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소년 32%가 정신질환... 소년원에도 아침이 올까 [소년범죄 현장 보고서]
[최원훈 기자]
소녀의 죄명은 '공무집행방해'였다. 경찰이 소녀를 정신병원에 행정 입원시키는 과정에서 밀치고 저항했다. 우울증과 충동조절장애, 경계선 지능, 불면증 진단을 받아 치료가 필요했지만, 13살 소녀는 폐쇄병동과 약물치료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소녀는 과거 아버지와 살 때 가정폭력과 학대를 당했다.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한 후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어머니는 난치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거동을 할 수 없었다. 낮에는 구청에서 지원받은 요양보호사가 간병했지만, 저녁에는 소녀가 어머니 곁을 지켜야 했다. 소년부 판사는 장기 보호관찰(2년) 처분을 결정했고, 특별준수사항으로 '정신과 진료를 지속적으로 받을 것'을 부과했다.
보호관찰은 비행을 저지른 소년을 소년원에 수용하여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 가정과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준수사항을 이행할 것을 전제로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 및 원호를 통해 재범을 방지하는 제도이다.
준수사항은 '주거지에 상주하고 학업에 종사할 것, 불량교우와 어울리지 말 것,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에 순응할 것, 특정 시간대의 야간외출 금지, 검정고시 준비 및 응시, 금주·금연, 정신과 치료를 받을 것' 등이다.
가정과 학교의 보호를 받는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지킬 수 있거나 해당이 없는 사항들이다. 하지만 비행 위험에 노출된 위기청소년에게는 준수하기 쉽지 않은 일들이다.
소년범죄의 주된 원인이 양육자의 잦은 변경 등 불안정한 가정환경, 보호자의 가정폭력과 학대, 투병과 사망, 부모의 이혼, 가정의 해체와 가출, 소년의 학교폭력 피해, 학교 부적응 및 학교의 무관심, 정신질환, 술·담배·모텔·렌터카·무면허운전·문신·도박·마약 등의 비행하위문화를 제공하는 사회적 환경이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아이들
소녀는 초등학교 때 원룸에 살고 장애인 친구를 도와주며 함께 다닌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다. 중학교 때는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들은 원하는 것을 다 사는데, 소녀는 용돈을 받지 못해 구경만 할 때가 많아 따돌림을 당했다. 결국 무단결석을 반복하며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학업유예됐다.
가출해서 우울증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렸다.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은 서로 공감을 해주고 위로가 되었다. 함께 밤거리를 배회하다 문이 잠기지 않은 차 안에 들어가 현금 5만 원과 주민등록증을 훔쳤다. 절도한 돈과 주민등록증으로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죄명은 특수절도와 점유이탈물횡령이었다.
보호관찰 기간 중 재범을 해서 다시 법정에 선 소녀에게 판사는 9호 처분(소년원 6개월)을 결정했다. 법정에서 소녀에게 수갑이 채워질 때, 가녀린 손목에는 자해했던 상처들이 선명했다.
▲ 소년원에 재원 중인 보호소년들이 생활하는 호실의 창문 |
ⓒ 최원훈 |
13~15세 사이 청소년들에게서 가장 높은 빈도로 발생한 것인데, 시작 연령이 어릴수록 심각한 수준의 자해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고 자살 시도 위험과 더 밀접히 연관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초기 개입이 중요한 것이다. 또한 자해를 지속하는 이유는 '정서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가 46.5%, '내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기 위해'가 15.5%였다.
2023년 6월 기준, 가정법원 소년부의 보호관찰 처분 결정으로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을 받고 있는 소년 중 정신질환자는 15.8%이다. 또한 비행성이 심화·상습화되어 소년원에 재원 중인 보호소년 중 32%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마음의 병은 소년의 의지와 관계없이 대부분 어른들에게서 받은 것이다. 부모의 이혼과 사망, 가정의 해체, 보호자의 교도소 수용과 자살, 알코올 중독과 가정폭력, 학대 등 성장기 동안 소년에게 미친 부정적 경험에 근거한다. 따라서 소년범죄의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엄벌만을 주장할 게 아니라,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전문 의료재활소년원 신설의 필요성
아동·청소년기 정신질환은 조기 치료에 실패하면 중증화·만성화되고, 범죄로 이어지기 쉬운 만큼 시기적절한 치료·재활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치료를 못 받거나 중단하고 재범을 거듭하다 결국 소년원 처분을 받는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의료재활소년원이 없다. 소년범죄 예방과 재범방지를 위한 인프라 확충을 추진해 왔지만, 소년원을 혐오시설로 인식하는 님비(NIMBY)현상으로 인해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질환 청소년들은 보호처분의 마지막 단계인 소년원에서도 정신질환을 치유하지 못하고 사회로 복귀한다.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가정환경이 궁핍하고 보호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약물·심리치료와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하고, 정서적 고통 치유와 자존감을 높이는 관심과 교육이 절실한 아이들이지만, 갈 곳이 없어 자포자기 상태로 거리를 배회하며 재범 위험에 노출된다. 가정과 학교, 병원의 기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의료처우 기관이 필요한 이유이다.
위기청소년, 그중에서도 정신질환·지적장애 청소년들은 국가가 끌어안아야 할 대표적인 소외계층이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치료·교육을 통해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인 나는 지난 수년간 언론을 통해 교육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정신질환 위기청소년을 치료할 의료재활소년원을 신설하자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달라진 건 없다.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가난한 사람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가 책에 뭐라고 쓰든 가난한 사람의 인생은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왜 이전하고 같을 수밖에 없느냐고요?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들을 옷을 뒤집어 보이듯 세상에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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