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늘 아래 9만 2890이 여기에서 삽니다

이동현 2023. 12. 2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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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판잣집·쪽방 등 집이 아닌 취약거처에 사는 사람들, 매입임대 입주 기다려

[이동현]

"서울시민 누구나 주거안정을 가장 절실히 원하고 있습니다... 매입임대주택 및 장기안심주택을 6000여 호 확충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1월 1일, 2024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에서 밝힌 내용 중 일부다. 

오 시장은 시민의 주거안정을 강조하며 이를 위한 수단으로 매입임대주택 사업을 꼽았다. 그런데 이를 시행해야 할 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공사)의 김헌동 사장의 속마음은 다른 것 같다. 바로 다음 날 서울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 나온 김헌동 사장은 매입임대주택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았다. 비판의 핵심은 매입임대주택 집값이 추후 하락하기에 매입을 할수록 손해가 커지고 세금이 낭비된다는 것이다.

"보통 한 20평짜리를 5억 이상 주고 취득합니다. 그런데 이 가격이 시간이 흐르면 다세대·다가구주택들이 값이 오히려 떨어져 가지고 취득가보다 낮아지죠. 그런데 아파트 같은 경우는 우리가 25평을 지어도 한 2억이면 지을 수 있는데 지으면 5억~10억까지 이게 뛰기 때문에 아파트를 지으면 재산이 한 4배 이상 증가하는데..." 

맞는 산수일지 몰라도 '시민의 주거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 사장의 인식으로는 매우 위험하다. 주택을 '상품'으로 보는 전형적 시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김헌동 사장은 매입임대주택 정책이 '주택시장 거래의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한다며, 주택 가격 동향에 따라 매입 시기와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 주장한다.

그러나 매입임대주택을 포함한 공공임대주택은 시민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적기에 적정 물량을 공급하는 게 관건이다. 주택 시장가를 관망하며 매입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은 부동산 투기회사나 하는 일이다. 더욱이 매입 후 공급된 공공임대주택은 주택시장으로 팔려나갈 상품으로서의 성격이 탈각되고 시민의 보금자리로서만 기능하는 필수공공재로 전환된다. 주택 매입으로 생기는 것은 시세 차익이 아니라 입주자의 주거안정이고 주거복지다. 매입임대주택을 시장 가격으로만 가치 평가하는 것은 물신주의에 사로잡힌 시장주의자의 편견에 불과하다. 

김헌동 사장이 "어느 순간 SH가 매입주택을 사다가 임대주택 관리하는 회사로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힌 인식은 그간 매입임대주택을 '짝퉁' 공공임대주택이라 비하한 데서 나아가 임대주택 정책에 대한 비하로 확대되고 있다.

결국 자기 스스로 제 역할을 덧없다 여기는 수장을 둔 SH공사의 매입임대주택 정책은 추락하고 있다. 내년도 서울시의 수급자 등 주거취약계층 주거안정 도모, 재해취약 반지하주택 매입 등을 위한 일반(다가구) 매입임대주택사업 예산은 2023년 4467억 원에서 649억 원으로 85%나 삭감되었다. 매입목표 물량도 2023년 3400호에서 2024년 500호로 형편없이 줄었다. 여러 주거권 단체들에서 누차 지적했던 문제, 매입임대주택 예산 불용액 증가에 따라 예산이 삭감됐기 때문이다. 

아파트만 쳐다볼 때 가려지는 현실
 
▲ 쪽방 내부 사진  쪽방 건물 내부. 가파르고 좁은 계단, 조악한 세면장과 낙상 우려가 큰 복도가 위태롭다
ⓒ 홈리스행동
김헌동 사장은 매입임대주택의 높은 매입가를 부각하며, 특히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건설을 대안으로 말한다. "반값 아파트 공급으로 주거사다리 기반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반값 아파트', 가난한 이들이 오를만한 사다리인가? 김헌동 사장이 입만 열면 예로 드는 고덕강일3단지(전용 49㎡)의 추정 주택분양가는 3억 1천만 원, 월 토지임대료는 35만 원이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얼토당토않은 금액이다.

