서술형 방식으로 바꾸는 게 핵심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언어학 올림피아드에 출전하여 수상한, 자타공인 '언어 덕후'다. 이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해서는 안 되는 학교 밖 대회여서, 대입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애써 준비하고 참여한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재미있잖아요!"
그는 수능을 두고 학생들의 무궁무진한 재능을 획일화하는 폭력적인 제도라고 단언했다. 학교생활기록부 역시 개인의 학창 시절과는 전혀 무관한 입시용 서류일 뿐이라고 폄훼했다. 자발적인 공부를 방해하고 저주하게 만드는 주범이라며, 서둘러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화가 갈무리될 즈음, 한 아이가 대통령을 성토해 봐야 달라질 건 없다며 '9수 고시생'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경험치를 즉흥적으로 내뱉으면, 관료들은 수족이 되어 황당한 정책을 쏟아내는 방식은 당분간 계속될 거라는 이야기다. 주상 같은 검찰권까지 틀어쥐고 있으니, 그저 엄혹한 시절을 견뎌내는 것 외엔 답이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잠자코 가만히 있는 게 '교육개혁'이라는 아이들 앞에서 교사로서 뒤통수가 따가웠다. 얼마 전 교수신문은 '견리망의(見利忘義, 이익 앞에서 의로움을 잊다)'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다. 개인적으론 3위를 차지한 '남우충수(濫竽充數)'라는 글귀가 더 제격이지 싶었다.
가짜 악사가 머릿수를 채운다는 뜻으로, 무능한 자가 권력을 손에 쥔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자성어라던 아이들도 그 비유의 적확함에 무릎을 쳤다.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전락한 대통령의 신세도 딱하지만, 그의 치세를 감내해야 하는 아이들의 처지가 백 배는 더 가엾다. 교사로서 그들에게 참으로 미안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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