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글돈글]'싹쓸이 쇼핑 대신 사진만'…돌변한 중국인 '다카열풍'에 기업들 속앓이
화장품 기업, 여행 소매 매출 급감
열악한 워라밸, 인증샷 문화로 이어져
#중국 광둥성에서 수출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환위진(24)씨는 최근 홍콩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는 중국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샤오홍슈를 샅샅이 뒤져 유명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는 케네디타운 인근의 해변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여행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바닷가 인근의 조용한 동네에 불과했습니다. 그간 환씨는 매년 화장품을 사 모으기 위해 홍콩을 방문했지만, 올해만큼은 지갑을 닫기로 했습니다. 대신 SNS 업로드를 위해 여행 일정의 대부분을 관광지에서 기념 영상을 촬영하는 데 치중했습니다.
환 씨처럼 최근 중국의 MZ(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는 이른바 다카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다카는 중국어로 직역하면 '카드를 찍는다'는 뜻인데요. 기존에는 직장인들이 출퇴근 시 출입 카드를 찍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쓰여왔습니다. 그러나 몇 년 사이 다카는 다이어트와 같은 일상 기록이나 유명 관광지에서의 찍은 사진을 SNS에 공유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바뀌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매출 회복을 기대했던 소비재 기업들은 다카 열풍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커(중국인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에 바빠 지갑을 열지 않아서인데요. 오늘은 다카 열풍이 어떠한 이유로 트렌드로 자리 잡았는지, 기업들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겠습니다.
MZ세대, 여행 경험 쌓는 경향 강해… 돈 쓰기보다 사진 찍기 선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에 다카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유커들의 관광 트렌드가 돈을 쓰는 문화에서 사진을 찍는 문화로 바뀌었다고 전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40세대 미만의 중국의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는데요. 여행 데이터 제공업체인 중국트레이딩데스크에 따르면 중국 여행객의 63%는 40세 미만으로, 이들은 여행을 통해 쇼핑보다는 경험을 쌓으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합니다.
여행객들이 소비보다 인증샷 찍기에 치중하게 된 데는 중국판 인스타그램으로 불리는 SNS 샤오홍슈의 영향이 컸습니다. 샤오홍슈는 소셜미디어 기능과 전자상거래 기능을 합친 플랫폼입니다. 중국판 틱톡인 숏폼 콘텐츠 플랫폼인 더우인도 다카 열풍에 한몫했습니다. 해당 플랫폼에서 자신이 맛본 음식과 관광지 사진을 찍어 해시태그와 함께 게재하는 다카 유행이 불면서 부지런히 유명 관광지에서 인증샷을 찍어 SNS에 게재하는 이른바 '다카족'까지 생겨났다고 합니다.
다카 열풍이 불면서 중국에는 SNS상에서 유명세를 탄 관광지를 중심으로 이른바 '다카 투어'를 제공하는 여행사까지 등장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같은 유행이 유명 관광명소를 다녀왔다는 것을 타인에게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화장품 ·명품 기업, 유커 고객 줄자 매출 타격
이처럼 중국 관광객들이 돈을 쓰는 데보다 사진을 찍는 데 치중하게 되면서 유커들을 대상으로 큰 매출을 올리던 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화장품 기업들은 중국의 다카 열풍에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업종 중 하나입니다. 화장품 업계는 팬데믹 종료 이후 중국 시장에서 매출이 대폭 늘 것으로 기대해왔는데요. 코로나19 확산 이전만 해도 중국인들이 면세점과 인기 관광지 내의 소매점에서 막대한 물량을 구매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티로더는 지난달 1일 실적발표에서 아시아 시장에서 기대와 달리 저조한 매출을 거뒀다고 밝혔습니다. 아시아 시장은 에스티로더 전체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매출 둔화 여파로 결국 에스티로더는 2024회계연도 주당순익(EPS) 전망치를 기존 3.50~3.75달러에서 2.08~2.35달러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매출이 줄어든 원인으로는 여행자를 상대로 한 소매점 판매가 부진한 것이 원인으로 꼽혔습니다. 팬데믹 이전 만에도 면세 쇼핑을 포함한 여행 소매 매출은 중국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했는데 이 비율이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매출이 급감한 여파로 에스티로더의 주가는 지난달 1일 일 전 거래일(128.87달러) 대비 18.9%나 하락하면서 1주당 104.51달러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이는 6년 만에 최저치로 1995년 에스티로더가 뉴욕증시 상장한 이래 일간 기준 최대 낙폭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도 3분기 동아시아 시장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8% 하락하는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중국 시장에서 여행 소매 매출이 회사의 기대치에 못 미치면서 저조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일본의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도 중국 시장과 여행 소매 매출 둔화를 이유로 2024년 회계연도 연간 수익 전망을 36% 하향 조정했습니다.
화장품뿐만 아니라 명품 업계도 다카 열풍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투자은행 바클리와 모건 스탠리의 애널리스트들은 중국 소비자들의 수요 감소를 이유로 루이뷔통을 소유한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의 투자 등급을 '비중 확대'에서 '동일비중'으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워라밸 없는 직장인…여가 기록에 집착 시선도기업들은 다카 열풍을 반기지 않는 모양새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변화라고 설명합니다. 중국 직장인들의 경우 입사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으면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급 휴가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대다수의 직장인은 무보수로 초과근무를 하는 등 과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실상 1년 중 대부분의 날을 직장에서 보내는 게 일상이 된 것입니다.
이를 틈타 SNS인 더우인은 '모든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문구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지친 중국인들의 마음을 공략했습니다. 직장인들에게 여행과 같이 즐거웠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입니다.
워라밸이 지켜지지 않는 중국의 근로 환경을 고려한다면 앞으로도 다카 열풍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유커들에 기대 중국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려왔던 기업들도 이제는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매출 전략을 수정해야 할 듯 싶습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 달에 150만원 줄게"…딸뻘 편의점 알바에 치근덕댄 중년남 - 아시아경제
- 버거킹이 광고했던 34일…와퍼는 실제 어떻게 변했나 - 아시아경제
- "돈 많아도 한남동 안살아"…연예인만 100명 산다는 김구라 신혼집 어디? - 아시아경제
- "일부러 저러는 건가"…짧은 치마 입고 택시 타더니 벌러덩 - 아시아경제
- 장난감 사진에 알몸 비쳐…최현욱, SNS 올렸다가 '화들짝' - 아시아경제
- "10년간 손 안 씻어", "세균 존재 안해"…美 국방 내정자 과거 발언 - 아시아경제
- "무료나눔 옷장 가져간다던 커플, 다 부수고 주차장에 버리고 가" - 아시아경제
- "핸들 작고 승차감 별로"…지드래곤 탄 트럭에 안정환 부인 솔직리뷰 - 아시아경제
- 진정시키려고 뺨을 때려?…8살 태권소녀 때린 아버지 '뭇매'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