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밑바닥, 어디 가겠나"... 폐쇄 앞둔 '미아리 텍사스' 가보니

김성욱 2023. 12. 2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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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재개발 이주 기간에도 영업중인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성북구 탈성매매 지원 필요"

1960년대부터 만들어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속칭 '미아리 텍사스'가 재개발로 인해 사라집니다. 현재 이주가 시작된 상태지만, 80여 업소가 여전히 영업 중입니다. 성북구청과 종암경찰서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는 사이, 업주들이 성매매 여성들을 이용해 보상금을 높이려 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앞으론 어디로 향할까요? <오마이뉴스>가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편집자말>

[김성욱, 박수림 기자]

 지난 14일 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입구. 내부순환로 교량 아래 정릉로 쪽이다. 일대 재개발로 인해 폐쇄를 앞두고 있지만 밤에는 여전히 성매매 영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 김성욱
 
지난 14일 자정, 서울 성북구 현대백화점 미아점에서 불과 300미터 떨어진 하월곡동 88번지. 8차선 대로변을 따라 드문드문 난 좁은 골목 입구마다 '미성년자 출입금지' 팻말과 함께 모텔 주차장에서 볼 법한 커튼형 가림막이 쳐있었다. 낡은 가림막을 젖히고 한 골목만 안쪽으로 들어서니 막걸리 쉰내와 오줌 지린내가 진동했다.

골목엔 커버가 닳은 침대 매트리스들과 14인치짜리 구형 브라운관 TV, 찌그러진 전자레인지 등 집기류가 버려져 있었다. 2~3층 높이 낡은 건물의 문과 벽엔 '공가'라고 쓴 페인트가 보였다. 한쪽에는 '이주 개시', '신월곡 1구역 이주비 접수처', 다른 한쪽에는 '우리는 살고 싶다', '성북구청은 우리 미아리 성노동자들의 이주에 대해 왜 침묵하는가'라고 적힌 현수막들이 찬바람에 흔들렸다.

이곳은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라 불리는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다. 1960년대부터 형성된 이곳은 최근 재개발이 확정돼 지난 10월 16일부터 내년 2월 29일까지 이주 기간에 들어갔다.

폐쇄 앞뒀지만… 해 지자 포장마차 문 열고 마담 수십명 활개
  
 지난 14일 밤,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라 불리는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를 찾은 남성들.
ⓒ 김성욱
 

이주 시한이 두 달 남짓 남았지만 아직 이곳을 떠나지 않은 성매매 업소들은 여전히 영업 중이다. 낮에는 4~5명의 월급 마담들이 호객을 했는데, 밤이 되자 책상 하나 정도 들어갈 크기의 빨간 비닐천막에 열풍기 하나 놓고 대기하는 여성 마담만 20~30명에 달했다. 해가 지기 전까진 꽁꽁 싸매져 있던 포장마차 십여 곳은 저녁 7~8시가 되자 하나 둘 문을 열고 삼겹살, 떡볶이 따위를 팔았다.

동시간에 골목에서 관찰된 남성들은 10여 명 정도였다. 20대부터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노년층까지 다양했다. 남성들이 앞을 지나갈 때마다 마담들은 "놀러 왔냐"며 팔을 붙잡았다. 새벽 1시가 지나자 몸을 휘청이며 큰소리를 내는 취객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관할 경찰·성북구청·시민단체 얘기를 종합하면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업소는 80여곳, 성매매 여성은 2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성매매 집결지가 포함된 신월1구역 재개발을 추진하는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 측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미아리 텍사스 내 이주 대상 업소는 약 100곳이고, 이중 20곳은 합의를 하고 이주를 마쳐 남아있는 업소가 80곳"이라고 했다. 앞서 떠난 업주들이 받은 보상금은 2000만~3000만 원 선으로 전해진다.

"성매매 집결지 쇠락하자 재개발"... 업주들, 조합과 보상 협의 중
  
 지난 14일 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입구. 내부순환로 교량 아래 정릉로 쪽이다. 일대 재개발로 인해 폐쇄를 앞두고 있지만 밤에는 여전히 성매매 영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 김성욱
 
이곳이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건 2009년이다. 이후 15년 가까이 표류하던 재개발이 급물살을 탄 건 근래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상권이 쇠락했기 때문이라고 상인과 주민들은 설명했다. 2000년 전후 한때 업소 200여 곳, 성매매 여성 3000여 명에 이를 정도였지만, 온라인·모바일을 매개로 한 성매매가 늘고 용산·청량리·천호동 등 다른 집결지가 사라지면서 이곳을 찾는 발길도 차츰 줄었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의 성매매 집결지는 미아리와 영등포, 두 곳뿐이다.

