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동생하던 주민, 멱살잡이 하게 한 사연... 풍력발전기 정답일까?

정수근 2023. 12. 2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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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못·청량산 있는 봉화, 생태탐방은 방치... 봉화군의 현명한 판단 필요해

[정수근 기자]

 늘못에 눈이 쌓였다. 신생대 화산 분화구인 늘못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이 일대 풍력 발전기가 들어설 예정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지난 21일 경북 오지 마을 경북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를 찾았다. 관창리는 만리산(해발 792m) 자락에 형성된 마을이다. 옛부터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면 살았다. 60여 가구 80여 명의 주민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시골 마을이다. 원래는 화전민이 이주하여 만들어진 마을이다.

그런데 이 마을을 굽어보는 만리산 꼭대기에 느닷없이 풍력발전기 11기가 들어선다 해서 논란이다. 마을은 벌써 찬반을 나뉘었다. 19일에는 주민설명회 문제로 마을사람들이 멱살잡이까지 했다. 풍력발전 문제로 마을이 쑥대밭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화산 분화구 '늘못'과 청량산 있는 마을

마을 주민들에게 들은 이 마을의 특징은 만리산(792m)이 신생대 화산인데, 화산이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이 일대 지형이라 한다. 만리산 꼭대기에는 아직 그 흔적이 남아있다. 분화구가 있고 그곳엔 아직 물이 가득 들어차 있다. 주민들을 그곳을 '늘못'이라 부른다.
 
 첩첩산중으로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만리산 정상부에 분화구가 선명하고 그곳에 아직 물이 가득하다. 마을사람들은 이곳을 늘못으로 부르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2009년 3월 23일자 대구신문 <대구논단>을 보면 늘못을 이렇게 소개한다.
 
"'늘못'은 늘모실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는데 만리산 중턱에 자리한 자연 연못이다. 백두산 천지처럼 넓고 큰 것은 아니지만 이 못에 물이 많이 고여 있으면 농사가 풍년이 들고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 윤택해진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원래 이 지역은 아홉 마리의 소가 누워있는 형국으로 되어 있어 구우전(九牛田), 구이밭, 구우밭 등으로 불리고 있다.
 
늘못을 제대로 가꾸거나 꾸며 놓기만 하면 근처에 산재한 사과밭과도 연계한 생활 관광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인데 아무도 관심을 안 보인다. 청량산에 수없이 몰려드는 등산 관광객들을 늘못으로 인도하여 만리산의 갈골로 트래킹 코스를 개척해도 훌륭하다. 늘못은 아이디어만 활용하면 인공이 섞이지 않은 명물이 될 수도 있다."
 
의견이 분분해서 인지 지난 2011년에는 '늘못 생태탐방로 조성사업'으로 늘못 일대에 정자와 탐방데크가 놓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늘못에 대한 생태적·학술적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늘못 일대가 국가습지나 자연환경보전지구 같은 것으로도 지정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방치돼 있는 셈이다.
 
 봉화군에서 관관사업으로 2011년 늘못 주변으로 탐방데크를 깔아놓았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산꼭대기 자연습지 형태의 이 늘못은 입지상으로 봐도 특별하고, 이 일대 희귀 야생동식물들도 출몰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생태조사와 학술조사가 뒤따른다면 국가습지로도 등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관련한 봉화군의 행정적 조치가 없는 것이 안타까워 보인다.

늘못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나 평가조차 없는 가운데 이 늘못 주변에 풍력발전기가 들어선다는 것이다. 늘못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미 풍량 계측기가 3대가 놓였다. 풍량 계측기가 놓인 곳에는 어김없이 풍력발전기가 들어왔었던 전례에 따르면 이미 풍력발전 사업은 시작된 것이다.

11기의 풍력발전기는 (주)탑선이 시공하는 것으로 백두대간 문수지맥 일부에 걸쳐 설치된다. 주실령 옥돌봉에서 시작해서 문수산, 갈방산, 미륵골, 응봉재, 신라재, 풍락산, 만리산, 학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문수지맥 일대에 풍력발전기가 들어서는 것이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이후 산자부)의 승인은 난 상황이고, 봉화군의 개발행위 허가를 기다라고 있는 상황이다. 

