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말, 교실에 울려 퍼지는 한숨... 입시 컨설팅 옳은 길일까
[김홍규 기자]
▲ 수능 성적표 배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교사가 수능성적표를 배부하고 있다. |
ⓒ 권우성 |
학기 말, 특히 학년 말이면 고등학교 교실과 학교에는 차마 보기 어려운 잔인한 풍경이 나타난다. 이른바 '내신'(內申) 성적 결과 때문이다. 1점 차이로 또는 한 등수 차이로 등급이 갈린 학생들이 뱉어내는 짙은 절망 섞인 한숨 소리가 학교 곳곳에서 들린다.
수능 성적 발표로 3학년 교실이 크게 일렁인지 얼마 안 된 시기다. 이를 지켜보는 교사들의 어두운 표정이 겹쳐 교실과 학교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에 두고 짙은 어둠으로 채워진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용한 '내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내신'(內申)을 "인사 문제나 사업 내용 따위를 공개하지 아니하고 상급 기관에 보고함"이라고 안내한다. 그리고 교육에서 "상급 학교 진학이나 취직과 관련하여 선발의 자료가 될 수 있도록 지원자의 출신 학교에서 학업 성적, 품행 등을 적어 보냄. 또는 그 성적"이라고 덧붙였다.
'내신'은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이지만, 법률 용어가 아니다.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 어디에도 없는 단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우리말도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된 사라져야 할 말 가운데 하나다.
이경숙은 <일제시대 시험의 사회사>라는 박사학위논문에서 '소견표'라고 쓰던 용어가 일제 강점기 말에 '내신추천서'로 바뀌었다고 했다(이경숙, 2006, <일제시대 시험의 사회사>, 248쪽, 경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말의 질기고 긴 뿌리만큼이나 학생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매우 크다.
고등학교 성적은 크게 두 가지로 표현된다. 일종의 절대평가 형태인 A, B, C, D, E가 있다. 여기에 백분율을 기준으로 해 학생들의 순위를 매겨 9등급으로 나누는 상대평가가 더해져 있다. 수능 9등급 평가와 같은 방식이다. 진로선택 과목은 등급을 나누지 않고, A, B, C로만 성적을 매긴다. 교양 과목은 P/F(통과/미통과)만 확인한다. 대체로 대학입시에서는 9등급으로 표시된 등급 점수를 반영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등급에 예민한 이유다.
수능도 마찬가지이지만, 학교 성적도 기본적으로 아무리 열심히 해도 4% 안에 들어야 1등급을 받을 수 있다. 나보다 다른 학생들 점수가 좋으면 높은 점수를 받아도 등급은 내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성적이 좋지 않다'라는 말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다.
고등학생들, 특히 2학년 학생들이 학년 말 성적에 더욱 민감하게 감정이 요동치는 데는 입시 컨설팅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사설 기업 컨설팅이야 '이렇게는 안 된다', '더 내려가면 문제다'라고 해야 고객을 모을 수 있으니 그렇다고 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교육청 주관 입시 컨설팅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유독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컨설팅 갔는데, 선생님께서 여기서 더 내려가면 안 된다고 했다"이다.
지역교육지원청이나 도 교육청이 주관하는 대학입시 컨설팅 또는 설명회에는 대부분 교육청이 채용한 '입학지원관'이나 입시 전문가로 불리는 현직 교사들이 상담을 맡는다. 수도권까지 가서 비싼 돈을 내고 입시 상담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이 주로 찾는다. 왜 유독 컨설턴트들이 한 말 가운데 학생들 가슴에 '더 내려가면 망한다'만 남았을까. '입시 지원관'은 교사 경험이 없어서 학생들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현직 교사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
물론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데는 그들 가까이 있는 교사와 학교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를 유지하면서 이득을 보는 수많은 기성세대가 상처 입은 학생들에게 가해자이다. 교사이면서 성인인 나도 그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다. 미안합니다, 학생 여러분!
해가 갈수록 학생과 교사를 지원해야 할 교육청이 나서서 학교 교육과정과 생활기록부를 대학입시에 맞추도록 요구하는 강도가 세진다. 나아가 입시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지지 못 할 만들이 춤추도록 만드는 일도 늘어난다. 그로 인해 학생들이 힘들어하고 이를 지켜보는 교사들 마음도 무거워진다. 학생 인권과 교사의 권리 침해라 이름 붙일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상대평가 중심 학교 성적 평가를 2단계나 3단계 정도의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 더불어 수능제도도 자격 고사로 전환해야 한다. 올해 교사의 권리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나는 교권보다는 학생 인권에 더 관심이 많다. 하지만, 교권을 말하면서 교사를 믿지 않고 교사와 학생 모두를 힘들게 하는 교육과정 운영과 평가 제도를 강제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 좋아하는 교육 '선진국' 대다수가 교사의 권리와 자율성에 관심을 둔다. 그 관심은 '학생을 잡을 권한'을 주는 데 있지 않다.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학생의 성장과 성숙을 돕는 평가 제도 마련에 있다. 교육청과 교육부, 사회가 교사를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교권'을 말할 수 있겠는가? 교사를 전문가로 대우하지 않고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그 어떤 교육개혁도 실패하게 되어 있다.
행정직을 '교육 전문직'이라고 부르는 분야가 교육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교사는 관련 분야 경력이 아무리 많고 학위가 있어도 '교육 전문직'이라고 불릴 수 없다. 하지만, 경력이 아무리 짧고 지식이 없어도 장학사 시험에만 합격하면 '교육 전문직'이 된다. 장학사는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관료다. 세상에 이런 제도를 두고 교육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지나친 욕심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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