'2022년도 주택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하늘 아래 9만2890가구가 고시원, 판잣집, 쪽방 등 집이 아닌 취약거처에서 살고 있다. 그중 대다수(88.2%)는 고시원·고시텔 등지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시원, 쪽방 등 비적정 거처의 열악한 주거실태는 이제 상식이 된 정도다.

최근 서울지역 빈대 발생 건수의 절반 가까이가(44%) 고시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은 코로나19 방역조치 해제에 따른 해외 유입을 빈대 발생의 원인으로 보고 있지만, 고시원과 쪽방 등지에 거주하는 홈리스에게 빈대, 바퀴벌레와 같은 해충은 아주 오래된 골칫거리였다. 좁은 면적과 방음, 취약한 냉난방 설비, 부엌과 화장실 같은 편의 설비의 부족, 화재에 따른 빈번한 인명 사고는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지체와 한계가 낳은 그늘이다. SH공사가 뼈아프게 인식하고 정책적 비중을 두어야 할 부분은 바로 이런 현실이어야 한다. 
 
▲ 쪽방 빈대  쪽방 주민이 잠깐 벗어놓은 마스크. 피를 빨아 빨갛게 몸집이 부푼 빈대가 붙어있다
ⓒ 동자동사랑방
 
주거취약계층에게 주거사다리는 '반값 아파트'가 아니라 '매입임대주택'이다. 서울시도 SH공사를 통해 매해 300호 가량의 매입임대주택을 쪽방, 고시원, 지하층 거주자 등에게 공급하고 있다. 위 물량은 앞서 언급한 거대한 취약거처 거주 가구의 규모에 비할 때 크게 미달함은 물론이고, 김헌동 사장 체제 혹은 시차를 두고 더욱 축소될 우려가 크다. 해당 사업은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국토교통부훈령)에 의해 집행되는데, 지침은 매입임대주택 공급물량의 30% 범위로 공급호수를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입임대주택과 연동되는 또 하나 중요한 정책으로 '지원주택'이 있다. '지원주택'은 어르신, 장애인, 노숙인 등에게 매입임대주택과 함께 주거유지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임대주택이자 정책이다. '집'만 제공할 경우 주거유지가 힘든 이들에게 집과 함께 대인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 주거정착을 돕는 '주거우선' 전략에 입각한 적극적 주거복지 정책이다.

매입임대주택 정책이 축소된다면 이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미 '노숙인 등'에게 공급된 지원주택은 2020년 100호, 2021년 54호, 2022년 14호로 지속 줄고 있다. 감소 추세도 문제지만, 서울시의회 연구용역의 공급 추계에 따르면 매해 최소 300호 이상 공급을 제시하고 있어 물량의 절대적 부족이 심각하다. 이렇게 지원주택이라는 주거 대안이 형해화될 경우, 정신질환, 알코올릭 등에 노출된 홈리스들은 더욱 만성화되며 홈리스 상태를 벗어날 가능성이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고시원에서는 밥 안 먹을 때가 너무 많았어요. 어떨 땐 굶고 어떤 때는 먹고 그랬어요. 방이 40개가 넘었는데 주방이 하나 있었어요. 밥때 되면 여럿이 뭐를 만들기 때문에 못 먹을 때가 많았었어요. 그래서 영등포 옹달샘이나 햇살 같은 노숙인시설에 가서 먹고 그랬어요. 요즘은 집에서 밥해서 먹고 있어요. 포기 김치 잘게 썰어서 넣어 놓고 된장찌개에다가, 돼지고기 비계 사다가 김치에다 넣어서 끓여 먹고."(A씨, SH공사 매입임대주택 입주자)

지난 10월, 평생 염전, 생활시설, 고시원 등지를 옮겨가며 살던 A씨는 난생 처음 '집'에 들어갔다. SH공사의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한 이후 평생 처음 집밥을 먹었고, 집에서 씻었고, 세탁하고, 거실에서 TV를 보았다. 시세차익은 못 만들지언정 매입임대주택이 가져온 성과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2023홈리스추모제 사전마당이 열리고 있다. 저녁 7시에는 홈리스추모문화제가 열릴 것이다. 모든 홈리스의 죽음은 집다운 집이 없어 생긴 죽음이다. 부디, SH공사 사장의 왜곡된 확신이 가난한 이들의 집앓이를 심화시키지 않기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동현씨는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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