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으라며 임신 모습은 '노란딱지'?... 뼈아픈 경고
[이진민 기자]
▲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지난해 기준)이란 이야기에 '그 정도로 낮은 수치를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
ⓒ EBS |
오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2750년에 물거품 된다. 왜? 젊은 여자들이 애를 안 낳아서!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지난 2006년 유엔 인구포럼에서 한국이 심각한 저출생 현상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첫 번째 나라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는 EBS 다큐멘터리 '인구대기획 초저출생'에서 한국의 합계 출생률을 듣자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고 반응했다.
아이가 하늘에서 뚝, 아님 황새가 물어 다 줄리 없다. 반드시 여성들이 직접 낳아야 할 텐데, 어디에도 임신과 출산의 진실은 없다. 사회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해결될 거란 1950년대식 표어처럼 행동하고 미디어 속 임산부는 새 생명을 잉태한, 아름답다 못해 신성한 존재로 묘사된다. 실제 임신해도 마른 몸에, 온화한 미소 지을 수 있는 거 맞죠? 여성들의 의구심에 한 유튜버가 앙큼한 진실을 꺼냈다.
임신 후 신체 변화를 말했는데 성인용 콘텐츠라고?
▲ 해쭈는 자신의 경험은 개인적이며 임신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변화는 여성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강조했다. |
ⓒ Youtube |
특히 해쭈는 남편과의 다정한 결혼 생활을 공개하며 이른바 결혼 장려 커플로 불린다. 지난 16일 '임신 후 몸에 생긴 날것의 변화를 보여드리겠다'는 제목으로 해쭈는 임신 후 벌어진 몸과 마음의 변화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신체 곳곳에 피부 착색이 일어나고 유선 발생으로 인한 유즙에 임신선, 튼살까지. 아이가 커지면서 소화 불량에 시달린다는 그의 솔직한 고백은 2030 여성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
시청자들은 '임신한 여성의 변화를 알리는 선한 영향력이다', '성교육 영상으로 쓰였으면 한다', '저출산 시대에 유익한 정보다' 등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다. 그러나 해당 영상에 유튜브는 '노란 딱지'를 붙였다. 노란 딱지란 유튜브 운영 기준에 위배되는 영상에 붙는 아이콘으로 노란 딱지가 붙은 영상은 수익 창출이 제한된다.
유튜브 측은 해당 영상이 성적인 신체 부위를 과도하게 노출했다는 이유로 노란 딱지를 붙였다.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유튜브는 다시 수익 창출을 허가했다.
임산부의 신체 변화를 성인용 콘텐츠로 분류한 유튜브 행보에 시청자 비판이 거세다. "자녀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야 할 정보다", "이런 사실을 몰라야 출산율을 높인다는 건 옛말이다" 등 해쭈의 솔직한 고백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들의 고민을 해결한다는 평이 대다수다. 특히 외설적으로 성을 다루지만, 19금은 아닌 모호한 유튜브 채널들이 수익 창출에 박차를 가한 현시점에서 노란 딱지의 기준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쭈의 고백이 반가운 이유
유튜버 해쭈의 영상이 젊은 여성들에게 반가운 데는 씁쓸한 이유가 있다. 출산을 권장하는 사회적 움직임과 달리 실제 임신한 여성들이 어떠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는지 혹은 출산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활발히 다뤄지지 않는다. 성교육 자료에도 출산과 임신에 대한 원론적인 정보와 아름답게 묘사된 임산부만이 담겨있다.
미디어 속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 임신과 출산의 현실을 지우려는 시도가 더욱 체감된다. 2018년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은 셋째 아이 출산 7시간 만에 붉은 드레스와 하이힐을 신은 채 대중 앞에 섰다. 이에 WP 에이미 조이스, BBC 제인 가비 등이 "미들턴의 출산 후 빛나는 모습은 현실과 다르다"고 밝혔고 이후 출산을 경험한 여성들이 SNS를 통해 실제 사진과 일화를 공유하며 현실 속 여성들이 경험하는 출산에 대한 관심이 모아졌다.
미디어에서 임신한 여성을 찾는 건 쉽지 않다. 할리우드에서 임신한 여성 배우가 임신하지 않은 여성처럼 연기하거나 그의 신체를 CG 처리하는 일은 다반사다.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스파이더맨 3> 촬영 당시 고층 빌딩에서 추락하는 장면까지 직접 대역 없이 소화하며 촬영했고 레베카 퍼거슨은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때 배에 복대를 차고 격투씬을 촬영했다. <원더우먼> 속 갤 가돗은 불러오는 배를 CG 작업을 통해 숨겼다.
많은 사람이 임신 후 변화를 모른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해쭈의 영상은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알고 싶은 젊은 여성 세대에게 환영받고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출산을 결정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막대한 지원금이나 복지 정책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현실적인 사실이다.
▲ 최재천 진화생물학자는 '모든 환경 문제는 궁극적으로 인구 문제'라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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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이상한 겁니다'라는 영상 제목과 함께 대한민국 저출생 문제를 짚어냈던 최재천 진화생물학자는 14일 '최재천의 아마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역시 대한민국 사람들은 진짜 똑똑하다. 진화적으로 기가 막히게 적응을 잘하는 민족이다. (동물에 비유하자면) 상황이 좋아졌을 때 새끼를 낳아야 하는 것"이라고 저출생 문제를 평했다.
2022년 가임여성 1명당 출산율은 0.78명. 2023년 2분기는 0.7명, 내년에는 0.68명으로 감소해 2025년에는 0.65명이란 전망이다. 통계청이 15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30'에서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 20대 여성은 27.5%, 20대 남성은 41.9%였다. 비혼, 비출산을 선택한 청년층도 급증했다. 정부는 지난 3월 선택과 집중을 바탕으로 '저출산 정책과제 및 추진방향'을 마련했다.
이토록 시급하고, 간절한데 왜 젊은 여성들은 애를 낳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래 27년째 꼴찌다. 2022년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는 12,828건으로 역대 최대치다. 지난 7월, 한 여성은 페미니즘 관련 SNS 게시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고 11월, 다른 여성은 '숏컷을 했으니 페미니스트'라며 폭행을 당했다. 미주한국일보 광고면에 실렸던 문구가 생각나는 시점이다.
'여성의 가장 강력한 힘은 아기를 낳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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