한 성매매 여성(44)은 "그동안 재개발 얘기는 수도 없이 들었지만 업주들이 반대해 미뤄진 것"이라며 "2010년 초중반까지만 해도 아가씨들이 월 1000만 원 수익을 올렸을 정도니 업주들은 얼마나 현금을 쓸어 담았겠나"라고 했다.

그는 "성매매 업주·건물주들은 보상비 받고 나가는 것보다 여기 말뚝 박고 장사하는 게 훨씬 돈이 되고 현금 융통도 좋았기 때문에 재개발을 반대하다가, 장사가 안 되자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교통정리가 된 것"이라며 "요즘은 손님이 없어 한 달에 300만~400만원을 못 벌 때도 있다"고 했다. 30분당 10만 원 가격 중 성매매 여성에게 돌아가는 것은 3만 5000원에서 4만원 정도라고 한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미아리 텍사스가 있는 길음역 10번 출구 쪽은 물론이고 대로 건너편인 (길음역 9번 출구) 삼양로 언덕까지 성매매 업소들이 즐비했다"라며 "최근 대규모 신축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면서 삼양로 쪽 불법 업소들은 벌써 다 없어졌고, 학원이나 카페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삼양로 주변엔 37층 19개동, 2029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생겼고, 현재 삼양로에 보이는 업소는 5곳 정도였다.

집결지가 없어지는 자리엔 47층 10개동, 2244세대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현재 집결지 구역 내엔 성매매 업소뿐만 아니라 일반 주택들도 있는데, 방 세 칸 있는 집이 보증금 500만~1000만원에 월세 30만~60만원 선이다. 부동산 관계자는 "주택들이 워낙 노후해 주인들이 관리비라도 받자며 서울서 가장 싼 가격으로 세를 놓았었다"고 했다. 성매매 업소가 내는 월세는 150만~200만 원 선이었다고 한다.

"성매매 여성 보상 없다"...1인 시위 현장서 포착된 전직 업주 대표
  
 지난 13일 오후 성북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하월곡동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에게 과거 한때 전국 열 곳 이상의 성매매 집결지 업주 대표들로 구성된 '한터전국연합'의 전직 대표였던 강아무개(맨 왼쪽, 69)씨가 찾아온 모습이 포착됐다. 그는 "업주와는 전혀 상관 없이 종사자들을 위해온 것"이라고 했다.
ⓒ 김성욱
 
재개발 조합 측은 성매매 업주들과 보상금 협의를 계속하고 있지만, 성매매 여성들은 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조합 측은 "무허가 건물에서 불법적인 성매매를 한 것"이라며 "업주들과는 영업보상 차원에서 협의를 진행하지만, 여성 종사자들에 대한 보상 계획은 없다. 채용한 업주들이 알아서 해야 할 몫"이라고 했다.

이에 일부 하월곡동 성매매 여성들은 지난 11월부터 성북구청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며 이주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일각에선 시위 여성들이 조합으로부터 보상금을 더 받으려는 업주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고도 본다. 실제 과거 전국 열 곳 이상의 성매매 집결지 업주 대표들로 구성된 '한터전국연합'의 전직 대표였던 강아무개(69)씨가 성북구청 앞 1인 시위 현장에 나타나기도 했다.

강 전 대표는 지난 13일 성북구청 앞에서 기자와 만나 "현직에서 물러난 상태로, 시위를 하는 여성 종사자들에게 어드바이스(조언) 하러 온 것일 뿐"이라며 "업주와는 전혀 상관 없이 종사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피켓 시위를 하던 여성은 "업주와 관계 없이 종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누구이고 어디로 갈까
  
 지난 14일 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에서 만난 한 성매매 여성이 <오마이뉴스>와 대화하고 있다.
ⓒ 김성욱
 
시위 현장이 아닌 하월곡동 집결지 내에서 만난 성매매 여성들은 보상에 대한 기대보단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벌지에 더 관심을 두는 분위기였다. 미아리 텍사스가 완전히 사라지면 음성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수유리 노래방이나 원주 집결지, 오피스텔 등으로 가게 되지 않겠냐는 예측이 많았다.