둘로 나뉜 마을 주민, 갈등 여전해
 
 늘못 바로 앞에 풍량 계측기가 꼽혀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마을에도 분란의 씨앗이 놓였다. 80여 명 주민의 60~70%는 강력히 반대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 동의 80%가 있어야 봉화군의 개발행위 허가가 가능하다. 그래서 봉화군은 아직 개발행위 허가를 하고 있지는 않다.

분란의 싹은 지난 19일 있었던 주민설명회에서 시작됐다. '관창1리 풍력 반대 주민회' 소속 주민들 증언을 종합하면 마을 개발위원회에서 결정이 나야 하는데, 마을 이장이 직권으로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주민이 찬반으로 나뉘어 옥식각신하다가 멱살잡이까지 했다. 결국 주민설명회는 무산됐다. 

이처럼 분란의 소지는 남아있다. 형님 동생 하던 마을공동체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는 이런 상황은 영양 등 이미 풍력발전기가 들어선 곳에서 보였던 모습 그대로다. 따라서 개발을 하더라도 풍력발전 업체 위주의 개발이 아닌 주민참여형 개발이 이루어져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럽 등 선진사회에서 하는 것처럼 주민들이 개발과정에 적극 참여해서 공사과정과 문제점 등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을 들은 뒤 수익이 생기는 것도 공평하게 나누어가지는 데까지 나아가면 이런 분란은 적어도 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마을 주민들은 이곳 풍력을 반대하고 있다. 입지상 아니란 것이다. 이곳 만리산은 늘못이라는 독특한 습지가 있고, 앞으로는 봉화의 명물인 청량산이 병풍처럼 자리하고 있고 주변 일대가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고 발아래는 낙동강이 흐른다. 따라서 이곳은 개발이 아닌 관광 자원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봉화군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 필요
 
 청산산과 만리산 사이를 흐르는 낙동강. 발아래는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바로 지척인 비나리마을에 사는 '봉화군 풍력 저지 대책위원회' 명호면 책임자인 신기선 회장도 이날 함께 늘못을 둘러보며 말했다.

"늘못은 산양과 담비, 삵 등이 사는 생태자연도 1등급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알고 있다. 이곳을 더 철저하게 조사해서 이곳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종국에는 국가습지 같은 곳으로 지정을 해 보호해야 할 귀한 자산이다.

바로 앞에는 청량산이 마주보고 있고 발아래는 낙동강이 굽이굽이 흐르는 곳이다. 이런 귀하고도 소중한 입지에 웬 풍력발전기란 말인가. 이곳은 입지상 풍력이 들어올 곳이 아니다. 이 일대를 제대로 조사하고 알려서 멋진 생태관광지로 만들어가는 것이 마을을 위해서도 봉화군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대안이 될 것이다"

신대표는 또 "풍력발전은 훌륭한 대안 에너지원으로 많이 들어서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 입지를 잘 골라서 들어서야 한다. 민가와도 좀 떨어지고, 입지상에서도 그 일대가 생태적으로 경관적으로 보전 가치가 충분한 곳에 들어서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어 "설사 개발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개발업체의 일방적 개발이 아닌 주민참여형 공동개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봉화군에서는 이 일대의 입지상 여건을 면밀히 파악하고 주민들과도 충분한 대화를 가지고서 개발행위 허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불필요한 충돌 없이 이 문제가 잘 매듭지어질 수 있다.
 
 봉화군 석포면 오미산에 들어선 풍력발전기 14기가 도열해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현재 봉화군에는 석포면 뒷산인 오미산에 풍력발전기가 14기 들어섰고, 현재 봉화군의 12곳에서 풍력발전 신청이 들어왔다. 이미 4곳에 대한 산자부 승인이 난 상태라 한다. 첩첩산중의 봉화군이 풍력발전기로 완전히 뒤덮일 판이다. 봉화군의 개발행위 허가만 있으면 4곳은 우선 사업이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봉화군의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첩천산중에다 친환경 오지마을로 둘러싸인 봉화군의 참 가치가 뭔지를 제대로 파악해서 실사구시적인 봉화군의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봉화군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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