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치사도 보복운전도 우리편…野 '온정주의' 병 또 도졌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총선을 앞두고 ‘제 식구 감싸기’ 문화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범죄 경력으로 공천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예비후보들을 현역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옹호한 발언이 이어지면서다. 당내에선 “또다시 ‘내로남불’ 프레임에 갇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민형배 의원은 20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정의찬 예비후보의 공정한 자격심사 요청 탄원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한총련 산하 남총련 의장 시절 민간인 치사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은 점이 논란이 돼 총선 후보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정의찬 당대표 특보의 전남 해남-진도 출마 자격을 회복시켜 달라는 취지다.
민 의원은 “검증위는 당사자 해명도 듣지 않았다”며 “이의신청처리위원회가 근거를 명확히 따져 ‘부적격’ 판단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 의원은 또한 “지자체장(광주 광산구청장)으로 일할 때 저는, 정의찬 예비후보를 공무원(구청 열린민원실장)으로 임용한 바 있다. 결격 사유가 없어 정상 임용했다”라고도 했다. 정 예비후보를 “강압 수사의 피해자”로 기술한 탄원서엔 21일까지 1만명 이상이 서명했다고 한다.
거꾸로 예비후보자들이 수사 중인 기성 정치인을 감싼 경우도 있다. 최근 송영길 전 대표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김준혁 한신대 부교수(경기 수원정), 현근택 변호사(경기 성남중원),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경기 용인병) 등 내년 총선 출마를 선언한 10여명이 이름을 올린 ‘구속영장청구 기각요청 탄원서’가 대표적이다. 이들 역시 검찰을 향해 “수사를 가지고 정치를 한다”고 비난하며 송 전 대표를 옹호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당 지도부도 신중하게 접근하는 사안인데, 총선 출마 예정자들이 탈당까지 한 인사를 감싸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온정주의 습관엔 당 지도부도 예외가 아니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21일 MBC 라디오에서 보복운전 유죄판결로 예비후보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이경 전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에게 “안타깝다”고 밝혔다. “부적격 받은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떻게 보면 거기에 인생과 목숨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기회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은 큰 충격이라고 생각된다”는 이유도 댔다. 두 사람은 2021년 대선 경선 때 함께 이 대표 대변인을 지낸 인연이 있다.
당 안팎에선 민주당 특유의 온정주의가 운동권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사독재 같은 거악(巨惡)에 맞서 싸우는 ‘단일대오’를 강조하다 보니, 제 식구 감싸기의 함정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우리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고 구분 짓는 편향성이 강하게 형성된 세대가 민주당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며 “과감하게 당 운영의 기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국민의힘과 비교가 되면서 곧바로 총선에서 국민들의 심판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은 이미 당내에서도 수차례 제기됐다. 앞서 김은경 전 민주당 혁신위원장도 지난 7월 한 방송에 출연해 “(민주당에) 들어와서 보니 일이 발생하면 그 일을 빨리 해결해야 하는 시기를 놓치는 게 보였다”며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어떤 일을 대할 때 약간의 온정주의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은경 혁신위가 1호 혁신안으로 제시했던 ‘불체포 특권 포기’ 역시 단 한 번도 지켜지지 못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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