"그 전에도 성매매 집결지 없어질 때 아가씨들이 보상을 받은 사례가 거의 없다. 받았다면 다들 시위하러 나가지 않았겠나. 우리는 단합이 잘 될 수가 없는 게, 다들 저녁 5~6시 비슷한 시간대에 일 나와서 각자 가게 안에서 대기하면서 손님을 받는다. 옆 가게나 서로 얼굴을 알지 오래 일해도 친해지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나도 처음엔 1인 시위 단톡방에 들어갔다가 변호사 선임 비용 얘기 나오고 하길래 나왔다. 사실 업주들도 재개발 얘기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가 폐쇄되고 아파트 들어선다는 인식이 아직도 크진 않다. 오히려 '여기 아직 안 없어졌어?'하고 묻는 손님들이 많아서 '이젠 정말 살 길 찾아 떠나야 하나' 싶다." - 45세 여성 A씨

"여기 오는 사람들은 손님이고 아가씨고 진짜 밑바닥들이다. 다들 빚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20대 때 사업하는 아버지에 명의를 빌려줬다가 쫄딱 망해서 사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빚이 빚을 낳아 투잡 쓰리잡 하면서 30대가 되도록 갚았는데도 1000만원이 줄질 않았다. 죽을 것 같았다.

빚쟁이들한테 하도 시달리다가 '일급 30만원 보장, 얼굴 몸매 상관없음'이라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연락을 했더니 바로 봉고차가 날 데리러 왔다. 그게 미아리 생활 시작이었고, 업주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일주일 일하고 나면 1000만원을 선불로 주겠다고 했다.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1000만원 빚 곧바로 입금해버리고 걱정 없이 하루 푹 잤던 거. 그리고 나서 일하면서 선불을 갚아갔다." - 43세 여성 B씨

"5년 전 여기서 만난 손님과 결혼을 해서 미아리를 떠났었다. 그때까지 모은 돈을 다 합쳐 남편과 한식당을 차렸고 어느 정도 자리잡나 했는데 코로나가 터져버렸다. 아침 6시부터 일하면서 좋아지겠지, 좋아지겠지 했는데 어느새 빚만 1억이 쌓였다.

결국 이혼하고 6개월 전 다시 미아리로 왔다. 개인회생 중이라 지금도 한 달에 43만원씩 변제금을 낸다. 미아리 없어지면 어디로 가겠나. 가까운 수유리 노래방으로 가거나, 원주 같은 데 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오피스텔이나 룸살롱은 젊은 사람들만 받기 때문에 우리 같이 미아리에서 오래 나이 든 사람들은 가지도 못한다." - 43세 여성 C씨

100미터 거리에 경찰 치안센터...성북구 "성매매 여성 지원방안 검토중"  
 
 한 마담이 호객을 하기 위해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에 나와 있다. 마담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이었다.
ⓒ 김성욱
전문가들은 성매매 집결지 폐쇄는 바람직하지만, 이곳을 떠나게 될 여성들이 또 다른 성매매 업소로 이동하지 않도록 지자체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는 "성매매 집결지가 없어져야 새로 유입되는 여성들도 감소하기 때문에 집결지 폐쇄는 중요하다"라며 "폐쇄 시 여성들의 탈성매매를 위해 성북구가 주거비와 생계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017년 제정된 '성북구 성매매 예방 및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 지원 조례'에도 이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1년 전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를 떠난 뒤 현재 여성자활센터의 지원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 한 탈성매매 여성(41)은 "실질적이고 다양한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성북구 측은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자활지원 대책이 있나'란 질문에 "지원방안을 검토 중"이라고만 답했다.

관할인 종암경찰서 측은 집결지 폐쇄에 대해 "내년에는 성매매 업주에 대한 불법 수익 환수 추징 등도 검토 중"이라며 "단순 단속보다는 근절을 목표로 활동하려 한다"고 했다. 앞서 지난 2021년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 폐쇄 때에도 경기남부경찰청이 성매매 업주가 벌어들인 62억 원을 추징 보전했던 사례가 있다.

다만 경찰 측은 미아리 텍사스에 대한 구체적인 불법·단속 현황 등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밤새 마담이 진을 치는 길음역 10번 출구 쪽 성매매 집결지 입구에서 불과 100미터 떨어진 곳에 길음1치안센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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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텍사스 성착취 업주들, 재개발 보상해줘야 하나요" https://omn.kr/26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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